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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㊶] ‘더 글로리’ ‘영웅’ 속 싹 달라진 배우들


입력 2023.01.07 16:26 수정 2023.01.08 08:5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컷 ⓒ이하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컷 ⓒ이하 넷플릭스 제공

반전은 흥미를 돋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고, 이야기뿐 아니라 배우의 이미지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일 때 짜릿함은 배가된다.


특히 배우가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연기할 때 우리는 변화나 변모라는 말 대신 ‘변신’이라는 표현을 쓰며 환영한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 정말 몸이 변할 수가 없는 것인데, 그만큼 변모의 폭이 크다는 것이고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다는 의미다.


국내외에서 화제 몰이 중인 드라마 ‘더 글로리’(연출 안길호, 극본 김은숙, 제작 화앤담픽쳐스), 200만 관객의 선택으로는 아직 배가 고픈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 제작 ㈜JK필름, 배급 CJ ENM)에도 싹 달라진 모습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놀라게 하고, 놀란 만큼 흡족함을 키우는 배우들이 있다.


서늘한 복수의 화신, 문동은을 연기한 배우 송혜교 ⓒ 서늘한 복수의 화신, 문동은을 연기한 배우 송혜교 ⓒ

먼저 작가 김은숙과 배우 송혜교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후 7년 만에 재결합한 ‘더 글로리’에서 단연코 가장 큰 변화폭을 과시하는 건 문동은 역의 송혜교다. 문동은은 자신의 인생을 삼킬 정도의 학교폭력 피해자지만 쓰러지는 대신, 긴 시간 속에 치밀한 복수전을 준비해 실행에 옮기는 인물이다. 본래 강인해서도 아니고 가해 폭력에 틈이 있어서도 아니다. 죽음을 택하는 대신 죽을 각오의 인내와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다.


배우 송혜교는 여러 작품에서 국민 첫사랑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남심을 사로잡는 팜므 파탈이었다. 여리고 순수하거나 매사 성실히 열정적이었다. 문동은을 연기하는 송혜교는 더 이상 어리숙하지도 순진하지도 뜨겁지도 않다. 단단하고 서늘하고 때로 거칠다.


이래서 김은숙 작가를 칭송하는 것인가. 송혜교가 이제야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연기 감정의 저점과 고점의 차가 크지 않고, 일면 딱딱한 발음이 문동은을 만나니 빛을 발한다. 송혜교는 ‘더 글로리’를 통해 인생 최고의 연기를 우리 눈앞에 펼치고 있다.


내추럴 본 빌런, 팔색조 배우 임지연 ⓒ 내추럴 본 빌런, 팔색조 배우 임지연 ⓒ

송혜교는 주연배우로서 글로리(영광)을 독점하지 않고 함께한 배우들과 나누고 있다. 송혜교뿐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로 호평을 사는 배우들이 더 있고, 덕분에 드라마 ‘더 글로리’는 더 탄탄하고 더욱 흥미롭다.


첫 번째 악역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배우를 악역으로 망친다면 내가 그 첫 번째”가 되겠다며 욕심을 드러낸 김은숙 작가의 예상이 딱 맞아떨어진 배우 임지연(박연진 역)이다. 물론 전혀 망쳐지지 않았다. 연기를 잘하니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난다. 범아시아 배우 송혜교에 맞서는 ‘빌런’으로 손색이 없다.


'심쿵' 하도영, 배우 정성일 ⓒ '심쿵' 하도영, 배우 정성일 ⓒ

문동은이 의도적으로 접근해 매혹하는 남자 하도영, 그를 연기하는 배우 정성일은 대한민국 여심을 매혹하고 있다. 많은 대사 없이도 그윽한 눈빛과 모로 돌리는 얼굴 각도면 충분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민선아(신민아 분)의 전 남편으로 나왔을 때 미워할 수 없이 합리적 인물로 그려서 얄밉더니, 이번엔 그냥 ‘무장해제’이다. 연극계에서 정평이 난 옴므 파탈의 명성을 제대로 드러냈다.


'광기' 아티스트 이서라=배우 김히어라 ⓒ '광기' 아티스트 이서라=배우 김히어라 ⓒ

마음은 더 많은 배우를 말하고 싶지만, 딱 한 명만 더 ‘더 글로리’에서 눈길 끄는 변모를 보여주는 배우를 꼽자면 이사라 역의 김히어라이다. 사실 배우 김히어라는 지난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6화에 강한 모성을 지닌 계향심으로 등장했을 때 그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많은 시청자가 놀라고 주목했다. 연극무대뿐 아니라 안방극장에서도 바로 통할 만큼 연기력이 보통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아봤지만, 강렬할수록 연이어 인정받는 건 어려운 일이다 보니 그다음이 우려됐는데. 어리석은 걱정이었다.


김히어라는 앞에서는 목사의 착실한 딸이자 전도유망한 화가이고 뒤에서는 안하무인 망나니이자 약물에 의존해 ‘거짓 예술혼’을 끌어내는 이사라를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에너지가 강한 건 계향심과 같으나 사회 밑바닥 인물에서 로열층으로의 수직상승, 세상의 을도 아닌 병에서 갑질이 몸에 밴 이사라로의 변신을 매끄럽게 이뤄냈다. 같은 배우인가, 눈을 씻고 볼 정도다.


