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23조원 투자로 삼성전자 파운드리 기사회생 전망
향후 테슬라와 삼성전자의 전략적 AI 동맹을 염두에 둔 투자
2027년 이후부터 경영 실적에 반영되니 차분한 준비 필요
어느 날 갑자기 일론 머스크(54)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한국경제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트럼프와 사이가 틀어지고 테슬라의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하자 1주일 내내 공장에서 숙식을 하겠다던 그가 아닌가. 그렇게 정치판에서 현장경영으로 돌아온 일론 머스크가 한국경제에 큰 선물을 던져 주었다.
7월 31일 확정 발표된 삼성전자 반도체의 2분기 실적은 참담했다. 종합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의 영업이익이 4000억원으로 메모리 반도체 위주인 SK하이닉스(9조 2129억원)의 5%에도 못 미친다. 그중에서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제대로 된 수주를 못해 실적 부진의 주범이 되었고 올해만 5조원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올해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7.7%)는 대만 TSMC(67.6%)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3위인 중국 SMIC(6.0%)와도 1.7%포인트 차이에 불과, 자칫 3위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테슬라로부터 165억 달러(22조 8723억원) 규모의 초대형 수주를 했다.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칩인 ‘AI6’를 미국 텍사스주(州) 테일러시(市) 공장에서 최첨단 2나노미터(10억분의 2m) 공정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계약 기간은 2033년 12월 31일까지 8년 정도이며, 단일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로서는 그간의 설움을 한꺼번에 씻어 낼 수주를 했다.
당초 삼성전자는 영업비밀 보호 요청에 따라 계약 상대방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론 머스크가 먼저 공개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만들 AI6는 테슬라의 미래를 좌우할 물건이다. 연산성능(TOPS)이 AI5보다 2~3배(1초당 5000~6000번 연산)나 되며 테슬라의 자율주행 시스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슈퍼컴퓨터 도조3 등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일론 머스크는 그런 AI6 생산을 위해 왜 삼성전자를 선택했을까.
무엇보다 삼성전자에 대한 기술적인 신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테슬라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2나노 공정에서 테스트한 수율(收率·생산품 중 정상품의 비율)이 적어도 60% 선까지는 올라왔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는 수주가 포화 상태여서 테슬라가 신규 주문을 해도 받을 수가 없다. TSMC는 퀄컴·애플·엔비디아 등 대형 업체들의 주문이 꽉 차 있는데, 지난 4월 말 착공한 애리조나주의 3번째 미국 공장이 완공되어야 그나마 여력이 생긴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공급망을 다변화해 리스크 관리를 하자는 차원에서 삼성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테슬라는 이전 모델인 AI4를 TSMC와 삼성전자, AI5를 TSMC에 맡겼는데, AI6는 다시 삼성전자에 맡기는 셈이다. AI5의 경우 최근 설계가 마무리되어 TSMC에서 이제 본격 양산을 앞두고 있다. 테슬라는 이보다 한 발 더 나가는 AI6 생산도 미리 결정지은 셈이다. 때마침 삼성전자가 TSMC보다 단가도 낮추어 제시했을 것이고, 이는 테슬라의 상황과 맞아떨어졌을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몰빵’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이 밖에 지리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테슬라는 미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첨단 반도체를 확보하면서 중국·대만 중심의 파운드리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미국 내 AI 생태계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테슬라 본사가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테일러는 오스틴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만 달리면 충분할 정도로 가깝다.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은 모두 370억 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데, 가동 목표는 내년 말이다. 그동안 파운드리 고객이 적어서 공장 건설이 지지부진했는데, 앞으로 신속하게 건설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X에 올린 메시지에는 살펴보아야 할 구절들이 있다. 바로 “삼성은 테슬라가 생산효율 극대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해줬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나는 직접 생산라인을 걸으며 진척 속도를 높이기 위해 참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장은 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편리하다”라는 대목이다. 그리고 “계약 금액 165억 달러는 최소 숫자다. 실제는 몇 배 될 것이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양사의 강점을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반등시키는 시발점이 되는 것은 물론, 양사가 장기적 파트너십을 맺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일론 머스크는 이재용 회장과 화상 통화도 하면서, 앞으로 ‘엔비디아-TSMC 파트너십’처럼 ‘테슬라-삼성전자 파트너십’을 구축하자는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확대 계획에도 삼성전자가 일정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몇 가지 유의할 부분도 있다. 앞으로 일론 머스크가 테일러 공장의 생산과정에 깊게 개입할 가능성이다. 오스틴에서 지내는 일론 머스크 입장에서는 차로 쉽게 오갈 수 있다. 원래 파운드리란 ‘주문형’ 생산이므로 주문자의 의사를 100%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산하는 과정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트럼프와도 맞싸우는 일론 머스크의 독특한 캐릭터를 감안할 때, 그가 만일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일 처리가 맘에 들지 않다고 판단하면 도를 넘는 경영 간섭을 할 수도 있다면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이번 수주와 관련하여 삼성전자로서도 챙겨야 할 포인트가 있다. 무엇보다 수익을 제대로 내려면 여전히 불안정한 수율을 확실히 높여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수율이 낮으면 만들수록 손해가 생긴다. 반도체 공정의 마지막 순서인 패키징 기술도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또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한다면 회사 경영에 숫자로 도움 되는 데는 2027년부터야 가능해진다. 때마침 로이터는 “이번 계약을 8년으로 나누면 연평균 21억 달러(약 2조 9000억원) 수준이라 적자가 누적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반전 기회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너무 들뜨지 말고 차분하라는 충고로 보면 되겠다.
어쨌든 이번 수주는 반도체 부진에 허덕이던 삼성전자의 큰 등불이 되었고, 사법리스크를 해소한 이재용 회장의 경영 행보에 서광을 비추는 일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남아공(南阿共)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는 ‘대통령이 되려면 미국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미국 헌법 때문에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향후 대통령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글/ 최홍섭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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