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채웠던 ‘수제맥주’의 종말, 하이볼이 메운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6.02.03 06:39  수정 2026.02.03 06:39

‘편의점 붐’ 이후 급제동, 수제맥주 1세대 줄퇴장

하이볼로 옮겨간 소비…고정비·유통 구조가 발목

주세 완화에도 효과는 선별적…"옥석 가리기 본격화"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맥주를 정리하고 있다.ⓒ뉴시스

한때 편의점 매대를 가득 채우던 수제맥주의 질주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코로나19 기간 ‘열풍’처럼 번졌던 수요가 빠르게 식으며 판매량이 급감했고, 업계는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시장 성장세 둔화 속 고정비 부담과 경쟁 심화가 겹치며 파산·회생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1세대 기업으로 꼽히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인수자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최근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한때 수제맥주 시장을 이끌며 주목받았지만, 끝내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며 시장에서 퇴장하게 됐다.


어메이징브루잉 성수점은 현장 양조 시설을 갖춘 개방형 브루펍 형태로 운영되며 한때 수제맥주 소비 확산에 기여한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황 침체 속에서 경영 부담이 커졌고, 경영권 매각도 성사되지 않으면서 결국 파산 절차에 이르게 됐다.


세븐브로이맥주 역시 경영 압박을 버티지 못했다. ‘곰표 밀맥주’로 주목받았던 세븐브로이맥주는 브랜드 계약 종료 이후 실적 악화를 겪다 지난해 6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와이브루어리도 지난달 16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으며, 같은 달 30일 간이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세븐일레븐과 미니스톱 등 주요 편의점과 협업 상품을 출시하며 유통망을 확대해왔지만, 누적된 자금 부담을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수제맥주 업계가 고전하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수제맥주에 몰렸던 수요가 엔데믹을 맞아 수입맥주와 위스키, 하이볼 등으로 이동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기존 국내 주류 업체들 까지 전부 유흥에서 홈술 시장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성장세가 신통치 않아졌다.


초기 성장을 도왔던 편의점이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4캔 1만1000~2000원’이라는 마케팅 정책에 따라 납품단가의 상한선이 정해지면서 업체별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고품질의 맥주는 생산단가를 맞추기 어렵게 됐고, 저풍미의 ‘콜라보 맥주’만 넘쳐나게 됐다.


급기야 편의점에서 수제맥주를 ‘골라 받기’ 시작하면서 엎친데 덮친 격이 됐다.


최근 편의점에서 수제맥주 운영 상품수를 줄이고 다양한 와인을 비롯해 RTD 하이볼이나 칵테일과 같은 기타주류들로 매대를 채워나갔다. 또 위스키와 전통소주 등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재료비와 물류비,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높아진 점도 업계 전반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기업 계열 양조장과의 경쟁, 편의점 중심 유통 구조 역시 중소 수제맥주 업체에는 불리한 환경으로 꼽힌다.


수제맥주업계는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리한 마케팅 활동을 지속하면서 어려움이 배가 됐다.


수제맥주 업체들은 주세법 개정으로 가파르게 시장 규모를 키웠지만 편의점업계 및 이종업계와 협업 마케팅에만 치중하면서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수제맥주가 진열돼 있다.ⓒ뉴시스

실제로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이후 뚜렷하게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21년 152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에는 752억원 수준까지 급감했다.


이를 배경으로 업계에서는 수제맥주 업계의 침체를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엔데믹 이후 소비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며 성장 동력이 약화된 데다, 음용 문화의 변화까지 겹치며 전반적인 타격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제맥주 업계의 어려움은 특정 기업의 경영 판단 문제라기보다, 엔데믹 이후 주류 소비 흐름과 음용 문화가 빠르게 바뀐 영향이 크다”며 “시장 환경이 달라진 상황에서 기존 성장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살아남은 수제맥주 업계는 하이볼 및 RTD주류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커짐에 주목하고 그에 발맞춰 하이볼 제품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또 마니아층이 형성된 고부가가치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는 등 수익성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수제맥주 업계가 단기간에 실적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맥주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재료값 상승도 어려움을 고조시키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맥주의 원료인 맥아와 홉 가격이 급등해 수익성이 위협받고 있다.


결국 수제맥주업계는 새로운 판매처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판매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제품을 만들어도 이를 소비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알릴 수 있는 데다, 치열한 시장 경쟁 논리에 따라 금방 사라져야 한다는 현실 때문이다.


현재 국내 수제맥주업체 95% 이상이 편의점, 대형마트 등 소매점이 아닌 펍이나 음식점 등에서의 판매에 전적으로 매출을 의지하고 있다. 이 마저도 캔 혹은 병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영세한 업체들은 소비자에게 알릴 기회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시장 트렌드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하이볼 등 다른 주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단 돈을 벌어야 새로운 수제 맥주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수제맥주업체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매출처를 확보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구조적 부담 속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주류 주세 완화 정책이 수제맥주 업계의 회복 계기가 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 전반의 비용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세제 변화가 경영 여건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정책 효과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보다는, 재무 구조가 안정된 일부 업체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생산 규모와 유통망을 갖춘 업체일수록 세제 혜택을 가격 경쟁력이나 마케팅에 활용할 여지가 있지만 재무 여력이 취약한 업체들은 손익 보전이나 비용 부담 완화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업계에서는 결국엔 수제맥주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선별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브랜드력과 유통 경쟁력을 갖춘 일부 업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세 완화가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지만, 시장 판도를 뒤집을 만큼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결국 기업에 남아있는 체력과 제품 차별화 여부에 따라 회복 속도도 갈리고 시장 재편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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