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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전 세계 노동절 영웅’ 조나단 브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


입력 2021.03.17 15:08 수정 2021.03.17 15:33        데스크 (desk@dailian.co.kr)

Hammering Man, painted steel, electric motor Permanent installationⓒDallas Museum of Art.Jonathan Borofsky Hammering Man, painted steel, electric motor Permanent installationⓒDallas Museum of Art.Jonathan Borofsky

왜 그렇게 작품을 크게 만드느냐는 질문에 조나단 브롭스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히고 거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내 기억 속에 그 거인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거인이었다. 나는 전 세계 노동계급 남녀들을 기리기 위해 이 조각품들을 만들었다. ‘해머링 맨’은 우리의 노동절 영웅이다.” - 노동에 대한 숭고한 시선 조나단 브롭스키의 ‘해머링 맨’ 이야기 중-


망치질 하는 사람, ‘해머링 맨’(Hammering Man)은 미국 출신의 인체 조각의 새로운 개척자인 조나단 브롭스키 (Jonathan Borofsky (1942.12.24.~))의 연작 중 하나다. 1979년 뉴욕의 폴라 쿠퍼 갤러리(Paula Cooper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소개 되었는데, 당시 폴리우드로 만들어져 선보인 11피트 크기의 노동자 ‘Worker’라는 나무 조각 작품이 원형이었고, 곧 강철로 제작하면서 망치질 하는 사람 ‘Hammering Man’(해머링 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1년 스위스 바젤(Basel)의 쿤스탈레 갤러리(Kunsthalle gallery), 1982년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 행사인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등에서 연이어 선보여졌으며, LA 카운티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미네아폴리스의 워커 아트센터, 텍사스의 달라스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앞 다퉈 소장하며 전시가 되었다. 그러나 조나단 브롭스키는 전시장을 찾는 소수의 전문가와 미술 애호가들 이외에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즐기길 원했고, 이에 대형 ‘거인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후 ‘해머링 맨’은 세계 여러 도시의 야외 공공장소에 설치되었다.


왼손잡이, 오른손잡이로 조금씩 다른 망치질 하는 사람 ‘해머링 맨’은 현재 전 세계 11곳에 세워져 있는데, 가장 큰 작품은 서울 흥국빌딩 앞에 있는 것으로 아시아 최초로 제작되었고, 세계 7번째로 설치되었다. 다음으로 큰 것이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외 스위스의 바젤(Basel), 미국의 달라스(Dallas), 덴버(Denver),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뉴욕(New York), 시애틀(Seattle), 워싱턴(Washington D.C.), 노르웨이; 릴레스트롬(Lillestrøm), 독일; 베를린(Berlin), 프랑크루프트(Frankfurt)에 있다.


조나단 브롭스키는 194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보스턴에서 출생했다.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였으며, 1966년 예일 미술 건축학교에서 조각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만화 같은 이미지와 기법, 모호한 이야기를 눈에 띄는 구상양식으로 표현한 뉴 페인팅 작가로 알려졌으며, 환경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전 세계 여러 도시의 공공장소나 빌딩 앞에 초현실적이고 몽상적인 대형 인체 조각을 설치해 왔다. (조나단 보롭스키 (두산백과)참조)


1960년대, 브롭스키의 20대 시절에는 당대 주류 미술이던 미니멀리즘과 팝아트도 심취했었는데, 특히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인 솔 르윗을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개념미술에서 벗어나면서 강렬한 인체 형상의 작품을 통해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회화든 조각이든 그의 작품엔 인체 형상이 등장했다. 회화는 베를린 장벽을 캔버스 삼아 그린 ‘달리는 사람’(Running Man)이 대표작이다.


조각가로서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는 브롭스키의 다양한 대형 작품들 중에서도 지나가는 행인을 압도할 정도로 큰 망치질 하는 사람, ‘해머링 맨’ 은 전 세계 11곳 각도시를 대표하는 공공미술 작품임은 물론, 그를 바라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다니고 있기에 그 유명세는 날로 더해져가고 있다.


