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실정을 비판해 사회 이슈가 됐던 ‘환생경제’의 작가 이대영은 소탈하지만 날카로운 ‘붓의 힘’을 아는 작가이다.
사회와 가족을 향한 그의 시선은 집단에 함몰돼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혹은 미처 인식치 못한) 현실의 문제를 포착하고 실감나는 극으로 재창조해 다시금 사회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까지 관심두어온 가족과 사회라는 주제를 풍부한 질감과 유려한 표현으로 변주하면서 능수능란하게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는 이 씨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대영 희곡집(도서출판 예니)’은 희곡도 소설 이상의 감칠맛을 지닌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동시에 ‘읽는다’는 행위가 지닌 유희를 알게 해준다.
‘환생경제’를 비롯해 ‘바다를 향하는 사람들’ ‘박무근 일가’ ‘개코도깨비 마을’ 등 총 4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이번 희곡집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슴 저린 인식과 통절하고도 현란한 풍자가 살아 있다.
가족과 사회라는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작가 이대영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무기력하고 자격상실의 존재로 전락한 원인에는 극악해지고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를 방기한 권력집단이 있음을 지적하며 아버지의 무게와 중요성을 역설한다.
기존의 희곡들이 사회에 관심을 표명하는데 그치거나 소극적이었던 반면 이 씨의 작품은 한 걸음 성큼 다가가 적극적인 자세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데 주저하지 않는 투사적 풍모도 풍긴다.
그러나 이 씨는 투사의 맹목성을 영리하게 피해간다. 냉정성을 유지한 채 ‘적극성’이 부를 수 있는 해악-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무리하게 비약하는 오류-를 비껴가면서 다양한 극적 장치를 통해 희곡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
극형식에 있어 모험을 감행해 추리극을 도입하거나 고대 그리스 비극처럼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삽입하는 등 참신한 극 구조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아울러 욕설 등 비속적 표현은 물론 사투리, 풍자, 해학, 패러디 심지어 흘러간 유행가 가사까지 끌어들이는 대담함으로 일반 독자들이 희곡에 가지는 거리감을 단숨에 없애고 개성적인 인물 캐릭터, 독특한 극 구성 등으로 사실적이며 매우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연극배우이자 서울문화재단 대표인 유인촌씨가 “가장 연극적이며, 그래서 문학적인 작가 이대영의 희곡은 대사의 맛깔이 충분히 살아있다”고 평가한 것처럼 권력자를 조롱하고 매다 꽂는 이 씨의 말재간은 또 다른 묘미.
특히 독자들이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불신과 불만을 토로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유도하면서 독자와 작가가 일체감과 심리적 충족을 느끼게 만드는 흡입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즉, 작품을 통해 우악스럽지만 정겨운 시장통처럼 모두가 어우러지게 하는 것.
여기에 그의 작품 전면에 녹아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내일에의 긍정은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복원하고 삶의 고통을 말함으로써 희망을 기대케 한다.
아버지의 광기에 시들어가는 가족을 그린 ‘바다를 향하는 사람들’이나 시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남편의 자살로 벌어진 한 가족의 비극적 상황을 담은 ‘박무근 일가’는 가족의 붕괴를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정의 평화와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며 파국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제왕 권력의 변천과 폭압을 추적한 ‘개코도깨비 마을의 신화’과 노무현 대통령의 무능력함을 풍자해 화제가 됐던 ‘환생경제’ 역시 괴로운 현실을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희망의 푸른빛으로 향한다.
그래서 이대영의 작품은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더욱 잔인하고 더욱 처절하게 파괴하는 문화 경향과 다른 이런 미덕으로 찜찜한 뒤끝 없이 개운하고 칼칼한 재미를 안겨준다.
지나치게 말랑한 소설과 딱딱하고 고상한 논픽션이 부담스러웠다면 딱딱하지 않되 작가의 깊이가 느껴지는 ‘이대영 희곡집’은 부드럽게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약력△
1961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연극학과 졸업.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박무근 일가’ ‘개코도깨비 마을의 신화’ 등의 희곡과 SF연재소설 ‘리미노이드’, 단막극 ‘한 소년’ 등 발표.
2006년 현재 극단 ‘그리고’ 대표 겸 상임연출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이사 아태극예술협회(AP-ITI) 대외협력국장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사무국장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자유주의연대 문화위원장
△주요작품△
희곡 ‘바다를 향하는 사람들’ ‘개코도깨비 마을의 신화’ ‘박무근 일가’ ‘환생경제’ SF연재소설 ‘리미노이드’, MBC 베스트셀러극장 ‘한 소년’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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