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에게 배우는 논리의 모든것

입력 2006.10.18 09:23  수정

[화제의 책] 옌스 죈트겐의 <생각 발전소>

나는 왜 얘기하다 삼천포로 빠질까?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네비게이터라도 있는 걸까? 인터넷게시판 논쟁이나 TV토론을 보면 왜 혈압이 오를까? 꽉 막힌 사람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은 없는 걸까?

글쓰기와 논리적 대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디지털 시대, 철학은 꼭 갖춰야 할 기본이다. 이 책은 토론과 설득에 필요한 논증의 기초지식 20가지를 철학사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대입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철학에 관심있는 일반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논리의 시대
인터넷이 일반화된 이후, 글쓰기 능력은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거의 일상화된 메일 주고받기와 개인 블로그 등 1인 매체의 등장과 함께 개성있는 글쓰기로 타인을 설득할 기회도 많아졌다. 2

1세기 디지털 시대는 곧 ‘논리의 르네상스 시대’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제 ‘논리적으로 말하고 쓰기’는 자신의 경쟁력, 문화지수와 직결되는 생존전략이 된 셈이다. 그러므로 생각의 기술, 즉 철학은 더 이상 먹고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불청객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나 TV토론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소통방식을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가당착에 빠져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날선 풍자 대신 인신공격만이 난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쪽에선 ‘논리적 사고력’과 ‘생각의 기술’이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 생각은 괄시받고 감각만 대접받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 극단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수사학>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학의 지식센터 소장인 저자는 이 책에서 논술 ? 토론 ? 교양의 심화를 위한 논증의 기초 지식 스무 가지를 철학사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의 21세기 버전으로 읽혀지길 바란다.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수사학》은 스무 살 청년 아리스토텔레스가 막 입학한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논쟁이나 개념정의를 할 때 다른 학생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작성한 일종의 ‘생각 기술 요약 노트’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에 자신이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이 책을 자기 수업의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에 수사학은 단순한 웅변술이라기보다 훨씬 넓은 전인교육의 기본 토대 역할을 맡아 했고, 때문에 중세시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발달했다. 서양 학문의 기초였던 셈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은 현대인이 읽기엔 문체나 서술 면에서 불친절하고, 사용된 예들도 너무 낯설다. 그리하여 저자는 구체적이고 시의성 있는 소재들을 이용해 21세기 버전 《수사학》인 《생각발전소》를 쓰기에 이른다.

《생각발전소》에 등장하는 예들은 다른 철학서들과 달리 뜬구름 잡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 일상과 직결된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부부싸움 중에 오가는 언쟁이나 유명 과학자들 사이의 기싸움, 영화감독의 제작 노트, 신문기사, 정치인들의 현란한 말장난, 법정 대화, 광신도와 시민 사이의 대화 등 친근하고 생생한 예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가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고정 필자라는 사실은 그의 철학적 사유가 현실감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또한 간간이 등장하는 익살스런 일러스트는 따분하고 하품날 수 있는 철학서를 끝까지 읽게 하는 당의정 구실을 톡톡히 한다.

생각 구구단을 외워보자
저자는 우리가 근육을 단련시키듯, 생각하는 능력 또한 꾸준히 단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우리의 무지와 비논리를 악용하려 드는 자들에게 미혹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생각의 근육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생각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철학자들의 예를 통해 스무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즉,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할 것, 논리적인 규칙을 어기지 말 것, 생각의 실험을 시도할 것, 정확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기를 것, 증거를 제시할 것, 원인을 찾는 일에 부지런할 것, 권위에 의존하지 말 것, 그릇된 맥락에 빠지지 말 것, 인용과 비유와 대조 그리고 패러디를 적절히 사용할 것, 조합의 방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 상대의 논점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예민하게 감지할 것, 서두르지 말고 생각의 결실을 기다릴 것, 동일한 사태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볼 것, 상투적인 관점과는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열거해볼 것, 새로운 본보기를 통하여 기존의 정의에서 불충분한 점을 찾아낼 것, 기존의 용어나 개념을 새롭게 연결시켜볼 것, 사태를 뒤집어서 반대로 생각해볼 것 등이다.

