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감독 6명, 성공은 단 2명…한국 축구를 뒤흔든 정몽규의 선택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7.03 20:32  수정 2026.07.03 20:32

대표팀 감독 선임은 축구협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대표팀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4년 단위 월드컵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정몽규 회장은 "한국 축구의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출범했다. 그러나 지난 13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업무였던 대표팀 감독 선임에서 반복적으로 실패를 거듭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정 회장 체제에서 한국 축구는 홍명보(1기), 울리 슈틸리케, 신태용,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2기) 등 모두 6명의 정식 감독을 선임했다.


이 가운데 신태용과 벤투는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홍명보 1~2기와 슈틸리케, 클린스만은 모두 실패한 프로젝트로 남았다. 단순히 월드컵 성적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수 육성, 대표팀 운영 철학, 축구 행정까지 한국 축구 전체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 차례 월드컵에 나선 홍명보 전 감독.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첫 번째 선택 홍명보, ‘의리 축구’의 서막


정몽규 회장의 첫 선택은 홍명보 감독이었다.


2013년 최강희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뒤 약속대로 물러나자 축구협회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쓴 홍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브라질 월드컵까지 준비 기간은 1년에 불과했다. 대표팀은 조직력을 완성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선수 선발 과정에서 특정 선수들을 중용하는 이른바 '의리 축구' 논란까지 더해졌다.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 알제리에 2-4 완패를 당하는 등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더 큰 문제는 대회 이후였다. 대표팀 음주 회식 논란과 선수단 파벌설, 부적절한 운영 방식 등이 잇달아 불거졌고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감독 개인의 실패를 넘어 대표팀 시스템 자체가 흔들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직전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 ⓒ 데일리안 DB

높은 승률의 착시, 슈틸리케호


축구협회는 홍명보 체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했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승률만 놓고 보면 68.4%(26승5무7패)로 정몽규 체제 감독 가운데 가장 높다.


하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상대 대부분이 FIFA 랭킹이 낮은 아시아 국가들이었고 강팀을 상대로는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술적 다양성이 부족했고 경기 내용은 갈수록 단조로워졌다.


특히 해외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운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경기력이 급격히 추락했고 월드컵 개막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경질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낸 신태용 감독. ⓒ 데일리안 DB

무너진 대표팀을 살린 소방수 신태용, ‘카잔의 기적’


위기의 순간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신태용 감독이다.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그는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린 대표팀을 수습해야 했다. 다행히 월드컵 예선 탈락 위기 속에서 본선행을 확정했고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독일을 상대로 2-0 승리하며, 카잔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침체됐던 대표팀 분위기를 되살렸고 국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안긴 순간이었다. 대표팀에 등을 돌렸던 팬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기 시작한 것도 신태용호가 남긴 의미 있는 변화였다.


한국 축구 부흥의 소중한 불씨를 살려내고 장기적인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신태용 감독의 선임은 정몽규 회장 임기 내에서 거둔 첫 번째 성공 사례로 평가받기 충분했다.


정몽규 회장의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인 벤투 감독 선임 및 신뢰. ⓒ 데일리안 DB

4년의 인내, 한국 축구 체질 바꾼 벤투


신태용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2018년 8월 부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은 정몽규 회장 체제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도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지도자였다. 벤투 감독은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4년이라는 월드컵 주기 전체를 온전히 보장받았고, 대륙간컵부터 아시아 예선, 그리고 월드컵 본선까지 모든 대회를 단일 체제로 완수한 최초의 사령탑이었다.


벤투 감독이 한국 축구에 이식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주도하는 축구’의 정착이었다. 과거 한국 축구는 강팀을 만나면 극단적인 수비에 올인한 뒤, 발 빠른 공격수 1~2명의 개인 기량에 의존해 역습을 노리는 ‘철퇴 축구’나 ‘늪 축구’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세계 축구의 트렌드인 ‘빌드업 중심의 점유율 축구’를 꾸준히 밀어붙였다. 아시아 예선 과정에서 경기력이 답답하다는 무수한 비판과 흔들기 속에서도 벤투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흔들리지 않고 철학을 고수했다. 여기에 정몽규 회장도 무한 신뢰로 벤투호를 지켜줬다.


4년의 인내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화려하게 만개했다. 우루과이, 포르투갈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도 대표팀은 주도권을 잃지 않고 유기적이고 공격적인 조직력을 선보이며 당당하게 12년 만의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재임 기간 거둔 승률 역시 61.4%(35승 13무 9패)로 경기력과 결과 모두를 완벽하게 잡아내며 최상위의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벤투호의 선전은 국내 축구 생태계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대표팀의 세련된 축구는 K리그로 향하는 팬들의 관심을 폭발시켰고, 김기동, 이정효 등 전술적 색채가 뚜렷한 국내 지도자들의 활약과 시너지를 내며 K리그1 평균 관중 1만 명 시대를 다시 열어젖히는 선순환 구조에 일조했다. 퇴임하는 순간까지 확고한 시스템과 방대한 훈련 자료를 한국 축구의 자산으로 남겨둔 벤투호는 단연 정몽규 체제 최고의 아웃풋이었다.



방만한 운영으로 한국 축구를 퇴보시킨 클린스만.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재앙의 시작 ‘클린스만호’, 1년 만에 한국 축구 초토화


벤투 감독이 쌓아 올린 자산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임으로 선임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시작부터 절차 논란에 휩싸였다. 감독 후보 검증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국내 상주 대신 해외 체류를 반복하는 근무 방식도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팀 운영은 더욱 심각했다. 전술적 색깔은 보이지 않았고 선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경기가 반복됐다. 벤투 감독이 4년 동안 구축한 선수 데이터와 전술 시스템은 사실상 계승되지 않았다.


황금세대로 평가받던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이 동시에 뛰는 대표팀은 오히려 경쟁력을 잃었다. 결국 아시안컵 실패와 함께 클린스만은 경질됐다. 대표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월드컵 도전에서도 실패를 맛본 홍명보.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바닥 밑의 지하실 ‘홍명보호 2기’


클린스만 사태를 겪고도 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은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진화한 형태의 밀실 행정으로 폭주했다. 클린스만 경질 이후 수개월 동안 표류하던 차기 감독 선임 과정에서 축구협회는 또다시 공식 기구의 권한을 무력화시켰다. 감독 선임 권한이 없는 인물이 독단적으로 후보를 추천하고 심야에 특혜성 면접을 진행하는 등 온갖 불투명한 행정 끝에 홍명보 감독이 복귀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홍명보 감독은 1954년 월드컵 이후 7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역대 최저 순위(34위), 한국인 지도자 최초 월드컵 조별리그 2회 탈락,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FIFA 랭킹이 낮은 국가 상대 무득점 패배 등의 기록을 써낸 뒤 사퇴했다.


13년 동안 감독은 여섯 차례 바뀌었고, 성공은 신태용과 벤투 두 번뿐이었다. 이들 모두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고수했다.


반면 실패한 감독들은 선임 과정부터 논란이 있었거나 철학 없이 단기 성과만 추구했다. 결국 감독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축구협회의 시스템과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난 13년은 보여주고 있다.


한국 축구는 또다시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이번에도 사람만 바꾸고 시스템은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13년간 반복된 감독 선임 실패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원칙과 절차부터 다시 세울 것인지, 한국 축구의 미래가 그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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