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행정복합청사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달 29일과 30일 양일간 실시된 제 9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사전선거 투표율은 역대 지방선거 가운데 가장 높은 23.51%였다. 4년 전 제 8회 지방선거 때의 20.62%에 비해 2.89%포인트나 높아졌다. 작년 대통령 선거, 2024년 제 22대 총선 때보다는 많이 낮았지만 지방선거로서는 의미 있는 사전 투표열기였다고 할만하다. 미리 투표하고 공휴일인 본 선거일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유권자가 많이 늘어났을 수 있지만 시기적‧정치적 배경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측되기도 한다.
투표율 상승이 희망적이긴 한데 우려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 그것이 과도한 진영·이념 대결의 표현이라면 ‘지방자치’의 의의는 희석되거나 변질되고 만다. 주객전도가 된다는 뜻이다. 지방행정의 중앙정치 예속화, 중앙당들의 지방선거 대리전화는 지방자치의 퇴행으로 이어진다. 정당들이 지방자치제 강화를 떠들면서 기실은 정당간의 전면전에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끌어들이는 ‘자치의 실종’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는 최종투표율이 상승했을 때나 가능한 진단이다).
민심이 정권을 교육하는 선거될까
짐작되기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당초 기대처럼 압승을 하게 되면 이미 습관화 단계에 이른 일탈은 상시화를 넘어 일상화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예컨대 이재명 대통령 사건에 대한 공소취소를 특검으로 하여금 강행토록 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질 것이다. 당 내분이 표면화될 경우라면 몰라도….
국민의힘이 저항하고 나서면 “국민은 내란세력 척결을 명했다. 따라서 국민의힘 정당해산 심판 청구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압박할 개연성이 있다. 선거 참패로 국민의힘 내홍이 격화되면 실제로 그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기를 한없이 죽여 놓으면 개헌도 쉬워진다고 계산할 수 있다. 단계별 개헌보다는 일괄 개헌을 더 선호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로 미루어 보면 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소취소의 명분 조성을 위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조작기소 특검법 발의’를 강행한 이후부터 선거 현장 분위기가 냉각되기 시작했다. 압승을 예상했던 서울 부산 대구 울산 경남 등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선전을 거듭해 접전 양상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 지역들 일부에서라도 만약 국민의힘이 이긴다면 그것만으로 민주당은 패배한 것이 된다. 반면 국민의힘은 기세를 올릴 기회를 얻는다. 당연히 이 대통령의 국정 견인력에도 타격이 가해진다. 다만 그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보여 온 행태로 미루어 지방선거 결과를 과소평가하면서 당초의 계획을 밀어붙이려 할 가능성이 크다. 물러서는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정권이기 때문이다.
진격만 있는 정부의 상징적 사례 중 하나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달 11일 밤 페이스북 글이었다. 김 실장은 해당 글에서 ‘초과세수 국민배당금제’을 제안했다.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이)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것이 설계의 정당성이자 원칙이다.”
그는 이에 앞서 지난달 8일 페이스북에 ‘코스피 7500 그리고 1만의 문턱 앞에서’라는 글을 통해 인공지능(AI) 인프라 기업들의 호황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26~27년 세수는 역사적 규모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바 있다.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설계해야 하고 그게 이른바 ‘국민배당제’라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다.
정부 또 무슨 돈 뿌릴 꾀 내고 있는지
언론들은 즉각 이를 ‘초과이윤 국민배당제’로 보도했다. 해당 기업들이 실로 모처럼만에 만들어내고 조우한 대호황으로 엄청난 이윤을 남기게 된 것을 정부가 ‘초과이윤’으로 규정했다. 평균보다 훨씬 높은 이윤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에 들인 고민․결단․개발․노력․투자의 대가다. ‘이윤’의 머리에 ‘초과’라는 수식어를 씌움으로써 정치․사회적으로는 ‘과도한 이윤-횡재-사회가 환수해야 할 몫’으로 읽히게 만든 것이다.
