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 EPA=연합뉴스
2026 FIFA 북중미월드컵의 쓰라린 기억을 뒤로한 손흥민(LAFC)이 길었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손흥민은 지난 18일(한국시각) 미국 LA 디그니티 헬스 스포츠 파크에서 펼쳐진 ‘2026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정규리그 16라운드 LA 갤럭시와의 원정 경기(LA 더비)에서 시즌 마수걸이 골을 터뜨렸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표정은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든 뒤, 대표팀 주장으로서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졌던 그는 그간 긴 침묵을 지켜왔다. 귀국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짧은 심경을 남겼을 뿐, 공식 석상에서 월드컵 이후의 속내를 직접 털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패의 상처를 굳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축구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고백하고, 경기장에서 다시 행복을 찾아가는 리더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손흥민은 “많은 분이 기대하셨던 것보다 첫 골이 늦게 터진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라며 “득점 수치보다 경기력의 본질이 더 중요했다. 오늘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골도 넣고 팀도 대승을 거두었으니, 향후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도 상당히 긍정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날 관심은 역시나 월드컵 이후 그가 겪어온 심경 변화에 쏠렸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캡틴이라는 왕관의 무게 때문에 월드컵 직후 손흥민은 특유의 밝은 미소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정신적으로 지쳤던 손흥민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결국 한국에서의 시간이었다. 그는 “부상 없이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월드컵 이후 한국에서 온전히 휴식에 집중했다. 소중한 분들과 시간을 보내고, 특히 내 생일(7월 8일)을 한국에서 보낸 것이 정신적인 회복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라며 “그런 따뜻한 기운들이 채워졌기에 미국에 돌아와 오늘처럼 좋은 시간(활약)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캡틴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뇌의 흔적이 묻어났다. 손흥민은 대표팀의 부진을 누구보다 아프게 받아들이는 선수다.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섰고, 실패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려 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는 대신 다시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상처를 준 것도 축구였지만, 치유의 약을 건넨 것도 결국 푸른 잔디 위였다. 손흥민은 “국가를 대표해 뛰며 아쉬운 결과를 얻었을 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괴롭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기에 최대한 빨리 피치로 돌아오고 싶었다”라며 “경기장에서 느끼는 희열과 팬들의 함성은 지난 시간의 정신적인 피로를 완벽히 잊게 해준다”고 말했다.
손흥민. ⓒ EPA=연합뉴스
실망과 상처로 얼룩졌던 축구였으나 공교롭게도 축구를 통해 힐링에 성공하며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 탓에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끝으로 그가 태극마크를 내려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단호했다. 월드컵 직후 SNS를 통해 약속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태극마크의 무게를 외면할 생각이 없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과 축구 팬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다시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죽기 살기로 달려보겠다”라며 “팬들이 나를 찾으실 때까지, 나를 필요로 하실 때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LA 더비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교한 결정력은 그의 약속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다. 정신적 피로를 완전히 씻어낸 손흥민은 당장 다가올 9월 A매치 평가는 물론, 내년 초 개최 예정인 ‘2027 AFC 아시안컵’에서도 대한민국 축구의 중심을 잡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축구의 리더로서 손흥민이 가진 전술적 가치와 상징성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다. 미국 MLS 무대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린 그가 다시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고국 팬들 앞에 설 그날을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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