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이오닉 9·EV9 차주 40명 대상 시범 서비스
전기차 420만대, 발전 설비 42기 맞먹는 전력 자원
법적 근거 미비…전력시장 참여 기준 마련 지적도
현대차그룹의 제주도 V2G 실증 서비스 현장에서 전기차들이 양방향 충전기에 연결돼 실제 충·방전을 통해 전력을 주고 받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의 보조 발전원으로 쓰는 V2G(Vehicle-to-Grid) 기술을 국내 일반 가정에서 처음 구현했다. 연구소나 제한된 실증 부지가 아닌 실제 생활 환경에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 V2G 상용화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V2G 시범 서비스에 참여한 일반 고객 가정 내 인프라 구축을 최근 완료하고 전기차와 전력망 간 충·방전 실현에 성공했다고 8일 밝혔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와 전력망을 연결해 전력을 양방향으로 주고받는 기술이다. 전력 수요가 낮은 심야에는 충전하고, 수요가 몰리는 낮에는 차량 배터리의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발 지정학 리스크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V2G는 전력망 운영 효율을 높일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전력공사는 10kW급 양방향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10만대를 동시에 1시간 방전하면 최대 1GW 규모의 양수발전 또는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상응하는 전력 공급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1GW는 대형 발전 설비 1기의 출력량에 가까운 규모로, 약 80만명이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가 2030년 약 42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V2G 보급이 확대될수록 효과는 커진다. 한전 산식을 적용하면 전기차 420만대는 1GW급 발전 설비 42기에 해당하는 유연 전력 자원이 된다.
이 규모의 인프라를 양수발전으로 구축하면 약 84조원이 필요한 반면 V2G는 약 5조4600억원 수준으로, 최대 78조5000억원의 설비 투자 비용 절감 여지가 있다. 구축 기간도 양수발전은 7년 이상 걸리지만 기존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를 활용하는 V2G는 약 1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현대차 '아이오닉 9'과 기아 'EV9' 차주 40명을 대상으로 V2G 시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참여 고객들은 국내 최초로 가정에서 차량 배터리와 전력망 간 충·방전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시범 서비스로 고객의 충전기 연결 빈도와 시간대별 이용 행태, 배터리 방전 수용도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V2G 상용화 서비스 모델과 고객 보상 체계를 설계하고 향후 새만금 AI 수소 시티의 V2G 기반 사업 전개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국내 상용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기차가 전력시장 참여 주체나 분산 에너지 자원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차량이 전력망에 전력을 공급해도 이를 공식 인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전력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지, 공급 대가는 어떻게 산정할지에 대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
산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이미 V2G가 국가 전력망을 보완하는 전력 자원으로 상용화 문턱까지 다가섰다"며 "국내도 V2G 상용화를 위해 제주 실증에 머물지 않고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개선과 함께 전기차의 전력 시장 참여, 정산·보상 기준 등 법적 기반을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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