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957㎜…극한으로 치닫는 이상기후, 약한 곳 더 때린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6.08.18 10:56  수정 2026.08.18 11:48

광복절 연휴 남부지역 극한 호우

폭염 끝나기 무섭게 폭우 피해

극한의 날씨 변화 이제 ‘뉴노멀’

이상기후, 취약계층에 더 치명적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일운면 소동리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량 한 대가 불어난 물에 잠겨 있다. ⓒ뉴시스

지난 연휴 사흘간 957㎜의 폭우가 경남 거제시를 때렸다. 산사태가 아파트를 덮쳤고 50차례에 달하는 재난문자에도 지역 곳곳에서 폭우 피해가 잇따랐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극한 폭염에 조선소 노동자들의 온열질환을 우려하던 곳에서 물난리가 나면서 극단의 기상이변을 실감케 했다.


지난 15일부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이어진 집중호우로 주택·도로 침수와 수목 전도 등 피해 신고가 2500건을 넘어섰다.


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이번 호우로 인한 피해 신고는 총 2574건으로 집계됐다. 활동별로 보면 안전조치가 2천10건, 급·배수 지원이 402건, 구조가 162건이다.


인명피해는 사망 1명, 부상 4명으로 전날 집계 이후 추가되지 않았다. 사망자는 경남 거제 옥포동 삼도로얄맨션 산사태로 숨진 1명이다. 부상자는 거제 2명, 통영 1명, 울산 1명이다.


앞서 거제시에서는 17일 오전 4시 42분쯤 옥포동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가 아파트 1층을 덮쳐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번 비는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일강수량을 기록할 정도로 강했다. 거제에는 하루에만 577.4㎜의 비가 쏟아졌다. 한 시간에 124.5㎜가 내리는 200년 빈도 폭우까지 발생했다.


사흘이 채 안 되는 기간 누적 강수량 957㎜로 평년 여름철 강수량의 90%를 넘어섰다.


이번 폭우 원인은 복합적이다. 저기압의 이동 경로에 강한 남풍이 더해지고, 여기에 높은 남해 수온과 남해안의 지형까지 겹치면서 비를 키웠다.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화한 뒤 남은 저기압이 한반도 남서쪽에서 접근해 북동진하면서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끌어 올렸다. 북반구 저기압 주변에서는 바람이 반시계 방향으로 불기 때문에 저기압 동쪽에 놓인 한반도로 남풍 계열의 바람이 지속해서 유입됐다.


저기압이 한반도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강해졌다. 한반도 북동쪽의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 간격이 좁아지면서 두 기압계 사이의 기압 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강한 남풍이 남해의 수증기를 가득 실은 채 남해안으로 밀려들었다.


문제는 앞으론 이런 ‘이상기후’가 일반화(뉴노멀) 된다는 사실이다.


기상청이 지난해 대통령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공동으로 발간한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산림 피해를 기록한 대형 산불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던 여름 ▲시간당 100㎜가 넘는 기록적인 집중호우 ▲108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북태평양고기압의 이른 확장으로 6월 말부터 이미 한여름 날씨를 보였고, 7월 하순부터는 티베트고기압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기온이 더욱 상승하여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역대 최고 1위를 기록하였다.


밤낮으로 무더위가 지속되며 경북 구미(55일), 전북 전주(45일) 등 20개 지점에서 관측 이래 최다 폭염일수를 기록했다. 대관령에서도 처음으로 폭염(7월 26일, 33.1℃)이 발생해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우 양상도 달라졌다. 장마 기간이 짧고 무더위가 지속된 가운데 강수는 주로 단기간에 집중되면서 폭염과 호우가 반복했다. 경기도 가평, 충남 서산 등 15개 지점에서 1시간 최다강수량이 100㎜를 넘었다.


국지성 집중호우로 도심 침수, 도로, 교통 기반시설, 산사태 등 피해도 잇따랐다. 총 25명(사망 24명, 실종 1명)의 인명피해와 1조1307억원의 재산피해를 남겼다. 이는 최근 5년 평균의 1.8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상기후가 특히 문제인 것은 취약계층일수록 치명적이란 점이다.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가 전국의 기후위기 취약계층 82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이 두드러졌다. 조사 대상 장애인의 80.1%는 폭염으로 하루 이상 외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장기간 외출을 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장애인의 8.6%는 3~4주, 8.3%는 한 달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장애인 가운데 풍수해로 신체 거동이 불편했다고 답한 경우도 54.7%가 넘었다. 풍수해로 외출하지 않았다는 응답에서도 노인(69.6%)과 장애인(68.4%) 비중이 높았다.


물리적인 피해도 취약계층이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파트와 같이 잘 정비된 공동주택보단 낡고 오래된 개인 주택일수록 위험 노출이 크다. 농촌과 어촌 등도 마찬가지다. 인구 비밀집지역일수록 배수 시설이 오래되거나 열악한 곳이 많다. 과거 서울 반지하 침수 이 대표 사례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과거 국가인권위원회 기고를 통해 “국내에서도 2018년 역사적인 폭염으로 재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 논의는 ‘에어컨 복지’에서 멈췄고, 근본적인 기후변화대응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2018년 폭염과 관련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전기요금’이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켤 수 없는 ‘에너지 빈곤층’,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고통이 아니었다”며 “폭염이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전기요금 인상 제한으로 국한돼 있는 동안 취약한 주거 환경에 거주한 채 고립된 노인층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더욱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외국인노동자들은 질병을 얻었고,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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