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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감독 VS 쿠팡플레이] 예술과 상업 사이, 유명 감독도 자유롭지 않은 '편집권 줄다리기'


입력 2022.08.09 07:32 수정 2022.08.09 07:3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이주영 감독, 쿠팡 플레이에 공개 사과 요구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가 호평과 흥행 속에 막을 내렸지만 내부 사정은 편집권 훼손 논란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2일 이주영 감독이 쿠팡 플레이가 자신을 배제한 채 '안나'의 시리즈를 8부작에서 6부작으로 일방적으로 편집한 후 공개했다고 폭로한 것이 불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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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입맛대로 가위질을 하며 분량 뿐 아니라 서사,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크게 훼손됐다며 높은 강도로 비난했다. 이 감독은 공개사과, 6부작 크레딧서 감독 이름 삭제, 확장판 공개를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까지 할 것을 예고했다.


이에 쿠팡플레이는 "수개월에 걸쳐 감독에게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이 수정을 거부했다"면서 "제작사에 동의를 얻어, 계약에 명시된 권리에 따라 원래의 제작 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다"라고 해명하며 감독판을 8월 중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 플레이가 감독판을 8월에 공개하겠다고 하면서 잡음을 봉합시키려 했으나, 이주영 감독은 즉각 반박하며 여전히 평행선이다. 이 감독은 쿠팡 플레이의 입장문 중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이 거부했다'라는 명시는 사실무근이며, 공개하겠다는 감독판이 확장판인지 감독판인지 언명한 사실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주영 감독이 곪았던 고름을 터뜨리며, 감독의 편집권 보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흔히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부르곤 했다. 영화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큰 지 나타내는 표현으로, 시나리오부터 연출, 편집까지 감독의 손이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에 대한 절대적인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제작, 배급사들은 작품에 투자해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렇다 보니 과거부터 감독과 제작사 간의 이견 발생 시, 감독이 하차를 하기도 하고, 제작사가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어왔다. 편집 보장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한 스타 감독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9년 쿠엔틴 타라티노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 개봉 당시 중국 측에서 쉽사리 허가가 나지 않았다. 중국 측은 상영 불가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지만 영화 속 이소룡을 조롱하는 장면 때문인 것으로 추측됐다.


그러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중국에서의 영화 상영을 위해 다시 영화를 편집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했고, 결국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소니 픽쳐스는 쿠앤틴 타란티노 감독의 뜻을 지지했는지,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세계 영화 시장 2위인 중국의 수익을 포기해야 했다.


봉준호 감독은 2014년 '설국열차' 미국 개봉 당시,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126분 중 20여 분을 편집할 것을 요구 받았다. 이를 두고 봉준호 감독과 와인스타인 측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결국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편집본대로 개봉했지만, 와인스타인 측은 예정됐던 와이드 릴리즈 방식이 아닌 제한 개봉 방식을 선택했다. 소규모 극장서 상영한 뒤 반응이 좋으면 점차 상영관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와인스타인 측이 봉준호 감독을 향한 보복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도 존재했다.


이후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차기작으로 내놓으며, 넷플릭스와 협업한 배경에 대해 "작가이자 연출자로서 넷플릭스는 창작의 자유, 최종 편집권을 전적으로 보장해 줬다. 마틴 스콜세지나 스필버그 같은 사람들에게나 가능했을 일이다. 매우 행운이었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이주영 감독이 쏘아 올린 사태는 오랜 시간 편집권 문제로 줄다리기를 해온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OTT로 옮겨간 상황이다. 이번 논란은 투자사나 제작사가 편집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가지더라도, 창작자와 최소한의 논의나 협의 설득조차 하지 않은 것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논란은 자칫 OTT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 감독의 권한 보장을 강화한다면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고, 반면 쿠팡플레이 측의 입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유명 감독들은 쉽게 메가폰을 잡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말을 잘 들을 수 밖에 없는 신인 감독들이 투입되고,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가위질 되는 걸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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