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도서국포럼, 지난해 무산됐던 포럼 정상회의에 대만 공식 초청
지난해엔 친중 성향의 주최국 솔로몬제도, 대만 초청 반대해 결국 무산
지난달 6일 중국이 발사한 SLBM, 남태평양 상에 떨어지며 상황 급변
中거점 역할 솔로몬제도와 바누아투·통가·투발루 등 親中 색깔 지워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이 지난 2024년 8월26일 남태평양 통가 수도 누쿠알로파에서 개최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AP/뉴시스
‘친중’(親中) 성향의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들이 중국을 ‘경원시’(敬遠視)하고 나섰다. 오는 30일부터 열릴 예정인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의 모임인 태평양도서국(島嶼國)포럼(PIF) 정상회의에 대만을 공식 초청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포럼 정상회의 당시에는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나 다른 나라와의 교류에 반대하는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는 바람에 주최국 솔로몬제도가 대만의 참석을 ‘저지’한 바 있다.
배런 와카 태평양도서국포럼 사무총장은 지난 8일 “중국과 대만은 이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라며 “대만이 이번 포럼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 AFP통신 등이 9일 보도했다. 와카 총장은 “대만은 매우 중요한 개발 협력 파트너”라며 “대만이 (공식) 대화 파트너는 아니지만 우리 포럼 회원국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은 1971년 출범한 태평양도서국 18개국 간의 협력·공조를 촉진하는 국제기구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해 나우루와 니우에,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 바누아투, 사모아, 솔로몬제도, 쿡제도, 키리바시, 통가, 투발루, 파푸아뉴기니, 팔라우, 피지 등 태평양도서국 14개국과 뉴칼레도니아, 프렌치 폴리네시아 등 프랑스 자치령도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대만을 초청하려고 했지만, 개최국 솔로몬제도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솔로몬제도에 올해 친서방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고 대만 수교국인 팔라우가 회의를 개최하면서 초청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차관급 이상 고위 대표단을 꾸려 참석할 방침이다. 중국이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이면서 태평양도서국의 상당수가 중국에 기울어졌지만, 이젠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대만과는 접점을 넓히는 형국이다.
남태평양은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해상 교통로의 요충지다. 수많은 섬을 해군·공군 전력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덕분에 지정학적 가치가 크다. 산림자원과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해저에는 구리 등 광물·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다. 미국은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이 하와이·괌·호주 등에 주둔하는 미군의 배후기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워 왔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지난달 6일 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붉은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발사체는 호주 북동쪽의 솔로몬제도·나우루·투발루 사이 해역에 떨어졌다. ⓒ 신화/AP/연합뉴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은 시진핑(習近平) 시대에 본격화했다. 시 주석은 2013년 방미 중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며 “태평양은 미·중 양국을 모두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이라고 밝히며 간단없이 이들 작은 섬나라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다. 이들 섬나라들과 협력을 강화하면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 태평양으로 진출할 때 거점 지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미·중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은탄(銀彈)외교’를 통해 미국 영향력의 균열을 노렸다. 하와이와 호주를 잇는 길목 중간에 있는 솔로몬제도를 중심으로 집중 공략했다. 2019년 중국과 수교한 솔로몬제도는 중국이 5억 달러(약 7100억원)를 지원하자 친중으로 급선회했다. 2022년에는 중국 함정이 솔로몬제도 해안을 기지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의 안보협정까지 체결했다.
솔로몬제도에 이어 2019년 키리바시가, 2024년에는 나우루가 각각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를 선언했다. 이로써 포럼 회원국 중 대만 수교국은 팔라우·마셜제도·투발루 3곳만 남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남태평양을 향해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발사하면서 이 지역 안보지형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분수령으로 평가될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왕쉐멍(王學猛) 인민해방군 해군 대변인은 지난 6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인민해방군 해군 전략핵잠수함 한 척이 이날 낮 12시1분 태평양 관련 공해 해역에서 훈련용 모의 탄두를 탑재한 SLBM 한 발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며 “미사일은 예정된 해역에 정확히 낙하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군은 발사 지점과 비행 경로, 미사일 제원, 구체적인 탄착 지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에 시험 발사한 전략 미사일은 미국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SLBM ‘쥐랑(巨浪·JL)-3’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이번에 중국군이 쥐랑-3을 시험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과 닉 호니프웰라 솔로몬제도 외무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중국 외교부/뉴시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소속 국제뉴스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이날 발사된 미사일이 쥐랑-3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3세대 SLBM인 쥐랑-3은 사거리가 1만㎞ 이상으로 미 본토를 포함한 지구상 대부분 지역을 사정권으로 두고 있다. 은밀히 기동하는 까닭에 탐지가 어려운 SLBM은 지상이나 공중 발사 핵무기보다 위협적인 전력으로 평가된다.
