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방문부터 민간단체 접촉 '광폭 행보'
李정부 유화 제스처에도 北 '무대응' 지속돼
잇단 선제적 조치에 일방적 유화책 남발 지적
곧 韓美정상회담, 對北정책 긴밀히 공조해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취임한 후부터 남북 관계 신뢰 회복을 위해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만큼 남북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고 꺼져있던 대화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정부의 잇따른 선제적 조치에도 북측이 일관되게 '무반응' 대응을 펼치고 있어 일방적인 유화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李정부 대북정책에 멍석 깔아주는 통일장관
정동영 장관은 2년 넘게 단절된 남북 연락 채널을 점검하는 것을 시작으로 종교·민간단체 등을 만나는 '광폭 행보'를 벌이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 취임식에 앞서 경기 파주 판문점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 관계자들과 함께 '자유의 집' '평화의 집' 시설 등을 방문하고 장기간 단절된 남북 연락 채널 상황을 점검했다.
이후 정부서울청사로 넘어온 정 장관은 취임식 직전에 기자들과 만나 북한을 향해 "빨리 화해와 협력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취임식에서는 "강대강의 시간은 끝내고, 선대선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을 지난달 31일 만나 개성공단 재가동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개성이 다시 열리는 날 한반도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라며 "정부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통일부 장관이 이같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대표단은 "정부 고위 당국자가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공식 사과를 표한 것에 큰 의미를 둔다"고 평가했다.
이달 들어선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와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기대를 건다"면서 "분쟁과 갈등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 안정을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윤 대사대리에게 한반도 평화공존과 남북 관계 복원이 중심이 되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공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지난 4일에는 종교계와 민간단체를 만나 남북 관계 개선에 힘을 모아달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고 과거 남북 불교 교류를 언급하는 등 남북 관계 경색 국면 속에서도 문화와 종교를 매개로 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국회에서는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장단과의 면담에서 정 장관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 북측과 접촉이 성사되면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계속 가동됐다면 지금 전혀 다른 남북 관계가 되지 않았겠느냐"며 민간이 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5일에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진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납북자 생사 확인 문제 등을 논의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간 대화 추진과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정 장관의 이같은 행보는 남북 관계부터 살려보자는 취지와 더불어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남북 관계에 드라이브를 걸어보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평화 손짓 보내도 '무대응' 일관…美생각은 다를 수도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북 전단 살포 중지, 개별 북한 관광 허용 검토, 대북 확성기 철거 등 남북 유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지난달 인천 강화서 발견된 북한 주민 시신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인계하려고 했지만, 지난 5일 북한의 무반응으로 송환이 불발됐다.
통일부는 북한이 응답하지 않으면서 유전자 검사 뒤 시신을 화장해 무연고 장례를 치를 계획이다. 이 시신은 무연고 시신 처리 절차에 따라 화장한 후 소규모의 납골 형태 등으로 지차체 시설에 보관될 예정이다.
군 당국은 전날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전방에 설치한 20여개의 고정식 확성기 철거 작업을 마무리했다. 국방부는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해 우리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며 지난 4일부터 철거에 나섰는데, 하루 만에 완료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잇따른 강도 높은 유화 정책에도 북한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북한에 계속 매달리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만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 협상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조율하면서 북핵 대응 문제와 대북 정책 등을 비중 있게 다룰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엇박자'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도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대북정책에서 한미 간 공조를 재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미 상당수 시행해 왔기에 올해 안에 남북대화는 힘들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계속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도 (유화 정책에 대한) 한계가 올 것이고, 더 이상 쓸 수 없는 카드가 오는 시점이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우호적인 조치를 취하는 단계는 내년 봄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남북 관계에서 미국이 예상하는 속도보다 빨리 대북정책이 전개된다고 하면 (미 측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어느 정도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장에 가야 한다는 여론이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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