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한미 정상회담이 오는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마주한다.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될 뻔했으나, 조기귀국으로 무산된 바 있다. 미국발(發) 관세 전쟁에 한숨을 돌렸으나 그사이에 외교와 안보 현안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이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향후 한미관계의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관건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의 초점을 중국에서 북한으로 돌려놓느냐다. 한미 관계에 '폭탄'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국방 전략(NDS)이 곧 발표를 앞둔 가운데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에 대비한 미군의 재편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트럼프 정부가 북한 문제를 뒷순위로 두는 분위기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미북대화를 지지하더라도 한국에서 가장 절박한 현안은 비핵화다. '핵 있는 북한'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걸친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문제는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만 됐다. 트럼프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는 입장이나 미 조야(朝野)에선 대북 협상 시 비핵화보다 '동결 및 군축'에 초점을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존의 한미 역할 분담, 즉 한국은 재래식 전력, 미국은 핵전력으로 대북 억제라는 틀이 흔들리지 않게 말 한마디마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핵무장론'만 자극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담화를 통해 "우리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재명 정부와 그를 보좌하는 국방·외교·통일 당국은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할 거란 믿음을 버릴 때가 됐다. 이번 한미 정상 간의 만남에서도 미국이 중국 견제에 한국이 불필요하게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물론 한반도에 드리워진 핵구름을 걷어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의 보따리를 워싱턴에 들고 가야 할 것이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의 진짜 시험대가 다가온다. 워싱턴에서는 통상 협상 결과를 두고 양국이 다른 주장을 하는 '트럼프식(式)' 협상에서 제대로 된 실속을 찾아야 한다. 지난 출장길에 영국에서 만난 외교관은 외교는 단순히 '빈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힘에 바탕한 말'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발언에 무게가 있으려면 실제 한국이 북핵 문제에 미국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의지와 현실적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 국방은 적(敵)에게 좌절을 줄 정도로 압도하는 능력 실현에 초점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할 말은 하겠다'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한 말의 강성(强性) 외교는 국가에 어려움을 겪게 할 수 있다.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는 북한에 대해 우려의 입장만 내놓는 현 정부의 모습이 미국이 봤을 땐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주적은 위협이 될 순 없다. 70년 넘게 이어온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 안에서 이번 회담이 동맹의 미래를 굳건히 다지며 한반도 목줄을 조여 오는 핵 위기의 숨통을 틔우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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