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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김지훈 감독 "'니 부모', 영혼이 무너지는 재난 영화"


입력 2022.04.24 08:13 수정 2022.04.24 08:1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27일 개봉

학교 폭력(학폭)을 피해자의 시선에서 억울함과 고통을 호소하는 영화들은 많았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부모 시선에서 학폭이 한 아이를 비롯해 부모에게까지 얼마나 끔찍한 사건인지 영화로 낙인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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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스스로 몸을 던진 한 학생의 편지에 남겨진 4명의 이름,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을 그린 영화다. 일본의 작가이자 현직 고교 교사였던 하타사와 세이고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김지훈 감독은 이 희곡을 처음 접했을 당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영화를 찍고 나면 지금의 이 분노가 해소될지 알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끓어오른다.


"아이의 영혼이 무너지는 순간들이 계속 느껴졌어요. 이것이 영화로 재탄생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죠. 가해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것도 참신했고요.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타사와 세이고 작가는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를 본 뒤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동의했다. 영화화가 결정된 후에는 워낙에 탄탄한 원작에 손을 대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갖기도 했다.


"그동안에도 영화로 만들기 위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진행이 잘 안된 걸로 알고 있어요. 원작자께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각색을 하려니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작가님은 원작 내용 신경 쓰지 말고 새로운 무대를 만든다고 생각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한 아이의 아픔을 잘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면서요. 그게 힘이 됐어요."


영화로 만들며 김 감독이 가장 신경을 쓴 건, 글과 배우들이 만났을 때의 입체감이다. 여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학폭 사건들을 참조해 우리나라 정서를 입혔다.


"제가 작가와 손을 댄 건 캐릭터의 직업이나 한국적 정서입니다. 또 시간, 공간을 확장시켜 이 얼개를 풀어가려고 했죠. 글의 평면성을 배우들의 입체적인 연기로 표현하는 것도 신경 썼고요. 원작의 참신한 가해자의 시선은 그대로 가지고 갔고요. 연출하기 위해 가해자의 마음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작업이 참 힘들었어요. 공감도 이해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가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피해자의 마음이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했어요."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출연 배우 오달수가 영화 촬영 후 미투 폭로에 휩싸이며 개봉이 미뤄졌고, 여기에 영화의 배급을 맡았던 이십세기폭스코리아가 월트디즈니 컴퍼니와 합병되면서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하면서 개봉이 또 연기됐다. 이후 신세계 그룹이 만든 신생 제작사 마인드마크가 배급을 맡아 27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감독으로서 관객을 못 만난다는 건 생명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제 마음의 숨통은 건우의 아픔을 관객들에게 보이고 싶다는 열망이었어요. 우리가 피해자의 아픔을 모두 공감하긴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느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투자사가 다섯 번 바뀌고 여섯 번 정도 개봉이 밀렸지만 이 불씨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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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에는 괴롭힘을 일삼던 4명 아이들의 부모가 등장한다. 돈과 권력으로 무마시키려는 병원장, 전직 경찰 출신이지만, 결국 손자를 지키려 잘못된 선택을 하는 할아버지, 증거 인멸에 급급한 해당 학교 선생님.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법을 무기 삼아 아이를 보호하고 행동하는 변호사. 김 감독은 연출을 위해 고통스럽지만 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봐야 했다. 여기에서 얻은 연출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아이는 아닐 거라는 맹신, 그런 감정들로 이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를 탈출시키려는 감정이 가해자 시선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천우희가 연기한 송정욱은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으로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부딪치고 넘어질지언정, 포기하지 않는다. 제3자로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모두가 옳고 그름을 안다고 자신하지만, 선택할 상황에 놓이면 정의를 합리화 시킨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제 마음속에 존재하는, 제가 꿈꾸는 정의로운 캐릭터인 거죠."


김지훈 감독은 이 작품을 접하기 전에는 자신의 아이가 학폭의 피해자가 될까 고민을 하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작품을 알게 된 이후에는 아이가 가해자가 되면 어쩌나란 생각에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감 감독이 만일 극중 가해자로 지목된 한결(성유빈 분)의 아빠 강호창(설경구 분)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연출자로서 감독이 답을 가지고 배우들에게 전달을 해야 하는데 제 자신조차 영화 엔딩에 대한 답을 못 내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답을 찾으려고 재촬영을 하기도 했죠. 연출자로서 부족하지만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해요. 제게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면 나도 강호창처럼 하지 않았을까라는 비겁하고 부끄러운 답을 내렸을 것 같네요."


김지훈 감독에게는 '재난 영화' 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7광구', '타워', '싱크홀'까지 세 편의 재난 영화 메가폰을 잡았다. 그에게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장르 역시 재난이다.


"'화려한 휴가'는 역사적 재난,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영혼의 재난이라고 생각해요. 외형적인 자연재해는 복구가 되지만 영혼의 재난은 복구가 되지 않는다는게 이 영화의 화두입니다. 다른 재난 영화는 희생의 메타포로 소통하려 했다면, 이번 작품은 인간이 재난을 겪으면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감정이 무너지고 복구가 되지 않는 걸 강조했어요.


김 감독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들이 희망을 가져다주고 해결의 불씨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학폭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공감대가 전반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가 공감대 형성의 단초가 되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손을 내민다면 반드시 학폭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영화들이 앞으로 만들어지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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