이직 준비부터 토익 공부까지…퇴근 후에도 자기계발
‘혼자’와 ‘함께’ 사이…소속감 채우고, 외로움 덜어낸다
타인 존재 자체가 ‘마감 장치’…능률·성과 ‘일석이조’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 “오늘의 준비물은 노트북입니다. ”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위치한 한 카페. 누군가는 토익 문제집을 펼치고, 누군가는 이직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다듬는다. 각자 다른 일을 하지만 같은 공간에 모여 있다. 굳이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질 필요도 없다.
직장인 2년차 김모씨(29)는 퇴근 후 집에서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을 싫어한다. 취업 전에는 낮부터 저녁까지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물론 자기계발에 쓸 시간도 부족했다.
이러한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은 김씨는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 만나는 것도 괜찮아?”라는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김씨가 ‘어드민 나이트(Adimn Night)’를 알게 된 경로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는 ‘어드민 나이트’가 힙(Hip)한 모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은 덜되, 혼자서는 부족한 집중력과 소속감은 채울 수 있다는 점이 2030세대의 마음을 이끌었다.
‘어드민 나이트’는 관리·행정을 뜻하는 ‘어드민(Adiministrative)’과 ‘밤(Night)’을 결합한 신조어로, 저녁 시간대에 카페·스터디룸·공유오피스 등 한 공간에 모여 각자 미뤄뒀던 잡무를 처리하는 일종의 스터디 모임이다.
모임의 주된 목적은 네트워킹과 협업이 아닌 일을 해치우는 것이다. 화려하게 꾸밀 필요 없이 편안한 복장으로, 값비싼 식당이 아닌 집 혹은 학교·직장 근처 카페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오늘의 할 일’을 하면 된다.
‘어드민 나이트’는 저널리스트 크리스 콜린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칼럼에서 처음 등장했다.
칼린은 “현대인이 겪는 과부하가 고립감을 심화하고, 자잘한 잡무들이 우리를 화면 속에 가둬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며 한 공간에서 함께 잡무를 처리하는 모임을 제안했다.
이러한 칼린의 제안은 많은 2030세대의 호응을 얻으며 유행처럼 번졌고, SNS에서 인증샷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부산·울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어드민 나이트가 진행되고 있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어드민 나이트’의 검색량은 12.5%로 집계됐다. 이 중 73.9%가 정보 검색을 목적으로 키워드를 입력했고, 20대와 30대의 합산 비중은 무려 85.7%에 달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카페에서 진행된 어드민 나이트에 참여한 2030 청년들. ⓒ데일리안
그렇다면 무엇이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동안 친목 모임은 이름부터 직업·나이 등을 소개하고, 식사와 술·대화에 시간을 할애해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드민 나이트는 각자 할 일이 끝나면 쿨하게 헤어지고, 숙취나 큰 지출도 없다.
만남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은 채우되,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줄이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한 모임인 셈이다. 이는 효율적인 시간 활용과 자기계발에 집중한 2030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한다.
친구 추천으로 어드민 나이트에 매료된 김씨 역시 이력서·자기소개서 작성부터 자격증·토익 공부까지 카페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는 “혼자 집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려면 침대에 눕거나 유튜브를 봤을텐데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업무에 몰두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며 “사람을 만나면서도 내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관계에 시간을 통째로 쓰지 않아 생산성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부터 어드민 나이트에 참여하기 시작한 조모씨(28)는 주 1~2회씩 관련 모임을 찾는다.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하는 독서 모임과 달리 부담 없이 각자 할 일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씨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고 ‘임무 완수’라는 목적만 가지면 돼 비용·심리적으로 부담이 없다”며 “직장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뒤 개인 시간까지 알뜰하게 보내 성취감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이때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집중력 향상 효과는 ‘바디 더블링(Body Doubling)’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바디 더블링’은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집중력과 실행력이 높아지는 현상으로, 별도의 조언이나 개입 없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동기 부여이자 마감 장치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바디 더블링 현상의 배경에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심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회적 촉진은 타인의 존재만으로도 개인의 작업 성과와 능률이 개선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타인의 눈초리,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며 “장소만 공유해도 공동체 분위기가 형성되고, 타인의 존재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견제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사회적 촉진’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결국 어드민 나이트의 인기는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완전한 고립을 원하지 않는 2030세대의 욕구를 보여준다. 깊은 관계보다 부담 없는 연결, 강한 소속감보다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2030세대의 새로운 인간관계 방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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