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지난 5일 미 위스콘신주 치페와 폴스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그 일가는 가상화폐 사업으로 23억 달러(약 3조 5100억원)를 벌어들인 반면 투자자들은 같은 규모의 손실을 떠안았다. 트럼프 일가가 투자자를 모아 이익을 보는 동안 가격 폭락의 부담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논란이 커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일가는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가상화폐 금융 플랫폼 업체), ‘달러 트럼프’($TRUMP)라는 이름의 트럼프 밈 코인(유명인의 화제성 등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가상화폐), ‘알트(ALT)5 시그마’(트럼프 관련 가상화폐에 투자한 나스닥 상장 핀테크 기업), ‘아메리칸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관련 사업 4개에 대해 트럼프의 이름과 얼굴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로이터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자료 등을 검토하고 개인 투자자 27명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 트럼프 일가는 2024년 11월 대선 이후부터 2026년 4월까지 가상화폐 관련 4개 사업으로 떼돈을 벌었으나, 투자자들은 같은 규모의 손실을 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업 공시 등을 검토한 결과, 트럼프 일가가 이들 사업에 상당한 자본을 투입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자기 자본을 투입하는 대신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해는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3일 전인 지난해 1월17일 소설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지금 바로 달러 트럼프를 사라”는 글을 올렸는데, 바로 가격이 646% 급등했다. 2024년 9월 재집권 전 대선 후보 시절에는 엑스에 “역사적인 순간의 일부가 될 기회”라며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의 가상화폐 구매를 부추겼다. 맏아들 트럼프 주니어와 둘째아들 에릭 트럼프도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과 알트5 시그마의 협력을 홍보하기 위해 열린 나스닥 개장 타종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등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나 관련 기업 지분을 미리 확보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매각해 이익을 챙겼다. 트럼프의 이름 및 얼굴 사용 대가로 가상화폐 판매 수익을 배분받기도 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만 최소 23억 달러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투자자 100만명의 손실은 같은 기간 23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일가는 자신들의 돈은 거의 투자하지 않고 달러 트럼프 판매 수익으로 약 6억 1600만 달러를 챙겼다. 이와는 달리 외부 투자자들은 7억 달러를 손해봤다.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트럼프 일가의 가상화폐 사업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냈다. 트럼프의 아들 3명, 트럼프의 사업 친구인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특사와 그의 두 아들 등이 공동 창업자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지분의 60% 소유한 트럼프 일가에게 14억 달러 이상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를 구매한 투자자들은 2025년 9월 고점 대비 87% 하락한 가격으로 6억 74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나스닥 상장사인 알트5시그마는 지난해 8월 월드리버티 토큰을 15억 달러나 구매해, 가격 부풀리기에 가세했다. 이 과정에서 월드리버티의 수익금 75%인 5억 달러가 트럼프 일가로 갔다. 그러나 10개월 사이 주가는 93% 폭락했다. ‘AI 파이낸셜’로 이름을 바꾼 알트5시그마는 9일 현재 15영업일 이내에 주가를 올리지 못하면 나스닥 지수에서 상장폐지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이 20% 지분을 가진 아메리칸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채굴사업을 내세우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주가는 출시 당시인 지난해 9월 11달러에서 지난 4월 말 1.1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으나, 에릭 트럼프가 현금 투자없이 획득한 지분 9%의 가치는 여전히 7000만 달러 이상이다.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이달 기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순자산은 재집권 이후 1년 반 만에 182% 급증한 약 65억 달러에 달한다.
로이터는 “가상화폐같은 디지털 자산은 시장에 등장한 직후 유명인의 홍보 등에 힘입어 가격이 급등했다가 초기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으로 폭락한다”고 설명했다. 달러 트럼프는 출범 이틀 만에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날인 1월19일 폭락했고, 지난 4월 말에는 최고점 대비 97%가량 하락했다. 유럽의 한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는 “이건 완전한 사기”라며 “트럼프가 퇴임하기 전에 투자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뽑아내려 한다”고 맹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왼쪽)와 둘째아들 에릭 트럼프가 지난 2월24일 미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듣고 있다. ⓒ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 윤리특보 출신인 노먼 아이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형사법을 위반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윤리적 기준엔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백악관 수석 윤리변호사 출신인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대 미국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이해 충돌”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해충돌 논란을 전면 부인했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이해 충돌에 관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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