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향유에 너무나 열정적인 그들
해괴한 용어 찾아내 탈북동포 모욕
총리 후보자 핑계가 너무 구구하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어제와 오늘 이틀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총리의 경우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국회 의석 구도 하에서는 요식 절차일 뿐이다. 물론 도저히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판단으로 대통령실이 시그널을 주거나, 당사자가 국민을 대할 낯이 없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후보직을 내놓으면 모르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이재명 1인 천하’에서 대통령이 결정한 일을 누가 거스르겠는가.
그래서 더 그렇겠지만 청문회에 나온 김 후보자는 느긋한 표정, 점잖은 어조로 답변을 이어갔다. 국회 상임위에서 국무위원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러대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 본인 대신에 남이 낯간지러워해 줘야 할 정도의 표정 및 어조 관리다. 총리가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 기회에 이미지를 확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법하다. 청문회나 대정부 질문이나 마찬가지지만 어조와 표현은 상대적이다.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가면 질문하는 야당 의원들도 소리 지르고 삿대질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특히 보수정당 의원들은 단체전에 취약하다. 시쳇말로 ‘갖고 놀기’에 그만이다.
권력 향유에 너무나 열정적인 그들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거대의석으로 날이면 날마다 안다리 걸기, 밭다리 걸기 재주를 발휘해서 마침내 3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그 공의 8할은 이 대통령 몫이다. 역대 어떤 좌파 정당보다도 확고하게 당 장악력을 발휘했다. 정치 민주화, 혹은 문민화 이후 가장 강력한 정당 리더십을 과시했던 YS, DJ는 측근이나 추종자들로부터 주군으로 떠받들렸지만, 이재명은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주로 개인적 비리 혐의로 인한 검찰수사를 정권에 의한 ‘정치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 당원과 좌파 민중의 결집을 이끌어냈다. 정권 회복의 동력을 만들고 이끌었으니 공을 다 차지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권력이 한 사람의 손에 장악되면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추측하긴 어렵잖다. 우리가 그 지속성에 아무런 의심도 두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는 깨닫지 못하는 새 빛바래고 만다. 민주주의는 아주 다의적인 용어다. 수식어에 따라 그 의미와 내용이 달라진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이고 그 근간은 법치주의다. ‘자유’를 빼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성격은 아주 달라질 수가 있다. ‘개인의 권리’가 ‘인민의 권리’로, ‘법치’가 ‘인치’로 변색되고 말 개연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제시한 명제다. 그는 구소련 이오지프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제를 이 우화소설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독재자가 들어서면 인권 보호 장치로서의 법은 권력 수호 장치로서의 법으로 대체된다. 그 체제에서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Napoleon)과 그의 충복들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폭정의 고통을 공유한다. ‘평등’의 가치만 빼앗기는 게 아니다. ‘자유’도 같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설마 그런 일이! 그렇게 반박하고 싶겠지만 실상(實狀)은 우리의 기대를 비웃는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패러디하자면 ‘세상은 넓고 독재자는 많다’.
해괴한 용어 찾아내 탈북동포 모욕
8개 사건 12개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극렬 지지 세력의 엄호하에 대선에 출마해 그 직을 차지했다. 그러자 그의 휘하 입법 전위대인 민주당이 ‘대통령 재판 중지법’ ‘대통령 면소법’ ‘법원조직법 개정’ 등을 통해 철옹성을 쌓을 기세를 보였다. 행정·입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까지도 장악하겠다는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다. 취임 초기 여론 동향이 신경 쓰이고,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은 욕심도 생겨서 주춤하고 있지만 아마 참을성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절대 권력을 탐할 만한 조건을 갖춘 집권자와 그 세력이 이 선에서 법치주의에 순응할까? 그래 주면 야 좋겠지만 그걸 기대하기에 그들은 권력 향유(享有)에 너무 열정적이다.
이런 정부의 첫 총리로는 김 후보자가 적격일 수도 있겠다. 어제 청문회 하는 것 들어보니까 그런 인상이 더 뚜렷해졌다.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이 올해 정부 예산 규모를 묻자 김 후보자는 숫자를 대지는 못하면서 “추계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얼버무렸다. 김 의원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물은 데 대해서는 “20~30% 사이로 알고 있다”라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기준 44.8%였고,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집행되면 48.4%, 정부가 최근에 낸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원안대로 통과돼 집행된다면 49.0%로 예상). ‘민생“이 국정 방향이라고 강조한 사람의 국가 살림살이에 관한 관심과 인식이 이 모양이라니!
김 후보자는 중국 칭화대 석사학위 논문에서 탈북자를 ‘도북자(逃北者·북에서 도망간 사람)’ ‘반도자(叛逃者·배반해 도망간 사람)’라고 표현한 데 대한 야당 의원들의 해명 요구에도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총리 후보자 핑계가 너무 구구하다
김정은 집단의 폭정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국경을 넘은 북한 동포들을 하필이면 그 용례(用例)를 찾기도 어려운 비하·모멸적 표현으로 지칭한 까닭이 뭔가? 그 의도는 그 자신이 알고, 탈북동포들도 알고, 국민 또한 안다. 솔직히 그렇게 쓴 배경을 설명하고 양해나 용서를 구하면 좋을 텐데 이들은 언제나 핑계가 구구하다(‘이들’은 소위 진보 정치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논문 표절률이 41%나 되더라는 김희정 의원의 지적에도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 칭화대에서 쓴 논문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저 낯 두꺼움이라니!
이 대통령에게는 정말 민생의 안정과 발전에 대한 대안을 가진 총리감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을 무조건 떠받들 충복이 소망스러울 수가 있다. 어차피 총리에게 재량권을 표 나게 줄 생각이 없을 테니까. 그는 국민의힘이 10대 의혹을 제기하는 등 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것과 관련 “청문회에서 본인의 해명을 지켜봐야 한다”라고 했다.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 하자를 많이 가진 입장에서 누구를 재단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전과 4범 김 후보자의 자질·자격의 하자가 자신의 전력(前歷)을 희석하는 효과를 기대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문제에 답할 것이고 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했다. 청문회에 솔직하고 당당하게 임할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으나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국민의힘이 신청한 증인 5명 모두 민주당에 의해 저지됐다. 자료 제출이 미비하고 부실하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김 후보자 자신은 역대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전례와 관례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비난해 마지않던 보수정권과 자신들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이재명 정권, 출발부터 여러 면에서 예사롭지 않다. 그들의 면면과 행태들이 보여주는 바로는 그렇다. 오늘이 6·25동란 75주년이다. 김일성의 터무니없는 국토완정(國土完整) 야욕에 맞서 조국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거나 부상한 국군 용사와 외국 참전용사들이 없었다면 권세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 그대들도 없었을 것임을 제발 잠시라도 명심해 주시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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