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최희암호’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전자랜드는 3일 잠실학생체육관서 열린 2008-09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꼴찌 SK에 67-83으로 완패, 최근 3연패 수렁에 빠졌다.
올 시즌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던 전자랜드는 현재 5승 9패로 불과 리그 8위에 그치고 있다. 강병현-정영삼-정병국으로 이어지는 영건 파워를 앞세워 개막 초반 2연승으로 반짝했지만, 이후 12경기에서 단 3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벌써 3연패만 시즌 세 번째.
지난 주말 동부전에 이어 꼴찌 SK를 상대로도 초반부터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끌려 다니는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도마에 올랐다. 선수들의 투지 부족은 물론, 덩달아 최희암 감독의 전술부재에도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며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 최희암호의 위기 ‘전자랜드 험난한 리빌딩’
아마 시절 연세대학교를 국내 최강으로 이끌며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던 최희암 감독이지만, 프로무대에서는 화려한 명성과 달리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울산 모비스를 통해 뒤늦게 프로 사령탑에 입문한 최희암 감독은 데뷔 첫해이던 02~03시즌 모비스를 6위(25승29패)로 PO에 진출시켰지만, 이듬해인 03~04시즌 성적부진으로 결국 두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특히 리빌딩 과정에서 당시 강동희,김영만 등 전신 부산 기아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인위적으로 정리하는 무리한 세대교체로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했다.
절치부심한 최희암 감독은 지난 2006년, 이전 2시즌 연속 꼴찌에 그친 인천 전자랜드의 지휘봉을 잡으며 다시 프로농구 코트에 복귀했다. 모비스 시절에 이어 또 한번 연세대 동문이던 박수교 전 감독(단장)의 뒤를 이어 망가진 팀들을 ‘리빌딩’하게 된 인연도 이채롭다.
그러나 전자랜드 최희암호는 기대할 만큼의 리빌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07시즌과 2008시즌, 전자랜드는 번번이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하고 PO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간 하위권에 그치면서 외인 선발과 신인 드래프트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유망주를 대거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세대교체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2008시즌에는 비록 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9승 25패로 역대 PO탈락팀 중 최고의 승률을 기록하고도 아깝게 탈락했다는데 위안을 삼아야했다.
■ ‘잘못된 외국인 선발, 포지션 교통정리 실패’
올 시즌을 앞두고 전자랜드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지난해 정영삼에 이어 올해는 신인 드래프트 4순위로 장신 포인트가드 강병현이 가세한 데다 외국인 1순위로 전천후 득점기계 리카르도 포웰을 영입하며 4강 이상의 전력으로 기대를 모았다. 김성철-조우현-황성인-정선규-이홍수-주태수 등으로 이어지는 풍부한 선수층은 창단 이래 최고의 깊이를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결과는 참담하다. 선수 개개인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모래알 조직력은 팀으로서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잘못된 외국인 선발과 포지션 교통정리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순위로 기대를 모았던 포웰은 득점력은 뛰어나지만, 빈약한 수비와 지나친 독불장군식의 플레이로 오히려 팀워크를 해치기 일쑤다. 포웰은 빅맨이라기보다는 외곽 플레이를 즐기는 포워드/가드형의 스윙맨에 가깝다.
어느 정도 골밑플레이를 해주던 지난해의 테렌스 섀넌에 비해 이기적인 성향이 더 강한 데다 수비력은 오히려 떨어진다. 경기가 뜻한 대로 풀리지 않으면 벤치의 작전도 무시하고 슛을 난사하거나 판정에 항의하다가 백코트도 불성실하기 일쑤다.
사실 최희암 감독은 그간 외국인 선수선발로 한 번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역대 프로농구 감독 중에서 외국인 선발 1순위 지명권을 무려 세 번이나 얻었던 경우도 최희암 감독이 유일하다. 모비스 시절이던 2004년에는 1순위로 단신 포워드 체드 핸드릭을 뽑았지만, 부상으로 단 1경기 만에 퇴출됐다.