영화 '영웅' 포스터 ⓒ이하 NEW 제공 영화 '영웅' 포스터 ⓒ이하 NEW 제공

윤제균 감독이 한 장면 한 장면 애정으로 빚은 영화 ‘영웅’, 극장 문을 나설 때 만족감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다.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의사 안중근의 거사에 숨겨진 이야기들, 우리가 몰랐던 인간 안중근의 ‘동양평화’를 향한 꿈과 보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그저 한 명의 사람에 불과했던 인간미를 조명해낸 것이 으뜸이고. 대한제국과 중국 등 아시아의 평화를 유린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단일한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주체성을 되찾으려는 이들, 행동하지 못했어도 그 마음을 지지했던 모든 민중이었음을 군중의 노랫소리와 영상으로 담아낸 연출은 자못 감동적이다.


안중근의 현신, 배우 정성화 ⓒ 안중근의 현신, 배우 정성화 ⓒ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뜻을 우리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준 것은 배우들인데. 이들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게 새로운 모습으로 역사의 물결에 뛰어들어 헤엄쳤다. 가장 육중한 울림을 선사하는 이는 단연코 안중근 역의 배우 정성화다. 14년을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으로 살았기에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안중근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뮤지컬을 본 것은 아닌 만큼, 아니 못 본 사람이 더 많은 만큼 영화 ‘영웅’을 보면 많이 놀랄지 모른다. 개그맨으로 알고 있던 그가 웃음기를 지운 것은 기본, 숨결 하나에도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우국지사의 고귀함을 심고 손짓 하나에도 제 몸을 던져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아시아인들에게 평화를 안기고 싶어 했던 의사의 강건함을 적셔 놓았다.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이에게 재발견되어 마땅한 배우 정성화다.


아름다운 마타하리 설희, 아름다운 가창력의 배우 김고은 ⓒ 아름다운 마타하리 설희, 아름다운 가창력의 배우 김고은 ⓒ

못지않게 놀란 배우는 김고은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청아한 음색에 감정과 연기를 하나로 하는 호소력 짙은 노래가 뮤지컬 영화에 제격이다.


윤제균 감독은 뮤지컬 공연이 아님에도 배우들의 노래를 녹음에 기대지 않고 현장에서 라이브로 한 장면을 여러 차례 녹음해 편집했는데, 그러한 노력이 독립군 정보원 설희를 연기한 김고은의 독창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주변에서는 김고은이 출연한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영화를 봤을 거라는 소리도 들린다. 김고은의 출연도, 그의 가창력도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유동하(이현우 분)를 사랑하듯 독립군을 아끼고 살피는 마진주, 사랑스러운 배우 박진주ⓒ 유동하(이현우 분)를 사랑하듯 독립군을 아끼고 살피는 마진주, 사랑스러운 배우 박진주ⓒ

영화 ‘영웅’에는 웃음기를 지우고 싹 달라진 배우가 두 명 더 있다. 배우 박진주는 음악 예능 ‘복면가왕’을 비롯해 여러 예능을 통해 빼어난 노래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독립군을 가족처럼 보살피는 마진주를 연기한 배우 박진주는 영화 초반에는 특유의 귀여움과 차진 장난기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고 작품에 이완 작용을 한다.


그러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동안 수줍게 숨겨왔던 사랑을 마음 밖으로 꺼내놓으며 노래하는데 너무나 애절하고 너무나 사랑스럽다. 코믹연기보다 정극에 강하고, 정색하고 연기하면 다른 얼굴로 인식되는 배우였음을 윤제균 감독이 우리에게 확인시킨다.


스나이퍼 조도선의 진지함, 비주얼에 더해 오디오를 단련 중인 배우 배정남 ⓒ 스나이퍼 조도선의 진지함, 비주얼에 더해 오디오를 단련 중인 배우 배정남 ⓒ

끝으로 배우 배정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모델 출신답게 배정남은 그동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든 예능 ‘스페인 하숙’에서든 몸을 잘 썼다. ‘영웅’에서도 장총 스나이퍼 조도선을 맡아 총을 겨누는 자세가 멋지다, 확실히 몸 움직임이 좋다. 자연스러운 몸 연기에 비해 억센 사투리 발음과 각진 억양은 배우로서 아쉬웠다. 하지만 싹 달라졌다. 발성과 발음, 억양이 귀에 술술 넘어간다. 턱턱 걸리고 막히는 소리가 없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볼펜을 물고, 선생님을 모시고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훈련했다”고 하더니 그 효과가 보인다.


배우들의 이미지 반전, 배우들의 변화는 서두에 언급했듯 시청과 관람의 재미를 높이고 작품이 주는 만족도를 배가시킨다. 더불어 그 반전과 변화를 일궈낸 배우들의 성장이 보이고, 성장을 가능케 한 각고의 노력이 전해져서 더욱 반갑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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