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마케팅의 역풍”…유통업계, 스타벅스 논란이 남긴 숙제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6.05.20 10:33  수정 2026.05.20 10:40

정용진 직접 사과·대표 해임…신세계그룹 즉각 대응 나서

“왜 아무도 못 걸렀나”…대기업 검수 시스템 구조적 허점

‘탈벅’ 확산에도 충성 고객 견고…장기 불매는 의견 분분

화제성보다 감수성…유통업계 SNS 마케팅 경고등

서울시내 스타벅스의 모습ⓒ뉴시스

실시간 반응형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들의 ‘검수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부적절한 마케팅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기업의 콘텐츠 검수 시스템 전반에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내부적으로 검수를 거치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밈(meme)이나 사회적 민감 이슈를 미처 걸러내지 못할 경우 브랜드 이미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외부 소비자 관점 검수 시스템과 사회적 감수성을 반영한 콘텐츠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지난 18일 ‘5·18 탱크 데이’ 논란을 보고 받은 즉시 격노하는 한편, 손정현 SCK컴퍼니 대표를 해임하는 인사 조처를 했다. 또한 관련자들에 대해 그룹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징계를 주문했다.


다음날인 19일엔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이번 사태를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이라 정의하며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정 회장은 또한 “이번 사안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으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며 “그룹 전체의 역사 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룹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겠다”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정 회장이 이번 사안 수습에 직접 나선 배경에는 신세계그룹이 광주 지역에서 진행 중인 여러 사업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스타벅스 운영 계약과 관련한 대외 신뢰도 관리 역시 부담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마트 측의 귀책으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될 경우 미국 본사가 이마트가 보유한 SKC컴퍼니 주식 전부를 35% 할인된 가격에 인수할 권리를 갖고 있다.


현재 그룹이 처한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날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 관련 스타벅스 출입 자제령을 내리고, 5·18 민주화 운동 등을 조롱하면 처벌 받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구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며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일에는 김수완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직접 광주 5·18기념재단 오월기억장소로 찾아갔지만, 재단 측은 만남을 거부했다.


김태찬 공법단체 5·18부상자회 부회장은 ▲스타벅스 코리아의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 ▲경위 설명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진상조사 후 발표 등을 요구했다.


서울시내 스타벅스ⓒ뉴시스
◇ 화제성 좇다 터졌다…실시간 콘텐츠 경쟁 속 커진 ‘검수 리스크’


이런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따갑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SNS 사고’ 수준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대기업의 마케팅 콘텐츠가 통상 다단계 승인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어떻게 아무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느냐”는 반응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대기업에서 이런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최근 기업 마케팅 환경 자체가 빠른 반응과 화제성 중심으로 재편된 점을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SNS를 중심으로 짧고 자극적인 문구, 온라인 유행어와 밈을 활용한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시물 제작과 업로드 주기도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유통·식품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실무자 작성 이후 팀장 검토, 홍보·브랜드 부서 승인, 필요시 임원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 콘텐츠를 게시한다.


사회적 이슈나 민감한 표현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법무·대외협력 조직 검토가 추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역사·정치·젠더 등 사회적 민감성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시간 이슈 대응과 화제성 경쟁이 중요해지면서 콘텐츠 제작부터 게시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고, 온라인 유행 표현이나 밈을 빠르게 차용하는 일이 크게 늘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SNS 콘텐츠는 통상 여러 명이 동시에 확인하는 구조인데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단순 개인 실수보다 검수 체계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며 “최근에는 실시간 반응과 밈 활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콘텐츠 제작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진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스타벅스 텀블러 로고 지우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
◇ ‘일베 손가락’ 데자뷔?…“브랜드 영향력 큰 만큼 더 신중해야”


스타벅스 내부에서는 텀블러 제품명이 기존에도 사용하던 ‘탱크’였다는 점에서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5·18에 관련 표현이 결합된 콘텐츠가 여러 검수 단계를 거치고도 게시된 점이 핵심 문제로 지적된다.


스타벅스의 마케팅·굿즈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2022년 서머 캐리백에서 1급 발암물질인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됐고, 지난해에는 미니 가습기 리콜 사태도 있었다. 품질 관리 실패를 넘어 역사 인식 부재로 확장된 것이다.


이번 논란이 과거 기업들의 ‘일베 손가락’ 논란과 유사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2021년 일부 게임·유통·식품업계에서는 특정 손 모양 이미지나 온라인 커뮤니티 은어 사용 의혹이 불거지며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이 크게 확산한 바 있다.


소비자들은 이번 스타벅스 논란 역시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외부 관여했는지 여부와 함께, 최종 책임 주체가 어디인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공식 사과와 별개로 최종 게시 책임은 브랜드 본사에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업계에서는 이번 불매 움직임이 장기화되거나 더 확산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탈벅’ 인증이 확산하고 있다. 스타벅스 카드를 전액 환불받거나 사이렌 오더 멤버십을 탈퇴했다는 인증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실제 장기적인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신세계그룹이 총수 명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공개 등 비교적 빠른 수습에 나선 데다, 스타벅스 특유의 강한 브랜드 충성도가 변수로 거론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과거 SNS 발언 논란 당시에도 온라인상 불매 움직임이 거론됐지만 스타벅스 이용자 이탈이 장기화되지는 않았다. 앱 기반 리워드 시스템과 개인 맞춤형 혜택, 모바일 주문 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두터운 고정 이용층을 확보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장시간 머무를 수 있는 매장 환경 등을 기반으로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소비자)’ 수요를 꾸준히 흡수해온 점 역시 충성 고객층 유지에 영향을 미쳤다. 단순 음료 소비를 넘어 공간 경험 자체가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스타벅스처럼 대중적 상징성이 큰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들의 사회적 기대 수준 역시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단순 화제성보다 역사·사회적 감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마케팅과 검수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부 직원들 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난 만큼, 최종적으로 콘텐츠를 검수할 수 있는 외부 소비자 위원회 형태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커뮤니티 문화나 온라인 밈 흐름을 잘 아는 일반 소비자들이 참여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마지막 단계에서 점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고 말했다.


이어 “실시간 마케팅 경쟁으로 콘텐츠 제작 속도가 빨라진 측면은 있지만, 이메일 등을 활용하면 외부 의견 수렴도 충분히 빠르게 가능하다”며 “속도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 관점에서 리스크를 걸러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를 만들더라도 최고경영자(CEO)가 실질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마케팅 기획이라도 외부 검수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중단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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