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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홍수경보②] 예금·부동산·주식 동시다발 버블…재정·통화정책 구사 '난감'


입력 2020.08.04 06:00 수정 2020.08.10 07:05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3053조 풀었더니 코스피 2300 넘보고, 부동산 2105조‧예금 108조 '역대최대'

정부 "이게 아닌데"…정책의도 역행 돈 흐름에 '부동산 잡고 소비 활성화' 유도

2019년 9월 10일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현금운송 관계자들이 추석자금 방출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2019년 9월 10일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현금운송 관계자들이 추석자금 방출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초유의 통화·재정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급 돈풀기에 나섰지만, 정작 시장에선 자금이 생산과 투자‧소비로 흐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에 몰리거나 은행 예금 같은 단기자금으로 흘러드는 등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유동성 홍수경보'가 울리는 상황이다.


'3000조원이 넘게 풀린 시중 유동성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막대한 돈의 흐름은 부동산과 주식, 예금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가장 큰 줄기는 역시 부동산이었다.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부동산 투자를 통해 얻는 기대수익이 다른 어떤 투자보다도 확실하다고 시장은 판단한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의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부동산금융은 1년 사이 168조3000억원 늘어난 2105조3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2100조 시대를 열었다. 부동산금융은 금융회사의 부동산 대출·보증, 기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입금, 부동산 펀드·자산유동화증권(ABS), 주택저당증권(MBS),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을 합친 것을 말한다.


불어난 부동산금융은 이미 국민총생산(GDP) 규모를 뛰어넘었다. 명목 GDP에서 부동산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상승해 2018년 101%로 처음 100%를 돌파한데 이어 올해 3월 말 기준 109.7%까지 뛰었다. 이미 지난해 토지자산 가치는 GDP의 4.6배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도 한몫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6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은행의 순수저축성예금 금리는 사상 최저치인 0.88%로 떨어지며 '0%대 예금금리' 시대에 진입했다. 1억원을 예금에 넣어봤자 연간 이자로 100만원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뭉칫돈이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택 매매 거래량은 62만87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1만4108건)에 비해 2배 수준으로 늘며 정부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이래 가장 많았다. 넘치는 유동성이 '부동산 공화국' '부동산 불패'를 더 견고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달 23일 경제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부동산 정책 문제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과잉 공급되고 최저금리 상황이 지속하면서 상승 국면을 막아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면피용 발언이지만, 시중의 막대한 유동성이 부동산을 들썩이게 했다는 데에는 정부든 시장이든 이견이 없다.


소비‧투자는 목마른데…부동산‧증시‧예금에 흘러든 유동성


증시에는 유동성 광풍이 몰아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 매수를 위한 대기 자금인 증권사의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29일 기준 47조4484억원으로 40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26일엔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27조원이었던 투자자예탁금은 올해 ▶1월 28조원 ▶2월 31조원 ▶3월 43조원 등으로 폭증했다.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 유망주인 SK바이오팜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는 31조원이 몰리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뛰어든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추락하는 주가를 떠받치는 유례없는 현상을 일으키는 등 저력을 확인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코넥스시장에 쏟아부은 돈은 39조6883억원에 달한다. 그사이 코로나19 여파로 3월 중순 15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31일 2249.37까지 뛰어올랐다.


금융권 관계자는 "큰손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아파트를 살 돈이 없는 2030세대에서 자산을 불리기 위해 주식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확산한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유동성이 풀리면서 부동산이나 주식에 뛰어들지 않고 '열심히 모으기만 하면 손해'라는 공감대가 작동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주식시장에 입문한 '주린이(주식‧어린이 합성어)'는 크게 늘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말 2936만개였던 국내 증시 활동계좌는 2020년 6월말 기준 3208만개로 무려 272만개가 늘었다. 증권가에 따르면 신규 활동계좌수의 절반 가량이 20대와 30대가 차지하고 있다. KB증권이 올해 1~5월 신규 비대면 주식계좌 개설자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20대가 31%, 30대가 26%였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동성 함정' 경종…"생산적 투자로 유인해야"


유동성 흐름의 또 다른 한줄기는 '고인 물'인 은행 예금에 잠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수신이 1858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08조7000억원 급증했다. 늘어난 은행 수신 108조7000억원 중 107조6000억원이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는 수시입출식 예금이다.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출을 크게 늘렸지만, 정작 소비나 투자에 나서기보다 예금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부양을 위해 유례없는 돈풀기 정책을 폈던 정부·중앙은행 입장에선 향후 통화·재정정책을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유동성을 생산적 투자로 이끌지 못하고 부동산이나 예금으로 자금이 계속 흘러들 경우, 경제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동성 함정을 피하는 동시에 '버블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예방책도 과제다.


이에 대통령과 경제정책 수장까지 나서서 유동성 함정에 경종을 울리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시중 유동성이 이미 3000조원을 넘어섰다"며 "정부는 넘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부분이 아니라, 건전하고 생산적인 투자에 유입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 경제 선순환을 위해서는 시중의 돈이 특정 자산으로 쏠리지 않고, 실물 부분으로 유입돼야 한다"면서 "정부가 생산적 투자처, 미래투자처를 만드는데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초저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있으나 설비투자나 소비 확대 등과 같은 실물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유도하지 못하고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있다"면서 "불어난 시중 자금이 실물경제로 유입되지 못하고 단기금융상품에만 쌓이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며 유동성 함정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을 유동성 출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연구원은 "최근 지속적인 저금리 상황에서 매우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을 뉴딜 사업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시중 자금의 투자에 도움이 되고 뉴딜 사업의 규모도 커져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중 자금은 단기성 투자자금이기 때문에 시장에 그냥 맡겨둬서는 뉴딜사업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공공부문이 초기 투자를 담당하는 한편 비용과 위험을 부담하고, 민간 자금에는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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