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는 자국 공장 지키는데…K-자동차, 생산기반 방어책은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6.05.28 11:22  수정 2026.05.28 11:23

미국·EU, 관세·세제·규제로 자국 생산 유도

중국 전기차, 수출 넘어 현지 생산거점 확대

“국내생산촉진세제 등 생산·고용 연계 지원 필요”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됨.

세계 자동차 시장의 경쟁축이 '누가 더 좋은 차를 많이 파느냐'에서 '어느 나라가 미래차 생산기반을 자국 안에 붙잡아두느냐'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관세와 보조금, 세제, 투자심사를 묶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고,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신흥국은 물론 유럽과 한국 시장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이에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국내 생산과 고용, 부품 생태계를 지키는 산업정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전기차 판매가 늘어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면 보조금이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8일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가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개최한 제47회 자동차모빌리티산업발전포럼에서는 이같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글로벌 통상 질서가 자유무역 중심에서 자국 산업 보호 중심으로 재편되는 만큼, 한국도 수출 의존형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정대진 KAIA 회장은 “최근 미국과 EU 등 주요 수출대상국은 관세, 수출입 통제, 산업지원책을 수단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며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아세안·중남미·중동은 물론 유럽과 한국 등 선진 시장까지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각국이 자국보호주의를 강화하는 데에는 중국 업체들의 무서운 성장세가 꼽힌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 진입에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최근엔 유럽, 동남아, 중동 등 주요 시장에 생산 시설도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232조 자동차 관세와 301조 적용, 커넥티드카 규제, IRA 생산세액공제를 결합해 중국산 유입을 견제하고 자국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EU 역시 중국산 전기차 상계관세와 산업가속화법을 통해 역내 생산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일본도 전략산업촉진세제로 자국 내 전략산업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조수정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중국 전기차 생산량이 전 세계의 70%를 넘어서는 가운데, 내수로 소화되지 못한 물량이 글로벌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며 “각국은 관세,보조금,수입·투자 통제 정책 등을 통해 자국 시장 잠식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해외 진출 방식이 단순 수출을 넘어 ‘거점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의 해외거점이 단순 지역 분산 형태가 아니라 생산, 공급, 인프라 기능이 분화되고 서로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은 아세안을 전기차,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망이 결합된 전략 거점으로 키우고 있다. 멕시코와 브라질은 북미 시장 접근과 핵심광물 확보를 동시에 겨냥한 생산·공급 거점으로 활용 중이다. EU에서는 가격 경쟁을 넘어 공급망, 원산지, 탄소규범에 대응하기 위한 기지로 부상했다.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의 글로벌 경쟁은 현지 생산, 조달망, 표준, 규범 대응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의 경쟁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우리 역시 해외 거점과 국내 산업기반 전략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현지 생산 확대가 국내 생산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국내 전기차·미래차 생산기반과 배터리·부품 생태계를 함께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샤오펑의 차세대 지능형 주행 시스템 VLA2.0이 탑재된 신차 GXⓒ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글로벌 보호주의 기조가 짙어지는 만큼, 전문가들은 한국도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역조치, 외국인투자안보심사 강화, 전기차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하고, CPTPP, 한·멕시코 FTA 등 통상 네트워크 다변화와 미래차 기술 경쟁력 확보도 병행 과제로 꼽았다.


박성규 HMG경영연구원 상무는 “중국은 국가와 기업의 경계를 결합한 형태로 산업 경쟁을 전개하고 있고, 미국 역시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정책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산업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모든 전략은 국내 생산 기반의 유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자동차산업은 방어적 산업정책을 추진하되 통상 마찰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교한 지원수단이 필요하다”며 “탄소중립을 위한 보급형 보조금에서 전략산업 생태계 사수형 보조금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품이 아니라 '기술 경쟁'으로 시장 경쟁의 구도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이뤄져야할 것으로 봤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자동차산업은 수출 중심 산업 구조 특성상 주요국 산업정책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 역량만으로 미래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충전 인프라와 자율주행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 뿐 아니라 부품업계의 부담도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기존 내연기관 생산 체계를 유지하면서 미래차 대응을 위한 신규 투자까지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구매보조금 중심 지원 구조에서 전기차 보급 확대가 반드시 국내 생산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실제 올해 1~4월 국내 신규 등록 전기차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약 31.1%를 차지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중국산 자동차에 흘러들어가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단 의미다.


김영훈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실장은 “자동차산업은 인건비와 재료비 등 생산비용 비중이 높아 설비투자 중심의 현행 투자세액공제 체계만으로는 지원 효과에 한계가 있다”며 “전기차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과 함께 금융, 고용, 전환 지원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정책 믹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응 속도가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정부 차원에서 국내 완성차 및 부품업계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를 내놓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 변화 속도에 뒤처져있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도 미래차 분야 투자 확대와 제도 개선에 노력하고 있지만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며 “보다 전향적이고 속도감 있는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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