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배우의 신체적·감정적 안전을 보장하며, 촬영 현장에서 성적 표현이나 민감한 접촉이 포함된 장면의 동선·합의·경계를 조율하는 제3자의 역할을 맡는다. 2017년 미투 운동 이후 미국과 영국, 호주 등에서 제도화됐지만, 한국은 이제 막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권보람 씨가 자리하고 있다.
권보람 씨는 미국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전문 기관인 IPA(Intimacy Professionals Association)에서 정식 교육을 수료해,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권보람 씨는 영화 '영주'와 '빅슬립' 프로듀서로, 성평든센터 든든에서 교육을 들은 친구를 통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접하게 됐다.
"친구가 성평등센터 든든의 교육을 듣다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강의 중 언급한 걸 듣고, 저한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든든에 연락해 알아보니 한국에서는 교육할 수 있는 사람도, 활동하는 사람도 없어 직접 IPA에 직접 메일을 보내 알아봤죠. 서류 심사와 인터뷰를 거쳐야 교육생이 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해 영어로 된 온라인 교육을 받았고, 마지막 5일은 뉴질랜드에서 실습 교육을 받았습니다.”
IPA는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에서 인증한 공식 교육기관으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역할과 권한을 명확히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업계 전반에 적용되며, 노동조합이 촬영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은 현장에 적용할 기준 자체가 부재한 상태다.
“할리우드는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이 멈추면 돌아가지 않아요. 그런 곳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룰이 정확히 있죠. 한국은 그런 기준이 없어요. 표준 계약서는 있지만, 배우나 스태프 간 대하는 방식 등 현장에서 통용되는 표준적인 룰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 맞게 매뉴얼이 바뀌거나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보람 씨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과의 협업을 통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제도의 국내 도입을 위한 기반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제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상황에서, 그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존재 자체를 알리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도입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걸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어요. 현장 투입의 필요성도 알리려고 하고 있고요. 든든과 함께 공개 강좌도 진행했어요. 지금은 전체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우선이에요."
"책임감이 굉장히 커요. 저도 알고 시작했지만, 지금이 더 커요. 처음에는 한국에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무슨 신념으로 한 건 아니고, 지금 안 하면 한국은 더 늦어질 텐데 싶었어요. 그런데 자격을 따고 나니 '당신이 있어서 이걸 처음 알게 됐다'는 말들을 많이 듣고 있어요. 그래서 부담도 커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은 아직 개념조차 생소한 국내 환경에서, 명칭조차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해외 보도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번역이 반복되며, 현장 안팎에 혼란을 주는 사례도 있다. 용어의 번역 방식 하나가 이 직업의 오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권보람 씨는 명확한 개념 정립의 출발점을 단어 그대로의 사용에서 찾는다.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외 기사에서 '친밀감 조정자' 같은 식으로 번역되는데, 그건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요. '인티머시 신'은 단지 키스신이나 노출신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다루는 장면도 포함됩니다. 이런식으로 단어 개념을 인지해주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란 직업이 마냥 낯설지는 않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서 실제 작품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권보람 씨는 관심이 이 제도의 첫 사례를 앞당길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 더는 낯선 이름이 되지 않도록, 지금은 존재를 알리고 자리를 만들기 위한 시간 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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