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연극 '헤다 가블러'서 헤다 역
6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헤다 가블러’는 행복한 짐이자 고통의 산물인 것 같아요. 처음엔 부담감 때문에 공연 중 대사가 안 나오고, 관객들이 나가버리는 꿈을 꿀 정도였어요.”
ⓒLG아트센터
배우 이영애가 32년 만에 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 헤다로 무대에 섰다. 헨리크 입센이 만든 여성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인 역할로 꼽히는 헤다는, 귀족인 가블러 장군의 외동 딸이자 주변의 찬사를 받는 미인이지만 고지식한 학자 조지 테스만과 충동적으로 결혼해 권태를 느낀다. 연극은 그녀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단 이틀의 시간을 다룬다.
‘헤다 가블러’는 모두가 선망했던 여성이 결혼 이후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다루면서, ‘여성 햄릿’에 비견돼 왔다. 때문에 이 여성의 심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앞서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헤다 가블러’ 초연 당시 이혜영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영애가 LG아트센터와 손잡고 이 인물을 연기하게 됐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해왔지만, ‘헤다 가블러’는 예전부터 깊이 매료되었던 작품이에요. 특히 출산과 육아, 사회생활을 겪으며 쌓인 감정들이 헤다를 표현하는 데 성숙함을 더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50대가 헤다를 그리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상객합니다.”
전인철이 연출한 이번 연극은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을 바탕으로 했다. 대사가 짧아지고 표현이 직접적이 되면서 원작의 무거움이 줄었다. 이영애 역시 헤다의 공허함, 고독함, 우울함 등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어디엔가 있을 법한’ 여성의 모습을 그러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제목 자체가 행복한 짐이 될지는 몰랐어요. 무작정 헤다라는 타이틀에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배우로서 다양한 걸 많이 보여주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악몽을 꿀 정도로 부담감이 심했던 것 같아요.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내가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역량이 될까’ 걱정했죠. 그래도 하나 하나 이겨내가고 있고, 그것이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과정이 힘든 만큼 무대에서의 희열은 더 컸고요.”
ⓒLG아트센터
무엇보다 이영애가 가장 큰 ‘희열’을 느꼈던 지점은 자신과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서 오는 희열이었다. 특히 이영애는 “헤다 가블러는 정답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와는 다른 헤다를 연기하며 오히려 큰 재미와 희열을 느껴요. 저와 같은 인물이었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헤다를 굳이 120년 전 여성으로만 보진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결혼제도 같은 것을 떠나 현대사회의 여러 굴레, 그러니까 남성도, 여성도 느낄 수 있는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틀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인물로 폭넓게 해석했어요. 보시는 분들도 폭넓게 해석하면 극을 보는 재미가 더 크지 않을까요?”
이영애가 만든 헤다의 감정을 더 가까이서, 섬세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연출 기법도 인상적이다. 공연 도중 라이브캠을 활용해 무대 위의 헤다를 클로즈업하고, 뒤편 스크린에 비추는 식이다. 연출가의 아이디어지만, 매체 연기에 익숙한 이영애가 카메라 구도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영애가 극중 입은 의상도 직접 의견을 내 반영됐다.
“제가 앵글에서만 연기를 해왔던 사람이니까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기도 하고, 감정들을 섬세하게 전달하기에도 영상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의상 역시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의상이 있긴 했지만, 제가 느끼기엔 헤다가 ‘보라색’일 것 같아서 제안했어요. 강렬한 레드와 어두운 블랙의 중간쯤인 거죠. 또 수트 바지와 치마 사이의 치마 바지 역시 마찬가지고요.”
‘헤다 가블러’를 통해 이영애는 무대, 연기에 대한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엇을 하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전히 배우를 보고 오는 관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 안 되잖아요. 관객들도 ‘얘(이영애)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마음은 내려놓고, 오로지 헤다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셨으면 해요. 저의 헤다를 통해 치유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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