당시 발사된 미사일은 호주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솔로몬제도·나우루·투발루 사이 해역에 떨어졌다. 지난해 포럼 정상회의에 대만을 초청하는 데 반대했던 솔로몬제도는 중국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매슈 웨일 솔로몬제도 총리는 “중국은 솔로몬 제도의 좋은 친구지만 이런 행동은 친구라면 하지 않을 일”이라며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되 위협하지는 말아달라”고 지적했다.
파푸아뉴기니와 피지, 바누아투, 통가, 팔라우, 키리바티, 투발루, 마셜 제도의 지도자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대만 수교국 투발루는 중국으로부터 발사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공동성명 채택을 강력 촉구했다. 이에 따라 포럼은 중국의 SLBM 발사에 항의하는 공동성명을 논의했지만 친중 성향의 나우루와 키리바시가 반대해 채택하는 바람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솔로몬제도는 남태평양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중국의 거점 역할을 해 왔지만, 지난 5월 친미 성향의 웨일 총리가 취임하면서 친중 색깔을 지우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호주를 방문해 “전 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안보 협정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에는 일본에서 30억 엔(약 268억원) 규모 차관을 도입하기로 하는 등 중국을 경원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1일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 이달 말 열리는 정상회의에 대만을 초청하기로 한 데 대해 “반드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사진은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 ⓒ EPA/연합뉴스
그동안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맺은 안보협정은 미국을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의 정보공유 네트워크) 일원인 호주가 중국 견제에 앞장 섰다. 호주는 지난해 10월 파푸아뉴기니에 이어 지난달 피지와 안보 위협에 대해 협의하고, 한쪽이 공격받을 경우 서로 방위를 지원하는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호주와 바누아투는 지난 6월 비누아투 내에 어떠한 외국 군사기지 설립도 금지하는 포괄적인 안보협정을 체결했다. 바누아투는 중국으로부터 인프라 건설을 위한 차관 지원을 받은 뒤 최대 채권국인 중국과 밀착하는 행보를 걸어왔다. 2024년 7월에는 중국 자금으로 지어진 바누아투 대통령궁이 문을 열었으며, 재정부 청사 신축·외교부 청사 개조 사업에서도 중국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바누아투는 앞서 2022년 12월 호주와 안보협정을 체결했지만, 이에 반발한 의회가 이듬해 협정 비준을 무산시키고 친호주 정책을 펼친 이스마엘 칼사카우 당시 총리를 몰아냈다. 그러나 지난 2월 친중 성향의 샬럿 살와이 총리를 대신해 현 조탐 나팟 총리가 선출된 이후 다시 두 나라 협상이 탄력을 받아 이번에 마무리됐다.
호주는 2025년 9월 통가와 ▲호주군이 통가군에 군사훈련·자문, 역량강화 지원 ▲통가의 해상감시·순찰 능력 강화 ▲가디언(Guardian)급 초계함 2척을 제공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안보협정을 맺었다. 투발루와는 2024년 개발 지원과 안보를 보장하는 내용의 새로운 안보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호주는 해마다 투발루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280명을 기후 난민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투발루 인구는 1만 1000여명이다.
ⓒ 자료: 외신종합
또 투발루에 외국 침략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호주가 방어해 주기로 했다. 이 밖에도 호주는 해저 통신케이블 구축과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한 매립 프로젝트, 국가안보조정센터 건립) 등 1억 1000만 호주달러(약 1103억원) 규모의 개발 패키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남태평양에서 중국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급해진 중국 정부는 이들 작은 섬나라 달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달 14일 베이징에서 닉 호니푸웰라 솔로몬제도 외무부 장관과 만나 “태평양도서국은 모두 주권독립 국가로, 누군가의 ‘뒷마당’이 아니며 발전 동반자를 자주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솔로몬제도의 국가 주권과 독립, 정당한 권익 수호를 일관되게 지지하며 친환경 에너지 분야 협력과 교육·보건·청년 분야 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기후변화 등 글로벌 과제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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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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