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단장이 의욕적으로 준비하던 발레 '나비부인'이 왜색 논란으로 취소됐다. 사진은 지난 2일 '나비부인' 공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월에 개봉된 영화 ‘조선미녀삼총사’는 왜색 논란을 일으킨 포스터를 전격 교체했다. 논란의 핵심은 세 여주인공의 복장이 일본만화의 여성패션스타일을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무사 복장 민소매, 핫팬츠를 비롯해 스모키메이크업, 머리 모양 등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영화사측은 영화 포스터를 교체했다. 지난 4월, 크레용팝은 왜색 논란에 다시 올랐다. KBS는 “최근 진행된 가요 심의 결과 크레용팝의 ‘어이’가 일본식 표현의 사용으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래 가사 가운데 ‘뻔쩍뻔쩍’의 일본식 표현인 ‘삐까뻔쩍’이 문제였다. 이 부분을 수정해 재심의를 받았다.
같은 4월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의 포스터에 욱일승천기가 등장했고, '고질라' 포스터가 LA 한인타운은 물론 미국 최대 영화사이트 IMDB에도 올라 논란이 되었다. 국내 홍보사 측은 공식사과하며 포스터를 삭제했다. 할리우드는 자포니즘에 경도된 것도 사실이다. 6월, 할리우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일본 게이샤로 분장한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때 인터넷에서는 국내 팬들의 거부감이 일었다. 불과 얼마전인 5월말, 그녀는 한국의 옥수수차를 즐겨 마신다고 밝힌 바 있고, 국내 방송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일었다.
최근 강수진 예술김독의 발레‘나비부인’의 공연이 취소되었다. 강수진 단장 겸 예술감독의 국립발레단이 내년 3월에 야심차게 무대에 올리겠다던 발레 ‘나비부인’ 공연이었다. 발표 3주 만의 취소였다. 강수진 감독이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이 작품이 ‘지젤’로 교체된 것은 작품성 여부와 함께 왜색 논란이 이유였다. 국립발레단이 왜색이 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왜색 논란이 여러 차례 이는 가운데 이에 대해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만화 '원피스'(ONE PIECE) 특별전시회였다. 용산 전쟁기념관이 '욱일기 논란'으로 일본 만화 '원피스' 전시회의 대관을 개막 사흘 전 전격 취소한 것에 대해 법원은 전시회가 계약대로 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전시회 주최 측인 웨이즈비가 전쟁기념사업회를 상대로 낸 대관 중단통보 효력정지 및 전시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18년간 연재된 장편만화의 극소수 장면에 욱일기와 비슷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해당 만화가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만화라고 볼 수 없다"며 "설령 욱일기를 표현한 것이라도 만화 주인공과 대적하는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사용돼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왜색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행사나 공연을 취소하는 행위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 당장에 여론을 의식해서 곤란한 상황을 피하려다가 오히려 더 큰 힘든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은 국민들이나 시민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점들을 적절하게 조율해야 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논란이 되는 몇몇 작품들을 대중적으로 차단한다고 해서 명문과 가치를 충족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런 왜색 논란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상황처럼 보일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이미지를 통해 왜색 논란을 지적하고, 상대적인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부각하는 점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문화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본문화콘텐츠들의 상황을 애써 가리는 것이다. 출판계만 해도 그렇다.
교보문고의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공포 및 추리소설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각국 출판물 판매 비중에서 1위는 일본 소설이었다. 반면 국내 소설 비중은 5.09%였다. 10년 전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리 소설의 비중은 2003년 13.03%였는데, 일본의 소설 비중은 2003년에는 6.0%였고 2013년에는 43.96%였다. 2013년 히가시노 게이고, 미카미 엔, 우타노 쇼고, 혼다 테쓰야, 미쓰다 신조 등 일본 작가 작품이 전체 베스트셀러 소설 20위권 가운데 무려 10권이 들어 있었다.
한류를 많이 언급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도 일본 원작은 여전하다. '윤아가 할 것인가, 심은경이 할 것인가. 아니면 천우희, 이하나, 하연수가 할 것인가.' 드라마 '칸타빌레 로맨스'의 여주인공 캐스팅 기사들이 매일 쏟아졌다. 이런 노이즈 마케팅은 일본에서 만화와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성공한 일본의 '노다메 칸타빌레' 의 성공 후광효과에 기대고 있었다.
요컨대, 원론적으로 몇몇 장면이나 설정을 통한 왜색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문화 콘텐츠보다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일본의 극우화가 만들어낸 왜색 논란은 일본 자체에 원인이 있지만, 보편적인 문화적 교류나 공유에 대해서 지나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경쟁력을 위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경계와는 별도로 보편적인 공감에 대한 주목은 결국 한류의 경쟁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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