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명작 ‘조씨고아’ ‘어햎’이 증명한 성공적 체급 확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1.28 14:14  수정 2025.11.28 14:14

국립극단의 대표 래퍼토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소극장 창작 뮤지컬 신화로 꼽히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10주년을 맞아 나란히 두 배 커진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21일 개막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기존 명동예술극장(약 500석)에서 1200석 규모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입성했고, 초연부터 300~35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하던 ‘어쩌면 해피엔딩’은 550석 규모의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무대를 옮겼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장면 ⓒ국립극단

두 작품은 모두 지난 10년간 매 시즌 매진될 정도로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수작으로 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이 무대를 키운 방식이다. 통상적으로 극장 규모가 커지면 무대 장치를 화려하게 늘리거나 앙상블 수를 늘려 시각적 스펙터클을 채우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어쩌면 해피엔딩’은 화려한 덧칠보다, 지난 10년간 묵묵히 쌓아온 ‘내공’으로 넓어진 공간을 채웠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올려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무대는 고선웅 연출 특유의 미니멀리즘이 극대화된 공간이었다. 텅 빈 무대에는 거대한 붉은색 막이 드리워져 있고, 서사의 주요 키워드가 되는 소품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극에 사용되는 소도구들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명동예술극장 시절의 오밀조밀한 밀도가 대극장의 넓은 공간에서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1200석의 거대한 공간은 주인공 정영이 짊어진 고독의 크기를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듯했다. 텅 빈 무대 위, 홀로 선 정영의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작고 위태로워 보였고, 그 덕분에 그가 감내해야 하는 희생의 무게는 더욱 육중하게 객석을 짓누른다.


초연부터 정영 역을 지켜온 배우 하성광과 도안고 역의 장두이의 발성은 객석 끝까지 대사로 가득 채웠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피리 소리에 맞춰 놀다 보면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이라는 대사처럼, 커진 무대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광활한 허무 속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장치가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장면 ⓒNHN링크

같은 시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확장 문법도 유사하다. 미래의 로봇(헬퍼봇)들이 나누는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본래 소극장의 친밀함이 생명인 극이다. 무대가 두 배로 커지면서 자칫 인물 간의 정서적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었으나, 10년간 숙성된 이 작품의 정서는 넓어진 공간을 울림을 더 깊게 만드는 곳으로 바꿔놓았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는 연강홀의 음향 시설과 공간을 만나 더욱 풍성해졌고, 대표 넘버들이 주는 여운은 더 짙어졌다.


무대 디자이너는 공간을 억지로 채우는 대신, 헬퍼봇들이 사는 공간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구현하여 그들의 고립감을 우아하게 시각화했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숲 장면은 넓어진 무대 덕분에 더욱 환상적으로 구현됐다. 소극장의 집중도는 중극장 규모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이어졌다. 작품이 지닌 본연의 힘이 넓어진 무대와 객석 사이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채웠음을 보여준다.


두 작품의 ‘체급 키우기’는 단순히 수익 창출을 위한 좌석 확장이 아니다. 이는 작품이 10년간 축적된 콘텐츠의 저력을 확인한 과정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미니멀한 연출과 배우의 신체성이 거대 서사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음을, ‘어쩌면 해피엔딩’은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리적 공간의 확장에 구애받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무대의 크기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 무대의 크기를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