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약점 숨기면 계약 깨진다"…빅파마가 꼽은 L/O 실패 원인

한보라 기자 (simplyh@dailian.co.kr)

입력 2026.06.11 16:44  수정 2026.06.11 16:45

기술이전 판 깨는 주범은 기술 결함 아닌 '리스크 은폐'

지나친 혁신 보단 통제 가능한 현실성이 진짜 차별성

(왼쪽부터) 신예 일라이릴리 디스커버리 온콜로지 시니어 디렉터, 황카이셩 리메젠 최고운영책임자(COO), 야시로 코지 MSD 퍼시픽 사업개발·라이선싱 디렉터, 매트 레벤굿 화이자 ADC 엔지니어링 디렉터. 글로벌 빅파마 관계자들이 11일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월드 ADC 사우스코리아 2026'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한보라 기자

글로벌 빅파마들이 국내 바이오텍에 기술이전(L/O)을 앞두고 데이터를 포장하거나 약점을 숨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계약이 무산되는 진짜 이유는 기술적 결함이 아닌, 실사 과정에서 드러난 불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뢰 훼손에 있다는 지적이다.


야시로 코지 MSD 퍼시픽 사업개발·라이선싱 디렉터는 11일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월드 ADC 사우스코리아 2026' 컨퍼런스에서 “사전에 공유한 것보다 더 큰 리스크가 실사 과정에서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 계약이 엎어지는 본질적인 이유”라며 이 같이 말했다.


야시로 디렉터는 "빅파마가 발을 빼는 건 파트너사가 초기에 리스크를 알고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처음부터 문제를 공개했다면 함께 해결책을 찾았겠지만, 실사에서 뒤늦게 들통난 경우에는 결국 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바이오텍이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사실상 생존이 걸린 문제다.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해 글로벌 빅파마에 넘긴 뒤 받은 계약금으로 다음 개발을 이어가는 특유의 사업 구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바이오텍은 데이터를 갈고 닦는 일에 공을 들여왔다. 데이터가 탁월한 성능을 뒷받침하는 경우에만 협상력이 높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라이 릴리,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의 시각은 달랐다. 전임상이나 임상 데이터가 얼마든지 ‘포장’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나쁜 선례도 있다. 앞서 미국 바이오텍 피브로젠은 심혈관계 부작용을 감추기 위해 임상 데이터 분석 기준을 사후에 조작했다. 이 논란으로 피브로젠의 파트너사로 뒀던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미국 시장 진출이 무산됐다. 노바티스가 87억 달러에 인수한 아베시스 역시 인수 전 초기 데이터를 숨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차라리 보유 기술의 한계와 위험 요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기술이전 가능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매트 레벤굿 화이자 ADC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본 계약 전에 주고 받는 비기밀자료(NCD)라 하더라도 실험 대조군이 빠져 있거나 의도적으로 구조를 알아보기 힘들게 꼬아놓은 경우를 본다”며 “이런 모호함은 첫인상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추후 기술 검토 과정에서 이를 만회하기가 꽤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신예 일라이 릴리 디스커버리 온콜로지 시니어 디렉터도 “현재 기술 성숙도가 어느 단계인지, 잠재적인 공백이나 한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짚어주고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선제적으로 설명해 주는 대화에서 좋은 첫인상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빅파마가 보는 차별성의 기준도 통념과 달랐다. 황카이셩 리메젠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최고품질책임자(CQO)는 “너무 혁신적이어도 빅파마는 관심을 거둔다”고 지적했다. 리메젠은 글로벌 빅파마 대상의 대형 L/O 실적을 보유한 중국의 대표적인 항체-약물 접합체(ADC) 전문 바이오 기업이다.


글로벌 빅파마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섣불리 베팅하지 않는다. 일라이 릴리가 유망 자산을 통째로 사들이는 대신 '옵션 계약'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오텍의 임상 비용 일부를 분담해 준 뒤, 데이터가 나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최종 인수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초기 진입 비용을 최소화해 실패의 충격을 분산하겠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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