작가는 ‘기억’과 특히 ‘꿈’을 그의 모든 작품의 원천 재료로 사용하는데, 1976년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열심히 망치질 하는 모습이 담긴 평면 사진 속 에서 그 영감을 끌어냈으며, 구두 수선공의 망치질에서 노동자들의 심장 소리를 느꼈고, ‘해머링 맨’을 통해 노동의 숭고한 가치와 삶에 대한 사색을 표현하고자 했다. 때문에 거인 노동자 ‘해머링 맨’의 망치질은 ‘진지’하며 ‘근엄’하고 ‘신성’하기 까지 하다. 북구 신화 속 ‘천둥의 신’ 토르의 거침없는 망치질이나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가치가 발견되면 거침없이 망치질 한다’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해머링 맨’은 거대한 남자의 팔에 모터가 달려 움직이도록 설계 되어있다. 망치질하는 인간의 팔이 오르내리는 동작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듣던 '거인 이야기'에서 착상을 얻어, ‘일과 반복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으로 아주 느린 동작이다. 60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하는데, 천천히 팔을 내리는 동작은 그 ‘느림의 미학’이 주는 ‘성찰적 효과로 해석’되고 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망치질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권고 하듯 말이다.


가는 강철로 만들어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인체의 실루엣은 철재 패널로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망치를 든 거대한 팔이 전기장치인 모터에 의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설치조각 키네틱아트 (kinetic art)다. 마치 그림 자극을 보는 듯 얇고 검은 몸이다.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분자맨’(Molecule Man)이 은색 알루미늄 재질로 반짝거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 작가는 재료의 물성이 주는 다른 효과를 기대한 것인데, 이 거대한 인간 형상은 그림자처럼 얇고 검어서 대형 조각품이 주는 자기 성찰적 기운을 강화시키기도 하며. 동시에 중심에 서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 그림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느끼는, 노동하는 현대인의 이면에 가리어진 고독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브롭스키의 ‘해머링 맨’은 노동자다. 손에 들린 것은 망치이지만 그것은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모든 노동의 상징일 뿐이다. 종일 노동하는 누군가의 노트북, 누군가의 용접기인 것이다.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1시간, 1분에 한 번씩 망치질하며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 그리고 우리나라는 현재, 근로자의 날로 명하고 있는 노동절인 5월 1일에 가동을 멈춘다. 점심시간도 없이 하루에 11시간, 660번의 망치질 일을 하고 있으니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매일 연장근로를 하고 있는 셈이다.


1982년, 5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세계에서 권위 있는 미술 행사에 손꼽히는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에서 조나단 브롭스키의 ‘해머링 맨‘의 끊임없이 망치질 하는 노동자의 손은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을 창조하는 신의 손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예술성을 높이 평가 받기도 했다.



BONUS NOTE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사옥 앞에 서 있는 ‘해머링 맨’은 24층짜리 흥국생명 빌딩의 6층 높이와 마주하는 엄청난 높이를 자랑한다. 흥국생명은 당시 ‘1%법’(1만㎡ 이상 건축물의 신·증축 시 건축 비용의 1% 범위에서 회화, 조각 등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법)과 별도로 이 조각을 수주할 정도로 스케일이 남달랐다.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스케일은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서울의 ‘해머링 맨’은 높이 22m 로 프랑크푸르트 것(21m)보다 1m 더 크다. 작가는 서울에 설치했던 2002년, 카네기멜론매거진 인터뷰에서 “‘해머링 맨’의 키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한다. 시애틀미술관 앞에는 48피트(14.6m), 스위스 바젤 스위스은행연합회 앞에는 44피트(13.4m)짜리가 있다. 그게 그 빌딩에 맞는 사이즈”라고 했다. 흥국생명 빌딩이 제법 높은 빌딩임을 시사했던 것이다. 이에 당시 언론은 ‘광화문서 망치질하는 22m 거인’ ‘서울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물 공공미술’이라며 호평했다.


