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아 ‘몬스터’, 블랙 코미디로 담아낸 자기혐오 [MV 리플레이 ㊽]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8.21 08:30  수정 2026.08.21 08:30

가식적인 웃음·폭식·체중계…자기혐오를 옮긴 블랙코미디

불안과 혐오까지 끌어안고 터널 끝 빛을 향해 나아가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일로”…엉망인 채 살아내는 구원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권진아가 지난달 15일 세 번째 EP ‘세이브 미’(SAVE ME)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몬스터’(MONSTER)는 자신을 사랑받지 못할 괴물로 여겼던 화자가 엉망인 모습 그대로라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노래다. 뮤직비디오는 권진아가 겪어온 자기혐오와 식이장애를 가짜 토크쇼와 기괴한 괴물들이 등장하는 블랙코미디로 옮겼다.


권진아 ‘몬스터’ 뮤직비디오 ⓒ어나더
줄거리


뮤직비디오는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든 채 구토하는 권진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트러진 모습을 정돈한다. 그러나 아래를 내려다보자 자신의 발은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의 발처럼 변해 있다.


화장실 밖으로 나온 권진아는 환한 표정을 만들어 보인다. 동물 탈을 쓴 기괴한 존재들을 뿌리치고 도착한 곳은 토크쇼 촬영장이다. 그는 카메라와 방청객 앞에서 다시 억지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스튜디오 모니터에 감춰온 자신의 모습이 비치자 돌연 소리를 지른다.


동물 탈을 쓴 괴물들은 권진아를 끈질기게 뒤쫓는다. 다른 공간에서는 이들이 심장 모형을 폭탄처럼 서로에게 떠넘기고, 음식을 뜯어 먹으면서도 체중계 위에 올라 고통스러워한다. 권진아 역시 햄버거와 스파게티를 비롯한 음식을 정신없이 입에 넣는다. 이내 자신 위로 음식물이 수북이 쌓인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권진아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디스거스팅’(DISGUSTING)이라는 문구가 올라오고, 권진아는 쌓인 감정을 토해내듯 절규한다.


그동안의 장면들이 빠르게 겹쳐진 뒤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스튜디오에는 붉은 조명과 함께 ‘스테이 얼라이브’(STAY ALIVE)라는 문구가 켜진다. 권진아를 괴롭히던 괴물들은 그를 들것에 싣는다. 괴물들의 손에 이끌려 긴 터널을 지난 권진아는 마침내 몸을 일으킨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터널 끝의 빛을 향해 걸어가며 영상은 끝난다.


권진아 ‘몬스터’ 뮤직비디오 ⓒ어나더
해석


화장실을 나온 권진아의 발이 괴물의 것처럼 변해 있는 첫 장면에서부터 ‘몬스터’ 속 괴물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 탈을 쓴 존재들은 권진아를 따라다닌 불안과 혐오, 상처이자 그로부터 태어난 또 다른 자아다.


구토와 폭식, 체중계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뒤 거식증·폭식증을 겪은 권진아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괴물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동시에 체중계 숫자에 괴로워하는 모습 역시 먹는 행위가 위안과 죄책감으로 갈라지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토크쇼 세트장은 고통을 감춘 채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공간이다. 카메라 앞 권진아는 웃지만 모니터 속 자신을 마주한 순간 비명을 지른다.


박수와 ‘디스거스팅’이라는 문구가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도 전하려는 메시지와 연결된다. 타인의 환호를 얻더라도 내면의 혐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박수를 보내는 방청객과 경멸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목소리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내면의 괴물은 함께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자아다. 그래서 권진아가 탈출하는 동굴 밖 밝은 빛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상향이라기보다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뜻한다. 권진아 역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터널을 빠져나온다.


권진아 ‘몬스터’ 뮤직비디오 ⓒ어나더
총평


귀여운 동물 탈과 토크쇼의 과장된 웃음, 폭탄처럼 오가는 심장을 배치해 자기혐오가 만든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웃어야 할지 불편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권진아의 혼란과 겹쳐진다.


‘몬스터’는 자신을 사랑해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위로 대신 세상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사라질 필요는 없다는 위로를 건넨다. 권진아가 그려낸 구원이 현실적이지만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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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지만, 괴물이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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