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 안에 승부본다…샘플링곡, 숏폼 유행에도 '거뜬' [D:가요 뷰]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입력 2025.05.29 10:28  수정 2025.05.29 10:29

샘플링(Sampling)은 결코 새로운 기법이 아니다. 원곡의 멜로디나 리듬, 사운드를 차용해 새로운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은 힙합과 알앤비(R&B), 팝 등 장르를 불문하고 수십 년간 꾸준히 활용됐다. 하지만 최근 케이팝(K-POP) 시장에서 샘플링곡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숏폼 영상의 대중화와 맞물려, 가요계의 샘플링곡 제작은 '콘셉트'와 '전략'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대표적인 사례는 3월 발매된 걸그룹 캔디샵의 ‘팁토’(TIP TOE)다. 이 곡은 씨스타19의 ‘마 보이’(Ma boy)를 샘플링해 도입부에 익숙한 멜로디를 배치함으로써 리스너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아이브의 '애티튜드'(Attitude)와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르세라핌의 '언포기븐'(UNFORGIVEN) 역시 모두 샘플링 기법을 활용해 곡의 초반 몇 초 안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이는 1~3초 내로 사용자의 이탈 여부가 결정되는 숏폼 플랫폼의 알고리즘 환경에서 특히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익숙한 멜로디가 리액션 유도 확률을 높이며,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숏폼 중심 플랫폼에서 알고리즘 추천 리스트 상단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본다. 특히 도입부 몇 초 안에 청각적 흥미를 끌어야 하는 숏폼 환경에서 샘플링은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그룹 라이즈의 ‘러브119’는 izi의 ‘응급실’을 샘플링해 낯익은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활용한 팬 중심 숏폼 콘텐츠가 다수 생성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이 곡은 발매 직후 각종 숏폼 플랫폼에서 ‘러브119 챌린지’ 등으로 확산되며 주목을 받았고, 라이즈는 이 곡으로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달성하며 2020년대 데뷔한 보이그룹 중 가장 먼저 트로피를 거며쥐었다. 대중적인 멜로디를 댄스곡으로 재해석해 음원 성적과 화제성 모두를 잡은 사례다.


샘플링은 단순히 청각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콘셉트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현재 케이팝 시장에서는 1990~2000년대를 연상케 하는 레트로 열풍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과거의 감성과 현재의 스타일을 융합한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새롭게 다가간다. 특히 아이돌 그룹은 샘플링을 통해 기존의 명곡에 자신들만의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차별화된 콘셉트를 구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는 글로리아 게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를 샘플링해 만든 곡으로, 1970∼1980년대의 레트로한 멜로디에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를 더해 아이브만의 y2k 콘셉트를 선보였다. 데뷔곡부터 y2k 콘셉트로 주목받았던 뉴진스 또한 린 콜린스의 ‘씽크 어바웃 잇’을 샘플링한 ‘이티에이’ 발매 당시 추억의 애니메이션인 파워퍼프걸과 협업한 앨범을 통해 레트로 열풍의 선두주자로 활약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샘플링 대상이 된 음원의 맥락이나 출처가 논란이 될 경우, 단순한 음악적 실험을 넘어 윤리적 비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칸예 웨스트는 과거 히틀러 육성을 샘플링한 곡 ‘하일 히틀러’를 발표해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은 후 한국 공연이 취소됐으며, 방탄소년단 슈가는 믹스테이프 수록곡 ‘어떻게 생각해’에 사이비 교주로 알려진 인물의 음성을 사용했다가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해당 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


더불어, 저작권 문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블랙핑크, 레드벨벳, 아이들 등 다수의 아이돌 그룹이 저작권 문제에 휘말릴 일이 없는 클래식 음악을 샘플링해 곡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로제는 샘플링과 유사한 개념인 인터폴레이션 기법으로 제작한 'APT.'(아파트) 발매 당시 크레딧에 마이클 체프먼과 니콜라스 친을 함께 등록했다. 이들은 토니 베이즐의 곡 '미키'를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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