작가는 1분 1회씩 위 아래로 되풀이해 움직이는 망치질 동작은 현대인의 고단한 일상과 고독을 상징화 했으며, 간결한 외곽선으로만 표현된 설치물의 검정 실루엣은 익명의 실존을 형상화 한 것이라 했는데, 브롭스키의 ‘망치질 하는 사람’은 2002년 설치된 이래 20년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국내 거리조형물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설치 당시, 한국에 설치된 많은 외국 작품과는 다르게 국내에서 직접 제작된 최초의 거리 조형물이었기에, 현장 방문 및 제작 과정의 세세한 감리 과정에서 보여 준 작가의 애정, 국내 제작진의 노력 등은 국내외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찬사를 불러 왔지만 이후 작품이 건축물에 너무 가깝게 붙어있어 ‘도시적 문화 요소로서의 기능을 제한 받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2010년 '서울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작품을 건축물 미술 장식이 아니라 공공미술로 재배치하고자 10억 원의 비용을 들여 원래의 위치보다 도로 쪽으로 4.8 미터 앞으로 당겨진 것이 지금의 ‘해머링 맨’의 위치이다.


이 거대한 철제 조각상은 망치질하는 데 드는 전기료, 보험료 등 유지비만도 연간 7000여만 원 가량이 든단다. 설치와 이전, 유지 과정에서 보여준 흥국생명의 행보는 기업 오너가 미술 애호가로서 거리미술로서의 공공 조각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하며, 어떻게 보존하며 업그레이드시키는지를 웅변하는 사례로 일컬어지고 있다.


당시 ‘해머링 맨’의 이동에 따라 생기는 빈 공간과 주변에는 거리공원을 도입하고 기능적인 버스정류장을 아트 쉘터(Art Shelter)로 바꾸는 ‘거리 문화 공간 조성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네덜란드 건축그룹 ‘매카누(Mecanoo Archtect)와 하태석 작가’가 디자인한 이 거리공원에는 길에 도시인의 감성을 고려하여 제작된 디자인 벤치와 조경, 조명, 물안개 등을 배치하고 망치질 하는 사람의 주변을 돌아 서대문 방향으로 흐르는 길 만들어 거리 설치물과 주변 전체가 서정성 넘치는 하나의 도시 작품으로 재탄생 되었던 것이다.


도심 빌딩 사이에 우뚝 선 망치질 하는 사람은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서나 볼법했던 거인의 모습인데, 그런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인체 조각이 ‘걸리버 여행기’ 속 거인처럼 서 있으니 처음 대면 당시 그때 그 기분은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거인을 만난 듯 신기할 뿐이다. 끊임없이 망치를 두드리는 해머링 맨의 발은 거인의 몸짓에 비해서도 그 크기가 상당히 크다. 큰 발의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노동의 세계에 대한 안정감과 견고한 믿음을 뜻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느닷없이 맞게 된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오랜 기간 힘든 상황을 거듭하며 지내야만 했다. ‘해머링 맨’이 상징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없는 시간이 대부분 이었다. 실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새로운 일자리가 각방 받으며 창출되기도 했지만, 상당기간 혼란기를 겪어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여전히 예측하고 있다. 올해도 역시 한국은 ‘청년 취업의 무덤’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전체 실업자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8년째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매체를 통해 지난 60여 년간 사용해온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명칭이 변경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했을 것이다. ‘근로자의 날’ 명칭 변경 추진은 노동계에서 ‘근로’라는 개념이 사용자 종속적이라며 능동적인 개념의 노동절로 바꾸자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이 '노동절' 명칭 변경을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근로’(勤勞)는 일제 강점기 때 주로 사용된 용어란 것이다. 둘째,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에서 ‘부지런히’가 ‘국가 통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勞動)은 가치중립적이란 주장이다.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뜻이 일하는 사람을 더 넓게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해왔으나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근로자의 날로 불러왔다. 다가오는 5월 1일인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진정 땀 흘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편안한 쉼을 위한 날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필자는 이번 칼럼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며 준비하는 일인으로서 노동자 해머링 맨의 망치질하는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 브롭스키의 ‘해머링 맨’이 주는 망치질의 메시지는 저항이나 분노가 아닌,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반복되는 노동의 수단이자,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윤택한 삶을 위한 부지런한 몸부림의 모습인 것이다.


ⓒ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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