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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⑥] 아카데미 작품상 ‘노매드랜드’ & 셰익스피어 맥베스·소네트


입력 2021.04.27 09:52 수정 2021.04.27 09:5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노매드'로 산다는 것 ⓒ이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노매드'로 산다는 것 ⓒ이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한국시각으로 26일 오전 9시 시작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매드랜드’(감독 클로이 자오,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우리에게는 ‘미나리’(감독 아이작 정)의 배우 윤여정이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받은 게 크나큰 기쁨이고, 수상 소감을 몇 번씩 다시 듣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으로 알게 모르게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던 우리에게 필요했던 ‘가뭄의 단비’ 같은 희소식이었다.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롤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마흔 개 가까운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수집하다시피 받는 동안 국내 개봉한 ‘미나리’를 많은 관객이 사랑했고, 아카데미에서 39번째 트로피마저 가져왔기에 앞으로도 극장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질 것이라 믿는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질긴 생명력의 미나리를 통해 치유를 받거나 눈물을 쏟았던 당신에게 또 한 편의 ‘극복’ 영화, 뇌가 이유를 알기도 전에 목구멍에서 꾸역꾸역 눈물이 솟는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노매드랜드’이다.


영화 ‘시민케인’의 탄생 과정을 통해 할리우드의 영화 만들기를 신랄하게 재조명하면서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맹크’를 비롯해 쟁쟁한 후보작이 많은 가운데 ‘노매드랜드’가 3관왕을 차지한 이유, 되새겨봤으면 하는 명대사를 통해 추천사를 대신할까 한다.


대체불가, '날것'의 힘을 보여주는 배우 프랜시스 맥도맨드 ⓒ 대체불가, '날것'의 힘을 보여주는 배우 프랜시스 맥도맨드 ⓒ

명확해서 쉬운 얘기부터 해 보자. ‘노매드랜드’에서 제목처럼 노매드(혹은 노마드, nomad,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 ‘펀’을 연기한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영국 아카데미에 이어 미국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파고’(감독 조엘 코엔, 1996), ‘쓰리 빌보드’(감독 마틴 맥도나, 2017)에 이어 세 번째 수상이다. 아카데미 역사상 여우주연상을 4번 받은 배우는 캐서린 헵번이 유일하고, 그 뒤를 잇는 신기록이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도 오스카 트로피를 세 번 거머쥐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받은 한 번은 여우조연상이어서 여우주연상은 두 번 받았다. 두 번 받은 배우는 메릴 스트립을 비롯해 11명이 더 있다.


여우주연상 3번째 수상으로 아카데미 역사를 다시 쓰고, ‘쓰리 빌보드’로부터 불과 4년 만에 프랜시스 맥도맨드에게 다시 트로피를 준 데에는 필연의 이유가 있다. 원작이 된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의 작가 제시카 트루더는 노매드 생활을 하고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포장 일을 한 경험을 글로 썼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맥도맨드 역시 노매드 체험을 했고, 임시직 계산직원 일을 한 마트에서는 고용을 권했을 만큼 진심으로 연기에 임했다. 함께 촬영한 이들 일부는 맥도맨드가 배우인 줄 몰랐을 정도로 철저히 노매드를 연기했다.


시상자로 나선, 지난해 ‘주디’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르네 젤 위거가 말했듯 영화와 현실을 잇는 연기, 카리스마와 투명성이 있는 연기, 진정성 있는 연기로 화면을 압도한다. 그리고 그 척박한 곳에서 삶의 황량함을 연기하는 가운데, 화장기 없이 주름진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면서도, 배우가 진정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인가를 깨닫게 한다. 대체불가의 연기이고 배우다움이고 아름다움이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 ⓒ뉴시스 제공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 ⓒ뉴시스 제공

마찬가지로 영국 아카데미에 이어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는 허구와 실재의 경계에서 영화를 연출했다. 펀을 노매드 세계로 안내하는 린다 메이, 어려운 순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샬린 스웽키는 실재 노매드이고 자신의 역을 자신이 연기했다. 유목민캠프를 열어 초보 캠퍼에게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고, 선배 캠퍼들이 깨알 같은 생존 정보를 전하는 장을 만드는 밥 웰스 역시 노매드이고 자신을 연기했다. 그 밖에도 여러 노매드 분들이 화면 안팎을 넘나든다.


