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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㊾] ‘썸바디’를 통해 본 잘생긴 악당들 전성시대


입력 2022.12.02 14:07 수정 2022.12.02 14:0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추격자’ 하정우·‘암수살인’ 주지훈에 도전장 낸 ‘썸바디’ 김영광


드라마 '썸바디'의 성윤오, 배우 김영광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썸바디'의 성윤오, 배우 김영광 ⓒ넷플릭스 제공

나쁜 놈이 주인공이 되고, 그자가 잘생긴 건 이미 14년이 넘은 일이다.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 2008)의 지영민, 그를 스크린 위에 탄생시킨 배우 하정우.


그로부터 10년 뒤, 또 한 명의 강력한 빌런(악당)이 미모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 2018)의 강태오, 그를 빚은 건 배우 주지훈.


영화 '추격자'의 지영민, 배우 하정우 ⓒ㈜쇼박스 제공 영화 '추격자'의 지영민, 배우 하정우 ⓒ㈜쇼박스 제공

웬만해선 이 두 캐릭터, 두 배우를 따라잡기 어렵다. 순수한 표정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지영민, 이제껏 본 적 없는 무기로 여자를 해하는데 눈을 끝까지 뜨고 볼 수 없다. 둔탁한 망치, 그 망치와 만나면 흉악한 도구가 되는 정, 하정우의 연기는 망치의 둥그런 면처럼 평평하고 싱겁게 시작하는 듯하다 힘을 가하며 송곳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정의 끝으로 상대(피해자, 관객)의 허를 파고든다. 말보다 표정, 무표정에서 더 섬뜩한 인물로 기억되는 지영민. 으악, 압도당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명밖에 없다.


내가 일곱 명을 죽였노라고 형사를 ‘후킹’하는(자극하여 끌어들이는) 대담한 연쇄살인마 강태오. 별다르게 준비된 무기가 없어도 상황에 따라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무서운 자다. 말 한마디든, 어쩌다 부딪힌 어깨든 기분이 상하고 마음이 언짢으면 바로 실행한다. 도구나 피해자 유형을 예상할 수 없는 것처럼 주지훈의 연기도 예측을 불허한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에너지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관객의 혼을 쏙 뺀다. 머리를 빡빡 밀어도 가려지지 않는 미모가 눈에 선하고, 사투리로 상대를 감았다 풀었다 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영화 '암수살인'의 강태오, 배우 주지훈 ⓒ㈜쇼박스 제공 영화 '암수살인'의 강태오, 배우 주지훈 ⓒ㈜쇼박스 제공

웬만해선 넘어서기 어렵다. 그래도 언제나 도전은 있다. 드라마 ‘썸바디’(감독 정지우, 2022)를 통해 냉혹한 사이코패스 성윤오의 옷을 입은 배우 김영광이 도전장을 냈다.


공통점이 있다. 지영민이나 강태오처럼 연쇄살인마다. 배우 하정우나 주지훈처럼 키 크고 반듯하게 생겼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 연기했고, 해당 작품 이후 배우로서의 제2막이 시작될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 지영민은 은둔형 외톨이지만, 성윤오는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 강태오는 여자들과 잘 지내보고 대화를 나눠보려 하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히는데, 성윤오는 이를 악물고라도 상대가 원하는 바를 글과 말과 몸짓으로 반응할 줄 안다.

양의 탈을 쓴 악마, 성윤오 ⓒ 양의 탈을 쓴 악마, 성윤오 ⓒ

연쇄살인마로서 성윤오의 강점이 차이점에서 나온다. 겉보기에 멀쩡한 정도가 아니고 사회적 훈남이고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는 연기가 가능해서, 상대를 무방비상태로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믿고 의지하게 하고 자신을 다 내주게 한다. 더욱 치 떨리는 특성은 살인을 인터넷 게임처럼 즐긴다는 것이고, 그에게 먹잇감 물색과 사냥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짜증 나는 건, 이 사이코패스가 너무 지능적이어서 좀처럼 잡힐 것 같지도 않다.


분노가 일만큼 막강한 빌런인데, 두렵다는 공포심보다 얄밉다는 감정이 앞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영민에게는 그를 끝까지 추격할 엄중호가 있고, 강태오에게는 그의 암수살인을 끝내 세상에 드러낼 형사 김형민이 있다. 두 역할은 모두 한 배우, 연기파 김윤석이 맡았다. 빌런에 맞서는 상대가 집요하고 믿음직할수록 연쇄살인마의 악함이 더욱 선명해진다.


강태오와 김형민(김윤석 분, 왼쪽)의 줄다리기 ⓒ 강태오와 김형민(김윤석 분, 왼쪽)의 줄다리기 ⓒ

지영민의 살인들도 엄중호가 달라붙기 전까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암수살인이었고, 강태오의 살인들도 먼저 자백하기 전까지는 발생한 줄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성윤오의 살인들은 세상에 알려졌으나 범인이나 사인이 다르게 추정되고 결론내려 진다. 성윤오가 남녀를 죽였는데 서로 죽인 것이 되거나, 성윤오가 고의로 죽였는데 추락사로 오인되는 양상을 띤다. 너무 잘 빠져나간다. 그래서 얄밉다.


도저히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잡히지 않으면 반성 없이 똑같은 악행을 저지를 것 같은, 또 빠져나가 또 살인할 것 같은 이 희대의 사이코패스를 막을 자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엔딩’으로의 귀결이 자연스럽다.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 엄중호와 김형민이 지영민과 강태오를 상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감정의 소유자였다 보니 그 충격과 낙폭이 크다.


지영민을 추격하는 엄중호(김윤석 분, 오른쪽) ⓒ 지영민을 추격하는 엄중호(김윤석 분, 오른쪽) ⓒ

영화 ‘추격자’나 ‘암수살인’과는 장르가 다른 ‘썸바디’이다 보니 평면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엄중호의 지영민을 향한 ‘너는 내가 잡고 만다’ 식의 열 받음과 결의, ‘일단 믿고 가되 끝까지 의심하자’라는 김형민의 강태오를 향한 애증은 관객이 결말에 대비하게 하고 예열시킨다.


‘썸바디’에도 그를 저지하려는 형사와 무당이 있긴 하지만 그들만으론 성윤오를 상대하기엔 미약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결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결국엔 ‘정신적 쌍둥이’라 여길 만큼 동질감을 느꼈던, 그가 없으면 세상에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할 인물의 결단이 필요하다. 나를 내가 스스로 제거하는 듯한 엔딩, 여기에 ‘썸바디’의 특별함이 있다.


천하무적 사이코패스의 상대는… ⓒ 천하무적 사이코패스의 상대는… ⓒ

하정우의 지영민이나 주지훈의 강태오는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다. 김영광의 성윤오는 존재시키기엔 너무 끔찍한 인물, 사라져야 불안감이 잦아든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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