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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7천만 자유인의 '3·16 오므라이스 만찬'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3.03.20 07:00 수정 2023.03.20 07:00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한일의 경제성장과 문화창달 이끈

자유·인권의 가치 '바람 앞의 등불'

한일관계 정상화는 선택 아닌 필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평가받을 것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1차 만찬을 마치고 도쿄 긴자의 한 양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1차 만찬을 마치고 도쿄 긴자의 한 양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2년만에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방일한 것이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일거수일투족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긴자에서 스키야키와 이나니와 우동을 먹은 뒤, 또다른 양식당에서 오므라이스·함박·하이라이스와 치즈를 주문했다는 데일리 스포츠 기사에는 백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중에는 "'고독한 미식가'를 좋아한다지만 이만큼의 요리를 먹었다니 놀랍다"며 "둘 다 60대일텐데 2차로 간 양식당에서 주문한 품수가 많아, 1차였던 스키야키와 우동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글도 있다.


이미 윤 대통령이 TV채널을 돌리다 '고독한 미식가'가 나오면 꼭 본다는 요미우리신문의 인터뷰를 읽은 것이다. 부친이 히토쓰바시 대학 객원교수로 있을 때 윤 대통령이 쿠니타치역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는 일화를 소개한 이 기사에는 "쿠니타치의 명물인 스타동 (먹어봤을까)" "스타동도? 지금의 스타동은 바뀌었다" 등의 친근감 있는 댓글이 달렸다.


스타동은 1971년 라멘과 덮밥을 내던 쿠니타치역 앞의 작은 가게가 시작이다. 인근의 히토쓰바시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 "젊은이들에게 싸고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여 힘내게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 지금은 '전설의 스타동 가게'로 상호를 바꾸고 일본 전역에 120여 개의 지점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홍대 상권의 작은 쌀국수 가게가 50여 개 점포로 크기도 하고, 신림동 5평 보쌈집이 대표적인 외식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성장하기도 한다.


한일 간에 비슷한 기업 성장 사례가 많은 것은 윤 대통령이 경제인 행사에서 강조한대로 양국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고, 노력해 이룬 재산권을 법으로 보호해준다. 기업이 성장하고 문화가 창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청나라의 궁중요리인 만한전석이 실전됐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노동자·농민을 위한 음식을 만들라며 베이징의 음식점들을 모두 급식소나 만두·국수집 등으로 강제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북경오리'도 이 때 본래의 맛을 잃었다고 한다.


채식 열풍 속에서 주목받는 우리의 사찰음식은 일본에서는 쇼진료리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고찰과 인사동 등을 중심으로 계승·발전하고 있다. 반면 한일보다 앞서 불교가 전래됐던 중국에서는 최초의 사찰 백마사를 때려부수고 소림사의 문을 닫는 광풍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없던 것이 생겨나고 성장하며 번영하는 것이 좋은지, 있던 것도 억누르고 탄압하며 진멸시키는 것이 좋은지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2차 만찬' 메뉴로 택한 오므라이스는 19세기말에 탄생했다. '리버티' '휴먼 라이츠'를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지 한중일이 각자 고심하던 시절이다. '리버티'는 자유로, '휴먼 라이츠'는 인권으로 번역됐지만 이들 단어를 맘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5000만 대한민국 국민과 1억2000만 일본 국민 정도다. 3000만 북한 주민, 15억 중국인은 자유·인권을 입에 올릴 수도 없고 검색할 수도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확정지으면서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 뜻을 내비쳤다. 중국의 거부권을 등에 업은 북한은 유엔 안보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1억7000만 명만이 누리고 있는 자유·인권·법치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형세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하는 필수적인 방향"이라고 언명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3·16 오므라이스 만찬'은 자연인 윤석열과 자연인 기시다만의 친교 만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5000만 자유인과 일본의 1억2000만 자유인이 자유·인권·법치를 지켜내기 위한 방파제를 복원하는 만찬이다. 1억7000만 자유인의 만찬은 당장의 선전선동에 의해 평가가 좌우될 일이 아니라,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역사에 의해 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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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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