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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운운 인상하더니, 저질 저가담배나 피워라?"


입력 2015.02.25 08:33 수정 2015.02.25 08:46        하윤아 기자

정치권의 저가담배 논란에 흡연자들 분통 폭발

"전형적 전시행정", "결국 꼼수증세 시인" 비난

흡연자 권리찾기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개최한 ‘담뱃값 인상 저지와 서민증세 반대 규탄 집회’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담배소비세 인상과 개별소비세 신설 등 세금으로 흡연자를 쥐어짜는 내용의 풍자극을 연출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흡연자 권리찾기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개최한 ‘담뱃값 인상 저지와 서민증세 반대 규탄 집회’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담배소비세 인상과 개별소비세 신설 등 세금으로 흡연자를 쥐어짜는 내용의 풍자극을 연출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설 연휴 내내 논란을 빚었던 정치권의 ‘저가담배’ 도입 아이디어가 여전히 흡연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다수의 흡연자들이 쏜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 정부와 여당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23일 ‘데일리안’의 취재 결과, 상당수의 흡연자들이 저가담배 도입과 관련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대는 물론 30, 4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별 다양한 흡연 이력을 가진 이들은 정치권의 저가담배 도입 움직임에 대해 “그러려면 도대체 담뱃값은 왜 올렸나”라는 반응이다.

16년째 흡연 중인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담배를 끊게 하겠다고 담뱃세를 올려놓고 다시 싼 담배를 내놓는다고 하면 처음부터 담뱃세를 왜 올린 것인가”라며 “정책이 이런 식이라면 어떤 정책을 믿을 수 있겠나”라고 저가담배 도입 추진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14년째 흡연을 하고 있는 또 다른 30대 직장인 역시 “이럴거면 담뱃값은 왜 올렸나”라면서 “소비자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기껏 다들 반대한 담뱃값 인상을 해놓고 이제 와서 저가담배를 운운하다니, 전형적인 전시행정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국민 건강 위해 담뱃값 인상? 허울 좋은 명분이었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추진 전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던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면서 특히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는 정부의 설명이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했다고 분개했다.

군에 입대하면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는 20대 대학생 최모 씨는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한 근본적인 이유가 국민 건강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가담배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담배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담뱃세를 현행 그대로 징수하게 되면 원료의 가격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되면 자연스레 질이 나쁘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담배를 생산하게 돼 오히려 국민 건강을 해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20여년째 흡연 중인 40대 직장인 박모 씨도 “가격을 올려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해놓고 다시 저가담배를 피우게 해주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저가담배는 원가가 낮으니 기존 담배보다 더 질이 안 좋고 건강에 나쁠 수밖에 없다. 결국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증세였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머니 사정 각박한 2030 “저가담배 나오면 좋지만...”

‘호주머니를 털어간다’는 표현처럼 일반 서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4000원대 담뱃값 때문에 일부 흡연자들은 저가담배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애초에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한 것이 잘못’이라며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20대 초반부터 줄곧 담배를 펴 왔다는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수년간 2000원대 가격에 길들여져 있어서 현재 담뱃값이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흡연자 입장에서는 저가 담배가 나오면 좋다”며 “흡연자가 곧 담배 구매자이기에 싸게 살수록 좋다는 논리 하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데 정부가 흡연인구의 감소를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고 하지 않았나. 다시 저가담배를 내놓는 것은 ‘담배 피워라’하는 꼴이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결국 담뱃값 인상이 엉터리, 졸속 정책임을 반증하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상대적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 오모 씨는 “학생 입장에서 담뱃값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저가담배가 나온다면 나쁠 것은 없다”면서도 “그런데 처음 정부에서도 담뱃값을 올리면서 내걸었던 게 흡연율을 줄이겠다는 것 아닌가. 이를 생각한다면 저가담배는 참 웃기는 이야기”라며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오 씨는 최근 금연을 결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포기, 현재 5년째 흡연 중이다.

선거철 다가오니 서민 표심 두려운가 “전형적인 포퓰리즘 대안”

일부는 정치권에서 처음 저가담배를 언급한 것과 관련, ‘선거 직전 서민 표심잡기’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당장 오는 4월 보궐선거를 치르고 내년에는 총선도 예정된 상황이라 서둘러 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표심을 확보하고자 무턱대고 포퓰리즘성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로 28년째 흡연하고 있는 50대 자영업자 고모 씨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아니고 서민들의 표가 무서워서 내놓은 정책이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고 씨는 “담뱃값이 오르고 나서 길거리 화단에 꽂힌 장초들을 뽑아가는 사람도 있더라. 그렇게까지 담배를 피려는 서민들도 있다는 것인데 이제 와서 서민들의 불만이 높아 저가담배를 도입하겠다니 황당함을 넘어 기분이 나쁜 수준”이라고 분개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흡연을 시작해 10년째 끊지 못하고 있다는 30대 직장인 홍모 씨도 “표심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 같다”며 “국민건강 증진이라면서 세금 올려놓고 이제 와서 저가담배라니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쓴 소리를 날렸다.

이밖에 정경수 담배소비자협회 고문도 이날 오전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저가담배 도입 논의 움직임을 두고 “하나의 편법으로 포퓰리즘이다”고 정면 비판했다.

정 고문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기호품을 증세 목적을 가지고 인상해놓고 보니 여론이 들끓었다”며 “온통 난리가 나니까 갑작스럽게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식으로 내놓은 것이 저가담배인데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 ‘저가담배’ 비난 여론에 너도나도 발빼기

앞서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7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저가담배 판매 방안을 검토할 것을 당 정책위에 지시했다. 전통적 여당 지지층의 성난 마음을 달래고자 경로당을 방문한 터였다.

그러나 설 연휴 내내 저가담배 도입에 대한 반발 여론이 들끓자 새누리당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당장 추진할 계획은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당 내부에서조차 저가담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난감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여야가 저가담배 공세를 펴는 것은 정책당국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건강을 명분으로 담뱃값 인상을 한 뒤 저가담배를 얘기하면 꼼수증세라는 논란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중진인 이정현 최고위원과 정우택 의원도 각각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가담배가 거론될 시점과 시기는 아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은 국민의 불만만 키우는 셈”이라며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당에서 촉발된 저가담배 논란에 대해 야당은 곧바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 여당 때리기에 가세했다.

저가담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감지한 새정치민주연합은 특히 지난 18일 전병헌 최고위원이 저가의 봉초담배를 활성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 “당 차원에서 검토한 것은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는 모양새다.

전 최고위원은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봉초담배에 한해 세금을 일부 감면해 상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한다면 담배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늘어나고 저소득층이 저렴하게 담배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담뱃세가 다양한 항목의 세금으로 이루어져있어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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