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아시아의 크로아티아!´

이충민 객원기자 (robingibb@dailian.co.kr)

입력 2009.02.11 18:26  수정

전광석화 같은 북한 축구 ´90년대 크로아티아 연상´

26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격파한 북한 대표팀은 ‘원초적’이었다.

북한은 11일 평양서 열린 사우디아바리아와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 홈경기에서 전반 28분 터진 문인국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승리했다.

사우디의 파상공세에 고전하다가도 수비진에서 볼을 잡으면 즉각 허리를 거쳐 전광석화 같은 속공으로 진행된다.

사우디전에서 드러난 북한축구는 지난 1990년대를 호령한 ‘유럽 강호’ 크로아티아 대표팀과도 매우 흡사하다.


공격진도 망설임이 없다. 특히 일본 대표팀처럼 후방에서 횡패스-허리에서도 횡패스-전방에서도 횡패스만 고집하다가 전후반 90분을 허무하게 소화하는, 상대팀 방심만 노리는 지루한 ‘안전제일’ 축구 작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안영학, 차정혁 등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는 볼만 잡으면 무조건 ‘골잡이’ 정대세와 ‘유럽파’ 홍영조 향해 패스했고, 공격진은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지 않고 오버헤드킥과 발리 슈팅, 헤딩슈팅 등으로 연결했다. 단 1초도 지체하는 법이 없었다.

또 정대세와 홍영조가 쉼 없이 뛰며 사우디 수비진을 괴롭히는 사이, 발 빠른 문인국이 공간을 확보해 끊임없이 득점기회를 만들었다.

첫 골도 북한의 속도축구에서 나왔다.

‘중동축구 자존심’ 알 카타니를 중심으로 사우디의 무모한 중앙공격을 가볍게 차단한 북한은 곧바로 역습을 진행했고, 페널티박스 안 홍영조의 발뒤꿈치 패스에 이은 문인국 쇄도로 골을 빚어냈다.

사우디전에서 드러난 북한축구는 지난 1990년대를 호령한 ‘유럽 강호’ 크로아티아 대표팀과도 매우 흡사하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아르헨티나, 루마니아, 덴마크 등 전통의 축구강국들을 상대로 ‘선 수비 후 공격’ 역습전술을 주안점에 둔 환상적인 속도축구를 펼쳤다.

수비에서 이고르 투도르-허리에서 보반, 프로시네츠키, 야르니-공격에서 다보르 수케르, 보반 등으로 이어지는 전광석화 속도축구에 축구강국들은 거푸 쓰러졌다.

특히, 독일은 유로 1996 8강전에서 발칸반도 전사들에게 혼쭐이 났다. 경기결과는 2-1 신승이었지만 경기내용 면에서는 다보르 수케르를 중심으로 한 크로아티의 속공에 압도적으로 끌려 다니며 뒤통수만 무수히 얻어맞았다.

독일은 이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2년 후인 1998년 프랑스월드컵 8강전에서 다시 한 번 ‘속도축구 절정’ 크로아티아 전사들을 만나 0-3으로 대패했다.

북한이 지난 1990년대 당시 크로아티아와 비슷한 점은 조직력과 선수구성이다. 북한과 크로아티아는 철저히 철옹성 수비진을 구축한 채, 상대 공격패스를 차단하면 허리부터 공격진까지 5명 이상이 상대진영으로 몰려가 득점기회를 노린다.

공격전개는 ‘허겁지겁’하거나 ‘우유부단함’이 아닌 치밀함과 짜임새 있는 속전속결이다. 자신에게 온 공을 빈 공간 동료에게 원터치로 내준 뒤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다. 목표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슈팅을 시도하고 자기진영으로 복귀하는 것.

선수구성도 비슷한 면이 많다.

크로아티아에 공격 마침표 다보르 수케르가 있다면, 북한엔 정대세가 있다. 둘은 논스톱 슈팅을 특히 잘하며, 탁월한 골 결정력과 공 관리 능력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상대 페널티박스 내를 자기 안방처럼 편안하게 생각하고 매우 침착하게 행동한다.

또 크로아티아에 좌우 측면을 헤집고 벼락같은 슈팅과 크로스를 시도하는 야르니가 있었다면, 북한엔 홍영조가 있다. 홍영조는 북한 대표팀 선수들 중 유일하게 유럽 프로1부리그 무대를 누비는 기술적인 선수로 야르니처럼 농익은 여우 플레이와 과감한 슈팅, 순간적인 판단 센스를 자랑한다.

끝으로 크로아티아에 날카로운 스루패스와 경기조율을 책임지는 ‘팀 내 살림꾼’ 보반이 있다면, 북한에는 안영학이 있다. K리그 수원삼성 소속 안영학은 달리 비유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국내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의 크로아티아’ 북한의 돌풍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 2010년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에 북한이 진출한다면, 크로아티아의 속전속결 역습속도축구 스타일을 재현, 전 세계 축구팬들을 경악케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11일 오후 8시 30분(이하 한국시간)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서 열리는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4차전 이란전을 치른다. [데일리안 = 이충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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