영화 세트장이 아닌 현실의 노매드랜드에 가공의 인물 펀(프랜시스 맥도맨드 분)과 데이브(데이빗 스트라단 분)를 편입시켰다. 그리고는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섣부른 개입과 설정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두 배우는 노매드랜드에 안착했다. 심지어 밥 웰스는 상실감을 토로하는 펀을 위로하는 장면을 찍을 때까지도 맥도맨드가 배우인 줄 모르고, 그냥 사랑하던 남편을 잃은 펀인 줄 알았다. 촬영 후 웰스가 개인적 위로를 전했고, 맥도맨드가 배우이고 연기임을(남편이 ‘파고’의 감독 조엘 코엔이고 살아있지 않은가) 얘기하자 깜짝 놀랐단다.


맥도맨드의 연기력을 방증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클로이 자오의 의도된 연출 방식이 바탕에 있다. 자오 감독의 흔들리지 않는 방식, 논픽션(현실)에 픽션(허구)을 위치시킨 연출 덕에 ‘노매드랜드’는 어떤 영화보다 진정성을 내포한다. 단지 다큐멘터리 느낌의 영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선 작품이라고 말하기엔 아쉬운 어디서부터가 영화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호한, 그래서 더욱 진실한 사실주의 영화를 세상에 냈다. ‘날것’ ‘진짜’의 힘을 연출과 연기로 빚어냈다. 감독상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담이지만 감독 클로이 자오와 배우 마동석이 만날 영화 ‘이터널스’가 어떤 매무새로 완성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새로운 마블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키우는 것은 분명하다.


노매드랜드, 노매드…미국과 감독의 정체성 ⓒ영화 촬영현장 노매드랜드, 노매드…미국과 감독의 정체성 ⓒ영화 촬영현장

3관왕의 이유 가운데 작품상 얘기를 마지막에 하는 것은 제일 큰 상이어서가 아니다.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달아야 할 만큼 ‘노매드랜드’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오늘 얘기하는 두 가지 생각 외에 더 많은 의미가 밀려올 것이고, 세상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노매드랜드’에 대해 더 깊은 얘기가 나눠질 것으로 믿는다. 좋은 건 분명한데 왜 좋은지는 빙산의 일각만큼만 드러낸 영화, 스스로 찾아가는 작품이라고 하는 게 어쩌면 모호하지만 가장 정확한 설명일지 모른다.


영화를 보며 든 첫 번째 생각은 클로이 자오라는 감독이 미국에 대해, 자신의 인생 여정에 대해 해석하고 판단한 결과가 ‘노매드랜드’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주거지(HOUSE)가 있고, 그 주거지가 일정한 정착민과 이동해 다니는 유목민이 있다. 유럽의 주거지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미국이고, 그들은 북미에 와서도 정착하지 않고 금을 찾아 서부로 마차를 몰았다. 미국이 세워지고 번성하게 된 배경, 미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의 정체성을 ‘노매드’에서 찾고 있다. 노매드랜드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오늘도 노매드랜드에는 중국을 떠나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온 클로이 자오와 같은 노매드가 숱하다. SUV를 개조한 펀의 캠핑카의 이름도 뱅가드(vanguard), 선구자이다.


노매드는 노숙자와 다르다. 노숙자를 흔히 ‘homeless’라고 부른다. 그들에게는 가정이 없다. 하지만 노매드에게는 자신의 캠핑카가 해가 지면 돌아가고 1루로 떠났으면 꼭 되돌아와야 하는 홈(HOME), 안락한 가정이고 시작점이자 종착지다. 단지 그들은 한 곳에 고정된 지붕 아래 자는 게 버겁고, 먹기 위해 일하고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일하고 떠나기 위해 일터에 잠시 머무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인생과 일을 손끝에서 놓지 않았다. 다만 일만 하지 않을 뿐이다. 영화에 나오듯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으나 바다에 띄워 본 적 없는 요트를 마당에 세워놓은 채 죽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내 차를 요트 삼아 세상과 자연이라는 바다에 뛰어든 사람일 뿐이다.


