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변호사'가 남긴 질문 [데스크 칼럼]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입력 2026.09.15 15:05  수정 2026.09.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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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측 변호사의 '최태원 1000억 증여' 주장…불기소 뒤 더 커진 여론재판의 그림자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대리인 이상원 변호사의 집안 관계도ⓒ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악마의 변호사)의 젊은 변호사는 법정에서 한 번도 지지 않는다. 의뢰인의 파렴치한 죄를 알면서도 화려한 말솜씨와 증인 흔들기로 기어이 무죄를 받아낸다. 이 영화가 서늘한 까닭은 설정에 악마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법률가의 화려한 언변이 '승소'와 '진실'의 경계를 지워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분쟁에서도 그랬다.


2023년 11월 법원 앞에서 노 관장 측 이상원 변호사가 취재진에게 던진 말은 짧고 강했다. "최 회장이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에게 쓴 돈이 2015년 이후만 봐도 1000억원이 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그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여론을 움직였다.


복잡한 재산분할 다툼은 뒤로 밀리고 '1000억원'이란 숫자만 세간에 남았다. 한쪽의 주장이 여론 속에서는 이미 판결문처럼 소비됐다. 하지만 '1000억원 이상'을 확정한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판단은 아직 없다. 최 회장 측은 두 사람의 공동생활비를 약 20억원으로 본다. 별건 유튜버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이 실제 증여로 확인된다고 밝힌 금액은 23억4000만원이다. 최 회장 측이 "이 변호사가 실제의 50배가 넘게 수치를 부풀렸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 더욱이 이 변호사는 노 관장의 단순한 소송 대리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망 안에 있다. 그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의 사위다. 박 전 장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와 고종사촌 관계이고, 이 변호사의 아내 박지영 씨와 노 관장은 6촌 사이다. 노 관장의 법률대리인이면서 인척인 셈이다.


인연은 단체로도 이어진다. 박지영 씨는 노 관장이 중심이 된 봉사단체 미래회의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다. 미래회 전 회장은 최 회장을 겨냥한 댓글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는데, 그 사건의 변호인도 이 변호사였다. 정리하면 그는 노 관장의 대리인이자 인척이고, 아내는 노 관장과 연결된 단체를 이끌고 있으며 본인은 그 단체 전 회장의 댓글 사건까지 맡았다.


물론 인척이 소송을 맡는다고 위법한 것은 아니다. 의뢰인과 가까운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가족이 같은 단체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댓글 사건의 피고인 역시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법이나 부당함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관계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소송 대리인, 인척, 의뢰인과 연결된 단체, 같은 상대를 겨냥한 댓글 사건의 변론. 이 선이 한 사람에게 모이면 그가 법정 밖에서 하는 말은 더 엄격하게 검증받아야 한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변호사의 거짓말이 일반인의 거짓말보다 무거운 것은 법률가의 말에 '기록을 읽고 증거를 따져본 판단'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붙기 때문이다. 그 믿음에 기대 법정 밖에서 검증되지 않은 숫자를 던지고 여론을 흔든다면 치열한 변론이 아니라 사법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다.


▲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일 이 변호사의 명예훼손 혐의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했고, 최 회장 측은 15일 항고했다. 이 변호사의 발언이 처벌 대상인지는 항고 결과가 가를 것이다.


다만 처벌 여부와 별개로 남는 질문이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법정 안에서 증거와 법리로 다투는 대신 법정 밖에서 검증되지 않은 숫자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여론재판을 이끄는 일도 '정당한 변론'이라 부를 수 있는가.


결말을 말하자면, 영화 속 그 젊은 변호사는 첫 재판으로 돌아가 변론을 내려놓는다. 이기는 것보다 경계를 지키는 쪽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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