업계는 불안해했고 민심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이를 보도하자 주식시장에도 안 좋은 시그널이 나타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이 글을 올린 다음날인 지난달 12일 “청와대 내부 논의나 검토와 무관한 개인의 의견으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는 이 대통령이 직접 X에 글을 올려 김 실장을 비호했다. 김 실장의 말은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치적 비난이나 비판도 사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해치는 게 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경고문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관계자’의 언급에 대한 해명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김 실장은 당시 글에서 국민배당금을 제안한 근거로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를 제시했다. “여러 참고모델이 있다. 노르웨이는 1990년대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그 운용 수익을 재정 원칙에 따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자원 호황을 일시적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 24회 국무회의 겸 제 11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그렇지만 노르웨이는 해저에 매장된 석유자원을 ‘국유화’한 경우다. 그런 다음 국영기업을 세워 석유수입금 상당부분을 가지고 국부펀드를 조성했다. 그걸 통해서 이른바 ‘사회 전체 환원’ 체계를 만든 것이다.그 이익을 국민이 배분받는 것은 주주들이 경영성과를 토대로 배당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노르웨이는 인구 560여만 명의 인구소국이다. 국가 경영방식이 같을 수가 없다. ‘초과세수’를 말한 것이지 ‘초과이윤’을 말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 ‘국민배당’의 원천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런 말이 나오니까 또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좌파 정권은 국민에 대한 현금살포에 이력이 난 인상을 줘왔다. 현 정부 들어서도 민생회복 소비쿠폰(작년)과 고유가 피해지원금(올해)을 전 국민, 또는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지급했다. 후자는 지금도 지급 중이다. 고소득층은 그 재원을 부담할 의무만 지라는 식으로….
검찰 무오류 아니니까 법원 있는 것
현금지원은 시중의 유통경기를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대신 지속성이 없으면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심 얻기 인기 상품으로는 최적인 셈인데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나눠 줄 돈이 부족하면 정부로서는 증세, 축소예산, 국채발행 등으로 대처해야 한다. 임기 5년의 한시적 정부가 이런 식으로 나라 살림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다.
“임기 후의 일이야 내가 알 게 뭐냐”는 심사가 아니라면 국가예산의 용처는 백번 천번 고민한 후에 결정할 일이다. 무엇보다 국가경영자들,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4000명도 훨씬 더 되는 ‘오늘 선거’의 당선자들까지 포함해서)은 자신들이 생산자가 아니라 그들이 땀 흘린 결과를 나눠 받아서 사는 처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이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한 말이 아주 거북하게 들린다.
“혹시라도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잘못하면 사과하고 취소하는 거다. 어느 기관도 마찬가지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간에 정부 여당에서 논의되고 시도됐던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피력한 셈이라고 하겠다. ‘피력’이라기보다는 경고 및 명령이라는 게 옳겠다. 선거 때문에 미뤄졌던 과제를 늑장부리지 말고 즉시 해결하라는 뜻일 터이다. 그 자신은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4개월 남은 검찰청 존속기간 안에 할 일은 다하라는 것일까?
대통령 자신은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있는지, 혹 잘못을 해서 사과하고 취소한 경험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검찰이 잘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판단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다. 검찰이 다 결정해 버릴 것이면 사법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선거 결과에 따라 국회가 ‘조작기소 특검법’을 적극적으로 입법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는 말로도 들리는데 8개 사건으로 5개 재판에 회부돼 있는 자신의 모든 공소를 일괄 취소하라는 것인가.
기업의 초과이윤을 이야기하면서 정부 여당의 초과권력은 왜 말하지 않는가? 기업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이윤을 창출해 냈지만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이익확대와 위험해소를 위해 초과권력을 스스로 만들어 행사하고 있다. 초과권력은 민주주의 파괴요인이 된다. 그걸 방지하고 걷어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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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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