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매개로 영화 형식 확장하는 창작자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는 창작자 역할의 경계를 확장하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유튜버가 영화 수입에 참여하고 뮤지션이 직접 제작한 영화를 선보이는 등, 전통적인 영화의 범주를 넘어선 시도가 이어지며 영화제는 하나의 창작 실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장기하·그린나래미디어
월드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너바나 더 밴드’는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운영하는 문상훈이 그린나래미디어와 함께 공동 수입에 참여한 작품으로,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가 영화 유통 단계까지 직접 관여한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설적 록밴드와는 무관한 콤비 맷과 제이가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운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2025년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과 SXSW 영화제 미드나잇 부문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특히 빠더너스 팀이 칸 필름마켓을 비롯해 해외 현지를 돌며 직접 작품을 발굴하고 수입에 나선 과정이 콘텐츠로 공개되면서, ‘발굴-선정-유통’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유튜브 빠더너스 채널에 소개되며 하나의 서사로 소비됐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는 창작자가 단순 제작을 넘어 콘텐츠의 선택과 소개 방식까지 설계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번역 작업에는 타블로와 그의 딸이 참여하며 또 다른 형태의 협업 구조가 더해졌다. 음악과 언어, 영상이 맞물리는 방식은 영화가 다양한 창작 주체의 해석을 거치며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동시에 장기하는 솔로 정규 1집 ‘산산조각’을 단편 영화 형태로 선보이며 다른 방향의 실험을 이어갔다. 이 작품은 시에서 출발해 무성영화, 그리고 음악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제작 과정을 거쳤다. 장기하가 먼저 시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 연출팀 모래내거동수상자들이 영화를 완성한 뒤, 해당 영상의 러닝타임에 맞춰 음악을 입히는 방식으로 결과물이 완성됐다. 장기하가 '밀수', '베테랑2' 등 영화 음악 작업 경험이 새로운 형식으로 이어진 결과다.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는 “기묘하고 실험적이며 믿기 어려운 결과물 또는 중간 결과물인 ‘산산조각’은 상당 부분이 실내에서 촬영됐다. 시놉시스에 적혔듯이 장기하가 홀로 연기하는 하얀 기하와 검은 기하가 등장하고 베개몬이라는 귀여운 캐릭터도 나온다. 얼핏 하얀 기하가 실재이고 검은 기하가 거울 속 투영물처럼 느껴지지만, 물론 그 반대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다”라며 “이런 영상 위에 흐르는 ‘산산조각’, ‘말도 안 되는 얘기‘, ‘나만 그런 걸까 봐’ 같은 노래는 익숙한 장기하 스타일이면서도 어딘가 실험성이 덧붙여진 듯 느껴진다”라고 평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가진 창작자들이 영화제를 매개로 만나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형식을 확장하는 흐름은 콘텐츠 소비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관객은 특정 매체에 머무르기보다 창작자의 활동을 따라 이동하며 콘텐츠를 소비하고, 영화제 역시 완성된 작품을 상영하는 공간에서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는 플랫폼으로 점차 역할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분명한 과제도 함께 안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창작자들의 참여는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신인 발굴과 미학적 실험이라는 영화제의 본래 기능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가 품은 시도가 창작자 역할 확장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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