그들의 일상과 얘기를 덤덤히 담아내는 클로이 자오, 새로운 결의 영화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연기하고 투자·제작한 프랜시스 맥도맨드는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보상받았다. 우리는, 조미료 없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큰 선물을 받을 것이다. 영화 보는 동안엔 내 힘겨웠던 삶의 마디마디에 위로를 주는 것만 같아 왠지 모를 눈물이 솟아 응어리가 풀리고, 극장을 나와선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잘 걷고 있는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 숙고의 시작점이 되는 하나의 대사와 하나의 내레이션이 ‘노매드랜드’ 안에 있다. 자오 감독이 영국에서 공부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셰익스피어의 글이다.


맥베스의 독백 ⓒ출처=네이버블로그 In the Cinema of Crimson 맥베스의 독백 ⓒ출처=네이버블로그 In the Cinema of Crimson

먼저 등장하는 건 맥베스 5막 5장. 아내가 자진했다는 부음을 들은 맥베스가 하는 독백이다. 어떤 아내인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아내와 모의하여 던컨왕을 죽이고, 장군의 후손의 왕이 된다는 예언에 다시 한번 반역의 동료 뱅코 장군마저 죽인 뒤, 자꾸만 나타나는 뱅코의 망령에 함께 고통받던 아내 아닌가. 그리고 이 악몽의 고통 속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얘기 나누던 아내가 결국 먼저 세상을 뜬 것이다.


펀이 임시교사 일을 할 때 학생에게 가르친 구절이었고,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에게 펀이 기억하느냐고 묻자 구절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어여쁜 모습으로 암기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내일’부터 ‘촛불’ 부분까지 나온다.


“이 소식은 언젠가는 올 것이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하루하루가 슬금슬금 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들어 온다.

우리의 모든 어제라는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티끌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비춰왔구나.

꺼져라, 꺼져. 이 키 작은 촛불이여.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잠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스대지만,

그때가 지나면 영영 사라져버리는 서툰 광대.

그것은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리 높여 흥분하고 지껄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결국 돌아갈 '홈'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느 홈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 우리가 결국 돌아갈 '홈'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느 홈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맥베스 대사가 인생의 ‘고’를 얘기했다면, 영화 마지막 펀이 읊는 셰익스피어 소네트(소곡, 14행시) 18번은 외롭고도 고행인 인생길을 걷는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서 펀의 언니가 말하듯 어려서부터 이상하고 특별했던 아이는 집을 떠나서 한 남자를 만나 수개월 만에 결혼하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폐암으로 죽고도, 더는 쓸모없는 곳이라며 국가가 석고보드 공장이 있던 사막의 도시 엠파이어를 폐쇄하고 우편번호마저 없애 버렸건만 펀은 그곳에 남았다. 자신마저 떠나면 고아였던 남편이 돌아올 ‘홈’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뜻과는 상관없이, 밥벌이할 곳 없는 곳에서 주택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넘기고 펀은 차에 최소한의 물품만 싣고 길로 떠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의 삶, 펀은 엠파이어로 돌아와 마을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남은 가재도구들을 이웃에게 나눔 한다. 그리고, 다시 못 볼 추억의 하우스이자 홈이었던 곳에서 뒤뜰로 나가 소네트를 읊는다. 그 소리에 남편이 돌아와 ‘뱅가드’에 함께 오를 것만 같다.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프랜시스 맥도맨드의 소리가 아름답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출처=네이버블로그 In the Cinema of Crimson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출처=네이버블로그 In the Cinema of Crimson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대는 여름날보다 아름답고 부드럽다.

거친 바람은 5월의 귀여운 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의 생명은 너무나도 짧다.

하늘의 눈은 가끔 너무 뜨겁게 내리쬐고,

황금빛 피부도 가끔 희미해지곤 한다.

어떠한 미인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이 쇠하리니,

우연히 또는 자연의 변화하는 순리에 따라 아름다움은 그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바래지 않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잃는 일 또한 없으며

죽음도 그대가 죽음의 그늘 속을 배회한다고 자랑할 수 없으리라.

이 불멸의 노래 속에서 그대가 자라난다면,

인류가 살아 숨 쉬는 한,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니.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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