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이 분노하는 이유’ 혁신위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7.08 12:10  수정 2026.07.08 12:10

K-축구 혁신위원회는 공정을 세우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암흑기에 빠진 대한민국 축구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할 ‘K-축구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첫발을 내밀었다.


박지성 FIFA 분과위원회 위원을 공동 위원장으로 전면에 내세운 혁신위는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공식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메스질에 돌입했다.


한국 축구의 운명을 바꿀 이번 혁신위에는 박지성 공동 위원장을 필두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가대표 출신의 이영표·박주호 해설위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김승희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조연상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유영근 변호사, 김대희 부경대 교수 등 정·관계와 축구계, 학계를 아우르는 인사들이 혁신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인 혁신위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계기로 폭발한 축구계 안팎의 전방위적 혁신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각오다. 이들은 한국 축구의 행정 체계 등 문제가 된 체질을 바꾸고 미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 가운데 혁신위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최우선 과제가 있다. 바로 지금 한국 축구계를 향해 핏대를 세우고 있는 분노한 축구 팬들의 ‘민심(民心)’을 정확히 읽고 달래는 일이다.


단순히 몇 가지 제도를 바꾸고 행정 매뉴얼을 다듬는 수준의 면피용 혁신으로는 돌아선 팬심을 되돌릴 수 없다. 혁신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축구 팬들이 왜 이토록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과 본질을 뼛속 깊이 파헤쳐야만 한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지난달 30일 2026 북중미 월드컵 일정을 마친 뒤 귀국하고 있다.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단순하게 봤을 때 축구계 인사들은 팬들이 그저 월드컵 성적 부진에 따른 감정적 화풀이에 나선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혁신위마저 이 같은 안이한 시각에 동조한다면, 과거 수없이 출범했다 흐지부지된 ‘보여주기식 위원회’의 전철을 밟을 게 자명하다.


단언컨대 축구 팬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근본적 원인은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에 있지 않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자행된 ‘불공정’과 ‘독단’이다.


지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축구협회는 전 세계 유능한 감독들을 후보군에 올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엄격한 기준과 시스템을 거쳐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공언했다. 전력강화위원회가 수차례 열렸고,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모두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최종 선택은 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린 채 독단적으로 이루어졌다.


급기야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임명된 지도자는 본선 무대에서 무전술과 리더십 부재로 참담한 실패라는 성적표를 갖고 왔다. 대중이 느끼는 배신감이 큰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후의 태도다. 전술 실패와 선수 기용 논란에 대해 한 마디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도피성 행보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불에 탄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과거의 축구 팬들은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과정이 불투명했다면, 비록 성적이 좋더라도 문제를 제기할 만큼 성숙한 ‘공정 의식’을 갖고 있다. 하물며 과정이 불공정했고 결과마저 처참한 상황에서, 책임지는 모습조차 없는 모습에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다.


K-축구 혁신위원회는 공정을 세우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혁신위는 사령탑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을 유발한 요인을 명백히 밝혀내고, 향후 어떤 권력자나 특정 파벌도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냉철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보도자료나 알맹이 없는 혁신안 발표에 속아 넘어갈 리 만무하다.


길지 않은 한시적 운영 기간 혁신위가 마주할 저항은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하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축구계 내부의 보이지 않는 손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혁신위 뒤에는 정의와 공정을 갈망하는 수천만 축구 팬들의 강력한 지지가 버티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실력이 부족했던 대회가 아니었다. 공정성과 투명성, 책임이라는 기본적인 가치가 흔들렸음을 확인한 대회였다. 혁신위원회가 진정한 혁신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팬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축구팬들은 불투명한 과정,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 그리고 무책임에 등을 돌렸다.


혁신위가 새로운 제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공정을 세우고 무너진 신뢰만 회복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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