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7월 여름 개봉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배우 정호연이 이번에는 스크린으로 향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통해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고립된 시골 마을 호포항에서 벌어지는 미지의 재난 속 인물 ‘성애’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였다.
6개월간 이어진 액션 훈련과 집요한 캐릭터 분석 끝에 완성한 첫 영화 데뷔작을 선보인 그를 1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마제스틱 바리에르 호텔에서 만났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작의 주역으로 당당히 칸에 입성했지만, 인터뷰 자리에 마주 앉은 그는 여전히 설렘과 감사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기쁨과 동시에 배우로서 느끼는 벅찬 책임감도 교차하는 듯 보였다.
“첫 영화로 이런 작품을 하게 돼서 너무 영광이었어요. 평소에도 팬이었던 나홍진 선배님과 함께하게 돼서 더 행복했고요. 이렇게 역사 깊은 뤼미에르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가 정말 복 받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뤼미에르 대극장에서의 첫 상영은 쉽게 잊기 힘든 순간이 됐다. 영화가 시작된 뒤 스크린에 정호연이 처음 등장하자 객석 곳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그는 그 순간의 감각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응원받는 기분이었어요. 배우로서 제 연기를 본다는 게 굉장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잖아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는데, 박수와 환호를 들으니까 마음이 살짝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와주셨다는 게 감독이 두 배였던 것 같아요.”
나홍진 감독이 정호연에게서 발견한 특별한 면모는 그대로 성애라는 인물로 구체화됐다. 무한한 상상력에 매료되어 망설임 없이 선택한 이 캐릭터는, 감독이 세계관 속에 그려 넣고자 했던 인간의 본질 중에서도 굳건한 선의를 대변한다.
“처음에 감독님께 미팅 요청을 받았고, 미팅한 날 시나리오를 주셨어요. 나중에 감독님께 들었는데 성애라는 캐릭터의 어떤 면을 보고 저한테 시나리오를 주고 싶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시나리오를 받기 전부터도 감독님 팬이었어요. 무조건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는 너무 재밌었고,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게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감독님과 리딩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요. 감독님께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로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투영시키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그중에서도 성애는 선의를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정의감이 굉장히 확고한 인물이고, 그 선의를 가지고 움직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나홍진 감독은 정호연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집요하고 섬세한 연출자였다. 하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테이크조차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명확한 이유와 감정을 향해 있었다고 했다.
“나홍진 감독님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분이세요. 그런데 신인 배우 입장에서는 그런 감독님과 작업한 게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테이크를 많이 가는 데에는 항상 명확한 이유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정말 지쳐 보였으면 좋겠는 순간에는 연기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지친 상태를 담아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 이유들을 굉장히 명확하게 설명해주셨어요. 그래서 심리적으로 지치거나 힘들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감독님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셨던 것 같고, 덕분에 더 다양한 걸 담아내고 싶은 욕심도 생겼습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극 중 성애는 거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뛰고 소리친다. 정호연은 현장의 긴장감과 인물의 에너지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목소리 톤 하나까지 집요하게 조율해야 했다.
“성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감독님과 리딩을 정말 많이 했어요. ‘조금 더 낮춰볼까’, ‘톤을 올려볼까’ 하면서 가장 밸런스가 좋은 소리를 찾다 보니까 그런 목소리가 나온 것 같아요. 실제로 성애는 제 평소 목소리보다 훨씬 하이톤을 사용하거든요. 리딩할 때는 목이 좀 나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근육처럼 적응이 되더라고요. 촬영하는 동안에는 성대가 잘 버텨줬습니다. 대신 후시 녹음할 때가 더 힘들었어요. 한참 뒤에 다시 그 소리를 내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후시 녹음 때 목이 더 나갔던 것 같아요. 스트랩실도 정말 많이 먹었고, 실제로 수건 두르고 자기도 했습니다.”
외적인 변화와 액션 소화를 위한 6개월간의 치열한 준비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총기 훈련부터 카체이싱, 그리고 체중 증량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도전한 끝에 짜릿한 액션신을 완성해 냈다.
“훈련은 한 6개월 정도 받았어요. 총기 훈련도 받았고, 여러 테이크를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도 꽤 오래했습니다. 근육으로만 4kg 정도 증량했어요. 수동 운전면허도 따고, 카체이싱 테크닉도 배우고요. 과정 자체는 어렵기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약간 익스트림 스포츠를 할 때 이런 기분일까 싶더라고요. 거기서 오는 도파민이 있어서 촬영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그 짜릿함이 남아 있었어요. 액션신을 보면서는 ‘와, 내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런 액션이 가능했던 건 감독님 덕분이었어요. 감독님이 배우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셨고, 제작진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셨어요. 정말 많은 논의와 리허설을 거쳐서 만든 장면들이라 저한테도 굉장히 보람찬 신들입니다.”
세트가 아닌 실제 시골 마을의 생생한 현장감과 섬세한 미술 디테일은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되어주었다.
“실제 마을에서 촬영했던 것도 배우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현장감이 엄청났거든요. 미술 하나하나의 디테일이나 카메라 움직임, 앵글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움직일지까지 감독님이 굉장히 섬세하게 준비하셨다는 게 느껴졌어요. 찍으면서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이런 미술 안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니’ 싶었어요. 배우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모든 스태프분들께 감사했습니다.”
동경하던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한 작품에서 만나고, 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여전히 꿈만 같은 경험이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영화들을 보면서 자란 사람으로서, 같은 작품 안에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마이클 패스벤더와는 직접 호흡을 맞춘 장면은 없었지만 지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음악 듣고 춤추고 그러면서 굉장히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지내고 있어요.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신 것 같아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정호연에게 황정민과 함께 호흡한 순간은 모두 배움으로 남았다. 특히 대규모 액션 촬영이 이어질수록 황정민의 한마디와 몸에 밴 노련함은 정호연에게 큰 자신감과 안정감을 안겨줬다.
“자동차 액션신을 정말 오래 준비했는데 첫 촬영 날은 너무 복잡하고 떨렸어요.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거든요. 게다가 배우가 직접 운전하다 보니까 안전 체크도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액션 들어가기 직전에 정민 선배님이 옆에서 ‘자신감 있게 해’라고 딱 한마디 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신기하게 마법처럼 모든 걸 깨끗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자신감이 확 생겼고, 첫 테이크만에 오케이가 났습니다. 그 에너지 덕분에 이후 수많은 액션신들도 자신감 있게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연기적으로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실제 공간 안에 들어갔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행동이나 리액션들이 있잖아요. 때로는 그런 걸 만들어내야 할 때도 있는데, 선배님은 그걸 너무 정확하게 찾아내세요. 물컵 하나를 드는 행동조차도 정말 오래 고민하시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그걸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내시더라고요. 그런 노련함을 정말 많이 배우고 싶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벌써 4~5년 전 작품인데도 아직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잘 모르실 줄 알았는데,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정호연은 연기 데뷔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단숨에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고, 첫 스크린 데뷔작으로는 '호프'를 만나 곧바로 칸 경쟁 부문 레드카펫까지 밟게 됐다. 누구보다 빠르고 강렬한 출발선에 섰지만, 정호연은 연기에 재미를 느낀 지금, 향후 자신이 걸어갈 길을 기대하고 있다.
“저는 아직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갈 길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연극 무대예요. 이번 ‘호프’를 통해서 연기의 재미를 정말 많이 느꼈고,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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