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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술이 주는 기쁨과 파멸


입력 2022.02.03 14:01 수정 2022.02.04 09:58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어나더 라운드’

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신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최고의 신인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특별하다. 신 가운데 유일하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제우스의 정실부인이자 질투의 여신인 헤라의 미움을 받아 유랑생활을 하면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익혀 술과 축제, 쾌락의 신이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신과 인간의 양면성을 지닌 디오니소스와 같이 술 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지만, 취기가 올라오면 자제력을 잃고 난폭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는 술이 주는 기쁨과 파멸이라는 이중성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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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틴(매즈 미켈슨 분)과 토미(토머스 보 라센 분),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분), 피터(라르스 란데 분)는 같은 고교에서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다. 40세를 맞는 이들은 교사의 열정은 바닥난 지 오래고 매일 똑같은 일상은 권태로울 뿐이다. 이들 중 한 친구가 흥미로운 논문의 가설을 들려준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네 명의 남성은 일과시간에만 술을 마시되, 오후 8시 이후와 주말에는 금주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자신들의 인생으로 이 가설에 대한 실험에 착수한다.


영화는 술의 양면성을 동시에 바라본다. 술을 주제로 한 영화는 많다. 흔히 술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에서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다. 술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과 가정, 사회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와인 미라클’(Wine Miracle)과 ‘사이드웨이’(Sideways)에서와 같이 술은 때로는 우리네 인생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며 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는 기존 영화와 달리 술의 단편적인 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술이 지닌 기쁨과 파멸을 동시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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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중년 남성들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그들의 삶은 의욕도 없고 학교나 집, 어디에서도 존재를 확인받지 못한다. 무기력하고 무료했던 삶에 술은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줬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재미있는 선생님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소원해진 가족관계도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음주를 통해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점차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일상이 위태로워지게 되고 결국 인생의 바닥에서 비로소 문제를 깨닫게 된다. 삶이 권태로웠던 것은 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익숙함을 핑계로 일상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의지 대신 술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술을 통해 인생을 관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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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유쾌한 톤을 줄곧 유지하던 영화의 흐름은 급격하게 무거워지고, 술이 가져온 인생의 파멸적이고 싸늘한 그림자를 비추기 시작한다. 같은 동료가 삶을 스스로 마감한 것이다. 실제로도 이러한 불확실성은 있었다. 영화를 연출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딸 아이다는 마르틴의 딸 역할로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촬영 나흘째 되던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감독은 전한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권태와 우울감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혼자 마시는 혼술과 집에서 마시는 홈술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도 술이 묘약이 아닌 독약으로 작용했듯이 술로 우울증을 해결할 수는 없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술의 양면성을 통해 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을 술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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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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