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찾아줘!" 의원 보좌관들도 감정노동자

조소영 기자

입력 2013.09.19 10:25  수정 2013.09.23 18:22

취직 문제부터 가출 송아지까지 온갖 민원인 상대해야

대치파·반수용파·완전수용파 등 유형 달라도 마음은 같아

‘국민들의 민원에도 웃으며 귀 기울이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최근 국회는 ‘스마일 국회’ 캠페인 중이다. 국회를 찾는 민원인 및 방문객들에게 친절한 국회가 되자는 목적이다. 위에서 언급된 문장은 ‘스마일 국회’ 중 ‘국’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국회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솔선해야할 규범 중 하나로 꼽힌다. 각 의원실에서 일하는 보좌진들 또한 이 ‘국’ 규범을 지키며 지낸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의원 본인을 통한 공식적 창구가 아닌 보좌진이 담당하는 비공식적 창구로는 해결해주기 난처한 민원이 다수 들어온다. 특히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전화 속에는 “아들 취직을 시켜달라”, “입원실을 4인실 또는 6인실로 바꿔달라”는 건 일반적이고,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일을 못한다고 나무랄 때도 있다. 술에 취한 민원인도 많다.

이중 취직문제는 보좌진에게 ‘민원 단골메뉴’다. 보통 보좌진들은 이 민원을 받으면 최종결과가 언제쯤 나오는지, 몇 명을 선발하는지 정도만 알아보는 선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이를 알아보려 의원실에서 회사와 같은 곳에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압박이 될 수 있어 가장 익숙하면서도 난제인 민원으로 분류된다.

지난 5월 본회의장에서 발생한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의 취업청탁 논란 또한 이와 맞닿아있다. 김 의원은 당시 보좌진이 보낸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는데 핸드폰 문자내용은 해당 보좌진이 김 의원의 지역구에 거주하는 인사의 아들 채용 건을 상의하는 내용이었다. 한 보좌관은 이와 관련, “지역구 민원이라면 아예 모른 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병원 입원실을 1인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꿔달란 민원도 꽤 많은 편이다. 지역구가 농촌이거나 고령의 주민이 많은 곳일 경우, 해당 민원은 더 잦다. 몸이 아파 시골에서 서울과 같은 넓은 지역으로 올라와 병원 절차를 밟다보니 1인실을 사용하게는 됐는데 비용은 만만찮고, 병실을 바꾸긴 어렵게 되니 마지막엔 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황당한 민원 중 하나로는 “우리집 소가 도망갔는데 잡아달라”는 것이 있다. 한 할머니가 집에 있던 소가 도망을 가니 잡을 힘이 없어 119, 112에 전화를 걸었는데 마음이 급하다보니 서랍에 뒀던 의원 명함들을 꺼내들어 의원실에 전화를 건 것이다. 이외에 “나 지역민인데”라면서 자신이 주민으로서 하고 싶은 말들을 횡설수설 혹은 욕설을 섞어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사당 전경.ⓒ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대치파·반수용파·완전수용파…당신의 스타일은?

이렇게 비공식적 창구로 전해지는 민원은 지역민의 생생한 목소리라 덮어놓고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이른바 ‘악성민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며 의원실 업무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좌진들의 스타일은 3가지 정도로 나뉜다.

가장 극소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스타일이다. 일명 ‘대치파’다. 화를 내면 내는 대로, 욕설을 퍼부으면 퍼붓는 대로 같이 밀어붙이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과 일하는 A비서는 한 민원인이 욕설을 퍼부으며 업무를 마비시켰던 민원 사례를 언급하며 “똑같이 대해준다”면서 “강하게 대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스타일의 반대편에는 ‘완전수용 스타일’이 있다. 민주당의 B보좌관은 “민원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들은 10%도 안 될 것이다. 특히 5년 이상 일을 한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면서 “국회까지 의원실을 찾아오는 분들은 정말 절박해 마지막으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든)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도 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실은 이 스타일을 공개적으로 취하고 있다. 재선인 김 의원은 초선 때부터 자신의 지역구인 양천구민들을 위해 ‘민원의 날’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민원의 날’은 한 달에 두 번 지역구 사무실을 완전 개방해 각종 민원들을 접수한 뒤 민원이 해결됐든 혹은 해결되지 못했든 그 결과를 민원인들에게 알려준다.

보통의 경우에는 ‘반(半)수용 스타일’을 취한다. 흘려듣거나 가볍게 알아보는 정도의 선 등에서 타협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두 스타일의 중간단계다.

무소속의 한 초선 의원실에 있는 C비서는 “처음에는 ‘예’라고 대답만 해준다”면서 “자꾸 전화를 걸면 알고 있는 선에서 좀 더 알아본 뒤 ‘잘못 아셨다’고 답을 해준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재선 의원과 일하는 D비서는 “어느 정도 받아주다가 수화기를 옆에다 내려놓는다”며 “이후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다가 전화를 끊어버린다”고 나름의 노하우를 전했다.

D비서는 또 “주변에는 더러 화를 내는 분들도 있는데 화를 낸 뒤 다시 전화가 오면 ‘우리 인턴이 잘 몰라서 그런다’고 둘러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반수용 스타일’이다.

'마지막 믿을 곳' 국회인 것 알아…"공감해주는 마음 중요해"

다만 민원에 대한 스타일은 각자 달라도 민원인의 마지막 창구가 국회라는 것에는 모두 동감하는 분위기다. ‘완전수용파’인 B보좌관은 물론 모든 ‘파’가 민원인에 대해 이 같은 전제를 두고 있다. ‘반수용파’인 C비서는 “여기저기 다 민원을 넣어도 해결이 되지 않다보니 최종적으로 국회의원실에 오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좌진계의 베테랑인 윤재관 전 민보협(민주당보좌진협의회) 회장의 경우, 민원인과의 관계를 잘 구축한 사례를 갖고 있다. 그는 10년 동안 보험회사와 싸우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국회를 찾아온 민원인을 도왔고, 민원인은 이후 윤 전 회장의 노력이 고마워 그가 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자 자발적으로 공천위원들에게 추천 편지를 썼다.

윤 전 회장은 이때 “정치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마음만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보좌진과 민원인 간 바람직한 관계 정립으로 진정한 ‘스마일 국회’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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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기자 (cho1175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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