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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㊳] 진정 ‘왕’이 된 남자, 유해진 (올빼미)


입력 2022.11.28 09:07 수정 2022.11.29 16:1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왕이 된 남자, 유해진 ⓒ이하 ㈜NEW 제공 왕이 된 남자, 유해진 ⓒ이하 ㈜NEW 제공

오랜만에 영화관 객석이 가득 찼다. 얼마만의 풍경인지, 그것도 한국 영화로, 더구나 액션물도 아닌 작품으로, 가슴이 벅찼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배우 유해진이 주연을 하면, 배우 유해진의 힘을 보여줘야 하는 때가 오면 관객이 움직인다. 혼자만의 선입견이라 해도 좋다. 영화 ‘럭키’의 그때가 생각나며 상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흐뭇했다.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 제공·배급 ㈜NEW, 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영화사담담) 얘기다. 포스터를 보면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잘생긴 유해진이 있다. 극 속에서도 조선 16대 왕 인조를 그리 그렸으려나 궁금했는데, 역시나 아니다.


스틸컷에는 담을 수 없는, 격렬한 파동의 연기를 배우 유해진이 해냈다 ⓒ 스틸컷에는 담을 수 없는, 격렬한 파동의 연기를 배우 유해진이 해냈다 ⓒ

배우 유해진의 연기에는 생김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이번엔 더하다. 권력의 실체, 아들과 손주마저도 정적으로 인식하는 조선 왕의 내면을 연기한 배우는 많았지만, 유해진은 뻔함을 답습하지 않는다. 내면뿐 아니라외형 전체로 그 비열하고도 잔인한 권력욕을 발산한다.


맞다, 비열하다. 그간의 배우들은 내면의 치졸한 권력욕은 표현하되 외면은 망가뜨리지 않았다. 대신 잔인함으로 드러냈다. 배우 유해진은 주저함 없이 왕 이전에, 아비 이전에, 못나고 못된 한 인간의 온 마음을 비열한 표정과 몸짓에 실었다.


조선 16대 왕 인조.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던 그는 북벌을 주장하던 자신과 달리 청과의 외교 및 신문물 도입에 긍정적이었던 소현세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영화 '올빼미'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 조선 16대 왕 인조.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던 그는 북벌을 주장하던 자신과 달리 청과의 외교 및 신문물 도입에 긍정적이었던 소현세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영화 '올빼미'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

인조를 덮친 병마에 대해서도 그렇다.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에 걸리고, 풍을 맞은 모습을 관객이 스토리 전개 안에서 혹은 인물들의 대사나 자막으로 알게 하지 않았다. 배우 유해진은 제 얼굴 신경과 팔다리 근육을 마치 제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정말 그 병에 걸린 것처럼 표현했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력을 다한’ 연습과 노력의 결과다. 영화 크랭크인 전부터, 촬영 전날은 물론 당일 슛 직전까지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또 다른 경우의 수는 없는지 고민하는 유해진답게 온몸의 표현에 대해서도 그리 준비했음에 틀림이 없다.


잘생김의 각도나 배우로서 최소한의 멋짐을 고려하지 않는 연기, 작품과 캐릭터가 필요로 하고 그에 안성맞춤인 연기. 유해진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겠으나 누구나 그러는 것은 아니어서 감탄을 넘어 존경심이 인다.


극장에서 영상으로 직접 보고 들어봐야 할 '연기 마스터' 유해진의 연기 ⓒ 극장에서 영상으로 직접 보고 들어봐야 할 '연기 마스터' 유해진의 연기 ⓒ

목소리 연기도 장면마다 결과 색을 달리하고, 울림통의 크기를 조절했다. 지존으로서 휘하를 호령할 때는 유해진에게 저런 굵은 목소리, 저리 쩌렁쩌렁 공기를 진동시키는 목소리가 있었던가 싶고. 병에 걸렸을 때는 심한 목감기라도 걸린 듯, 기진맥진하여 목이 ‘쇤 듯한’ 소리를 내고. 모든 비밀이 들통날까 상대를 채근할 때는 대한민국에서 유해진이 가장 잘하는 연기, 본인은 진지하게 정극을 하되 관객은 웃게 만드는 정통 희극의 광기를 형언하기 힘든 소리로 내뿜는다.


배우 유해진만 보며 극을 따라가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영화인데, ‘올빼미’에는 박수하고 싶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나오고 여느 때보다 더 잘했다. 류준열, 최무성, 박명훈, 김성철이 그들이다. 열 살 세손 역할의 어린이 배우 김도원마저 심금을 울린다.


시너지 효과다. 좋은 배우들이 하나의 작품 아래 열의를 가지고 뭉치니 서로의 연기를 끌어올려 배우도 더욱 멋지고 작품도 빛난다. 중심엔 유해진이 있다. 그 곁에서 류준열이 좋은 파트너 역할을 했다. 류준열은 작품성 있는 정통극 속에서, 좋은 선배와 연기할 때 배우로서 힘이 강해진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의 조감독이었던 안태진은 감독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적 연출력을 과시한다. 배우들의 열연을 누수 없이 잘 담아냈고, 러닝타임 118분 동안 흐트러짐 없이 긴장감을 유지시켜 오랜만에 웰메이드 사극 스릴러를 극장가에 내놓았다.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2시간, '올빼미'. 올 겨울 극장가의 왕이 될 작품 ⓒ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2시간, '올빼미'. 올 겨울 극장가의 왕이 될 작품 ⓒ

데뷔 25년 만에 왕이 되었다고 유해진에게 축하를 보내고, ‘왕이 될 상’이라고들 말한다. 그는 이미 영화 ‘혈의 누’ ‘왕의 남자’ 때부터, ‘타짜’ ‘전우치’ 때부터, ‘이끼’ ‘부당거래’ ‘해적’ 때부터, ‘극비수사’ ‘베테랑’ 때부터 연기왕이었다. ‘럭키’'와 ‘공조’, ‘택시운전사’ ‘1987’과 ‘완벽한 타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함에도 배우 유해진과 ‘왕’이라는 단어를 결부시키는 최근이 반갑다. 타 배우들과 어울림이나 작품을 우선 생각해 배우 유해진이 가진 것을 덜 보여주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빼미’는 유해진의 모든 것을 발산하는 게 작품을 위한 길이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갈증 없이, 유해진을 흠뻑 느끼다 보니 그가 완성된 ‘연기 마스터’임이 오롯이 전해온다. 이미 대중에게 영화와 예능을 통해 연기로 인간미로 칭찬받고 박수받아 왔지만, ‘올빼미’ 이후 더욱 커질 인정과 사랑의 박수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각종 시상식에서 왕좌에 오를 내일이 기다려진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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