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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나라 ②] 죽지 않으면 다시 학대 부모 품으로…"판사의 전근대적 인식 가장 문제"


입력 2021.06.24 05:06 수정 2021.06.23 16:10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피해 아동의 80% 넘게 집행유예로 풀려난 가해 부모와 다시 만나…재범 및 중대범죄 가능성

전문가 "재판부, 아동학대·아동권리에 대한 인식 부족…가정 내 징계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

"법원, 선고 형량이라는 기존 법관들의 매뉴얼 법감정만 지키려고 해…국민 법감정이 중요"

아동학대. ⓒ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 ⓒ게티이미지뱅크

힘없고 방어 능력이 없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 어린 아이들이 부모 등으로부터 학대당하거나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적 공분은 배가되고 아동학대범죄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은 들끊는다. 그러나 여전히 양형기준은 국민 법감정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2월 마련된 아동학대 살해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해 살인죄(5년 이상 징역)보다 법정형이 무겁다. 또 명확한 살인 고의가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고의적인 학대 행위로 아동이 사망했을 때 가중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살인이나 중상해, 치사를 제외한 아동학대범죄를 처벌하는 양형기준은 보통 6개월 ~ 1년 6개월 사이로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4년 10월부터 2019년까지 아동학대범죄 유형별 집행유예 선고 비율을 보면, 아동학대중상해의 집행유예 비율은 18.2%, 아동학대치사는 14.3%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반 유기와 학대의 경우 집행유예 비율은 85%, 중한 유기와 학대도 83.3%에 달했다. 100명에 80명가량의 피해 아동이 학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아동학대범죄 처벌 수위가 낮은 이유로 재판부의 전근대적인 인식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고려대 로스쿨 장영수 교수는 "아동학대가 정말 잘못됐다는 걸 판사들도 인식을 해야 하는데, 판사들이 이 대목을 단순히 가정 내 징계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어 아동학대에 대한 억제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며 "형량의 문제는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법원에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아동 권리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낮다 보니 판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잦은 집행유예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실례로 우리나라에선 존속살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 가중처벌 대상이지만, 비속살해는 가중처벌이 안될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감형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승재현 연구위원은 "법원은 선고 형량이라는 기존 법관들이 가지고 있는 매뉴얼 법감정만을 지키려고 한다"며 "하지만 국회가 만든 입법이 국민의 대의제를 통해 만들어놓은 법정형이고 그게 국민들의 법감정이라면, 기존 판사의 법감정보다 국회가 만든 형량이 높은 경우 이 형량에 맞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 기준을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판. ⓒ게티이미지뱅크 재판. ⓒ게티이미지뱅크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가해 부모가 가정으로 복귀해 재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반복되는 가해가 중대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특수성을 고려해 아동학대범죄의 양형기준을 손질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의 이승기 변호사는 "아동학대는 신체적 학대 외에도 성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 등 그 범위가 상당히 넓고, 복합적인 형태의 학대행위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학대기간 역시 상당한 경우가 많은 만큼 아동학대의 각 유형에 따른 세분화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률사무소 인의 허용 변호사도 "아동학대범죄는 주로 가정 내에서 행해지게 되는 만큼 범죄행위가 은폐되고, 반복해서 일어나는 등 일반 형사범죄와 상당히 다른 특수성이 있다"면서 "양형기준의 적용 대상범죄로 규정되지 않은 나머지 아동학대범죄에 대해서도 특수성을 반영한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동학대범죄를 별도의 범죄군으로 분류해 통일된 양형기준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를 통해 아동학대범죄의 특수성을 양형인자로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재판부에서도 주관적 개입을 배제하고 일관된 형량을 선고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허 변호사는 "아동학대범죄는 다른 범죄와는 달리 동일한 가해 부모와 피해 아동 사이에 여러 유형의 아동학대행위가 중첩돼 발생하고 또 한꺼번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아동학대범죄 전체를 아예 별도의 범죄군으로 분류해 공통적인 양형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동부지검 여성ㆍ아동범죄조사부 박현주 부장검사도 "아동학대살해죄의 법정형과 양형실무, 국민적 공감대에 부합하는 형량 범위를 권고하기 위해 아동학대살해죄를 살인의 별도 형으로 신설하거나, 아동학대범죄 전체를 체포 감금 유기 학대범죄 유형과는 별도로 '아동학대범죄'군 양형기준으로 분리해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해자의 폭행과 학대를 방조한 다른 부모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피해아동에 대한 가해자의 학대가 상습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방조자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정익중 교수는 "자녀에 대한 보호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가해자의 아동학대 행위를 묵인했거나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 대다수가 실형 처벌을 받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며 "이들에 대한 처벌도 함께 강화돼야 가정 내 다른 성인이 학대의 방조자나 조력자가 아닌 피해 아동의 보호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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