이상의 기술들은 일종의 ‘생각 구구단’이라 할 수 있다. 구구단을 외우고 있으면 계산이 훨씬 간단해지듯, ‘생각 구구단’을 알고 있으면 논리를 가다듬고 생각을 컨트롤하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이다.

논리적 언어로 무장하라
일찍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언어는 운전사이며, 우리는 언어가 이끄는 곳으로 간다”. 즉 언어를 창조하는 자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의 비논리와 과잉수사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지적한다.

저자 또한 이 책에서 갖가지 사례들을 바탕으로 철학과 논리의 기본이 되는 언어의 문제를 여러 번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은유와 정의 그리고 질문을 통해 ‘세계관을 창조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언어’의 힘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는 ‘반전’ 기술을 이야기하는 장에서 록기타리스트 프랭크 재파와 막무가내 토크쇼 진행자 사이의 대화를 인용하고 있다. (본문 229쪽-230쪽 참조) 이 예를 읽으며 지난 2000년에 있었던 이문열과 진중권의 일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홍위병’에 빗대어 쓴 작가 이문열의 칼럼에 논객 진중권이 <이문열과 젖소부인>이라는 글로 반박했던 일화 말이다. 당시 진중권은 이문열의 논리전개와 수사법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를 비판했다.

단지 문맥을 조금 달리 했을 뿐이지만 이문열의 논리적 허점과 과잉수사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는 조목조목 상대의 논지를 논파하기보다는 상대의 논리와 수사를 그대로 들여와 무장해제시키는 방식이다. 저자는 ‘반전’이라는 장을 따로 두어 이 기술의 통쾌함을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패러디’를 설명하는 장에서 작가 리히텐베르크가 관상학의 창시자인 라바터를 비꼬는 예를 들며, 날카로운 텍스트 비평, 절묘한 풍자, 글쓴이의 논리와 레토릭으로 공박하는 세련된 되받아치기 기술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역설한다. 벤야민의 말마따나 “때로는 진지한 숙고보다 횡경막의 발작이 우리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는 법”이니 말이다.

맛있는 20가지 생각 캡슐
사실 ‘인용’은 이 책에서 독립된 장으로 다뤄지는 중요한 기술이다. 저자는 그 예로 이미 국내에서도 유명한 독일의 문학비평가 라니츠키와 작가 마르틴 발저 사이의 필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본문 37쪽-41쪽 참조) 맥락을 벗어난 왜곡된 인용, 즉 컨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 위주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15세기에 루터가 자신의 라이벌에게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말을 제멋대로 뜯어내 거기에 자신의 독을 바르고는 앞뒤 내용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쓰다니!” (본문 37쪽 참조) 얼마 전 가수 조영남이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때도 당사자는 ‘맥락을 무시한 인용’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자신을 변호한 바 있다.

또한 저자가 견유학파 철학자들의 일화와 68혁명 당시 ‘독일 사회주의 대학생 연맹’ 소속 학생들의 법정 퍼포먼스를 비교하며,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드는 ‘행위예술적 반항’의 세계를 이야기한 제1장(열정과 냉소)도 흥미진진하다.

이 밖에도 《빠빠라기》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그리고 아도르노를 눈물짓게 한 이른바 ‘젖가슴 테러’의 전말은 무엇인지, 실업자의 기준이 왜 중요한지, 괴테가 바이마르에서 정치를 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계기가 무엇인지, 화가 베이컨의 방이 고고학 발굴팀에 의해 통째로 보존 조치된 경위가 무엇인지, 니체의 영원회귀설이 논리적으로 왜 불가능한지, 루이스 캐럴과 보르헤스와 움베르토 에코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비밀은 무엇인지 등, 이 책은 스무 가지 생각 기술과 더불어 철학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사건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아울러 책의 말미에 감수자가 선정한 추천도서 목록을 실어, 청소년이나 철학 입문자들이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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