2007년 전자랜드에서는 득점왕 테렌스 섀넌을 선발하며 그 해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까지 수상했지만, 정작 PO진출에는 또다시 실패했다. 1순위 용병이 1경기 만에 중도 퇴출된 것이나, 그해 최우수외국인 선수가 팀을 PO에 이끌지 못한 것은 모두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여기에 자유계약시절이던 2006년에는 키마니 프렌드가 PO 경쟁이 치열하던 시즌 막바지에 부상으로 중도하차했다. 이 정도면 지독한 징크스라고 할만하다.
전자랜드는 유독 센터복이 없는 팀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도 신인드래프트에서 최대어 하승진을 놓치며 전자랜드는 높이 보강이 가장 절실했지만 최희암 감독은 또다시 득점력이 좋은 스윙맨 타입의 포웰을 우선순위로 선택했다. 경쟁팀들의 높이가 높아진 데다 이미 슈터 자원이 넘쳐나는 전자랜드에서 포웰의 가세는 오히려 공수의 불균형만을 부채질했다.
최희암 감독은 역대 외국인선발에서 한 번도 정통 빅맨을 뽑은 적이 없다. 섀넌을 뽑았던 2007년에는 레지 오코사와 테렌스 레더가 있었고, 포웰을 뽑은 2008년에는 브라이언 던스턴과 크리스 다니엘스, 캘빈 워너 등을 그냥 지나쳤다. 선수의 개인능력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능 있는 국내 선수들과의 상성이나 포지션 밸런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외국인 선발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 최희암 시행착오 ´모비스를 본받아라´
국내 선수진도 마찬가지다. 정영삼·강병현·정병국·정선규 등 재능 있는 자원들은 많지만 대부부분이 슈팅 가드 자원에 편중된 반면, 정통 빅맨은 주태수 정도밖에 없어서 포지션 불균형이 극심하다.
황성인 이외에는 정통 포인트가드도 전무하다. 선수들의 역할이 중복되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데다, 스몰 라인업을 자주 구사하다보니 가뜩이나 열세인 높이가 더욱 빈약해진다.
최희암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해부터 FA와 트레이드로 야심차게 영입했던 ´용띠´ 3인방 김성철·황성인·조우현은 모두 올해 연봉 20위권에 드는 고액연봉자들이지만, 수시로 부상자 명단을 오르내리며 한 번도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다. 현재 조우현은 아예 출전조차 못하고 있다.
3명을 합쳐 올해 지불해야할 연봉 합계만 무려 7억에 이른다. 2억대 벤치워머를 3명이나 보유한 팀도 전자랜드가 유일하다. 하지만 정작 팀공헌도는 올해 연봉 5900만원에 불과한 2년차 정병국의 개인기록에도 못 미치는 것이 ‘먹튀 트리오’의 쓸쓸한 현실이다. 투자와 시간 대비 효율성은 몇 년 째 마이너스에 가까운 전자랜드를 가리켜 ´한국판 뉴욕 닉스´(NBA)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자랜드와 가장 비교되는 팀은 바로 모비스다. 지난해 9위로 참담한 시행착오를 겪었던 유재학 감독은 올 시즌 화려하지는 않지만 견실한 외국인 선수인 브라이언 던스턴과 오다티 블랭슨을 뽑았고, 무명이거나 미완의 대기에 가깝던 김현중·우승현·김효범·천대현 같은 선수들을 키워내며 불과 한 시즌 만에 완벽한 리빌딩에 성공했다.
모비스는 10개 구단 중 국내선수들의 네임밸류는 가장 떨어지지만, 정작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간의 역할분담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고액연봉자도 거의 없고, 우지원이나 이창수같은 노장들도 짧은 출전시간동안 식스맨의 역할을 120% 수행, 농구가 돈이나 네임밸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랜드의 두꺼운 선수층은 사실 모비스는 물론이고 KT&G나 동부에 견줘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건만, 전자랜드의 리빌딩은 여전히 기약 없는 ‘버퍼링’만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로 계약이 만료되는 최희암 감독의 근심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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