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뇌전증 환자서 타우 단백질 축적 확인
알츠하이머와는 다른 병리 양상…질병 평가 새 단서 제시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치매 증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에서도 치매의 핵심 병리인 ‘타우(tau)’ 단백질 축적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뇌전증 환자의 타우 관련 PET 신호가 건강한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뇌전증 자체가 신경퇴행성 변화를 동반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뇌전증 환자는 2020년 14만6560명에서 2024년 15만6465명으로 증가했다. 2024년 기준 남성은 8만5749명, 여성은 7만716명이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 전달 과정에 이상이 생겨 반복적인 발작이 나타나는 만성 질환으로, 별다른 유발 요인이 없어도 발작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은 전신 경련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거나 멍해지는 경우, 신체 일부가 떨리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타우는 정상적으로 뇌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신경섬유 매듭’을 형성해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의 핵심 병리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뇌전증과 치매는 서로 다른 질환으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동물실험과 환자 뇌 조직 분석을 통해 뇌전증이 타우 축적을 촉진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치매 증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에서 실제 타우가 축적되는지와 그 임상적 의미는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상건·주건 교수와 핵의학과 최홍윤 교수 연구팀(제1저자 임상유전체의학과 홍상빈 임상강사, 공동저자 중환자의학과 신용원 교수)은 치매 진단이나 기억력 이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 75명과 건강한 대조군 47명을 대상으로 타우 PET, 아밀로이드 PET, 혈액 단백체 분석을 시행했다.
분석 결과 뇌전증 환자는 대뇌 피질 전반에서 타우 PET 신호가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혈액 검사에서도 타우 병리와 관련된 인산화 타우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한 비율은 대조군(5%)보다 약 5배 높은 24%에 달했다. 반면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또 다른 병리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두 그룹 간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며, 타우 PET 신호의 분포 양상도 알츠하이머병과 달랐다. 연구팀은 이번 현상이 알츠하이머병과는 독립적인, 뇌전증 자체와 연관된 병리 현상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뇌전증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의 생체 뇌 타우 단백질 PET 영상 비교. ⓒ서울대병원
타우 축적은 뇌전증이 심하고 넓게 퍼져 있을수록 더욱 뚜렷했다. 뇌 여러 부위에서 비정상 전기 신호가 나타나는 ‘다초점 뇌전증모양 방전’ 환자에서 타우 신호가 가장 높았으며, 이 연관성은 엄격한 통계 보정 후에도 유지됐다. 뇌파가 느려지거나 청소년기부터 발작이 지속된 환자에서도 타우 수치가 높은 경향을 보였다. 한쪽 뇌에서만 발작이 시작되는 환자에서는 해당 뇌 부위에 타우가 집중됐고, 뇌염 이후 발생한 뇌전증 환자에서 타우 신호가 가장 높아 염증이 타우 축적을 촉진하는 요인일 가능성도 제시됐다.
연구팀은 또 뇌전증이 뇌에만 국한된 질환이 아니라 전신 노화 가속과도 연관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혈액 단백체 분석으로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한 결과, 뇌전증 환자에서는 뇌·신장·근육·췌장 등에서 가속 노화 양상이 관찰됐으며, 이는 뇌의 타우 신호와도 연관됐다.
특히 타우 신호가 높은 환자일수록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산화 스트레스 관련 단백질은 증가한 반면, 뇌의 손상 물질 제거와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소교세포 및 면역 관련 단백질은 타우 신호와 반대 방향의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뇌전증 환자의 타우 관련 변화가 에너지 대사와 산화 스트레스뿐 아니라 뇌의 면역·청소 기능 변화와도 연관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타우 PET과 혈액 지표를 활용해 뇌전증의 질병 부담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한 항타우 치료 전략이 향후 뇌전증 치료로 확장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결과가 뇌전증이 곧 알츠하이머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다기관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상건 교수(신경과)는 “치매 증상이 없는 뇌전증 환자에서 타우 관련 PET 신호가 예상보다 뚜렷하게 나타난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타우 PET이 향후 뇌전증 환자의 치매 위험과 뇌 퇴행성 변화를 평가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건 교수(신경과)는 “뇌전증이 단순한 발작 질환을 넘어 뇌 단백질 변화, 나아가 전신 노화와도 연결돼 있음을 실제 환자의 뇌 영상과 혈액 분석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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