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 ‘정신적 지주’ 등 온갖 수식어를 꿰차고 있던 이종범(42·KIA)이 지난달 31일 갑작스레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 딱 스무 해째 충격적인 은퇴를 선언한 것.
팬들은 물론 KIA 구단 전체가 예상치 못한 파장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이종범은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타격코치 등 코칭스태프와의 면담 끝에 개막전 엔트리 제외 통보를 받은 뒤 용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범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일찍 얘기해주지 않고 고된 동계훈련까지 받게 한 구단 측의 미숙한 운영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선수층이 얇아진 상황을 감안했을 때 예상치 못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종범이라는 커다란 존재가 떠난 가운데 관심은 ‘누가 이종범 후계자가 될 것인가’에도 쏠린다. 전신 해태 시절 포함 KIA는 이종범 이후 야구판을 뒤흔드는 전국구 스타급 야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종범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타이거즈를 대표할 초대형 타자 발굴이 시급하다.
훌쩍 높아진 눈높이, 웬만한 스타로는 어림없다
통산 11번째 우승에 빛나는 타이거즈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타자로 평가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종범은 잘하는 수준을 넘어 리그를 완전히 지배했던 타자다. 기나긴 현역생활로 누적기록만 높은 선수가 아닌, 한국시리즈-국제경기 등 큰 경기에 유달리 강한 승부사이기도 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천재'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종범은 모든 부문에서 고르게 뛰어났다.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갖춘 1번 타자면서도 어지간한 거포 뺨치는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 정상급 수비력까지 갖춘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였다.
전성기의 이종범은 '야구의 신'으로 불렸다.
대놓고 도루를 시도할 정도로 숱하게 뛰고 달렸음에도 성공률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높았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센스 있는 주루플레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승엽과 홈런경쟁이 붙을 만큼 무시무시한 장타력까지 보유했던 타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수비의 핵’인 유격수 포지션을 지키면서 이런 성적을 올렸다는 점이다.
그만큼 그의 후계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KIA 내에서 그나마 후보를 찾자면 이용규(외야수)-김선빈(유격수)-안치홍(2루수)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수준급 수비와 빠른 발, 그리고 만만치 않은 공격력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근성 또한 끈끈해 기대할 만한 후보다.
국내 최고 톱타자로 자리매김한 이용규는 이종범 이후 끊겼던 ‘타이거즈표’ 1번 타자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타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빠른 배트 스피드와 남다른 타격 감각을 바탕으로 많은 숫자의 안타를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설프게 볼넷을 골라 걸어 나가기보다 안 좋은 공도 시야에 들어오면 과감하게 쳐내는 스타일은 이종범과 닮았다. 누상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배터리를 괴롭힌다. 팬들은 예전부터 그에게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지만 타격-도루-주루센스 등 어느 것 하나에서도 리그 최강으로 불릴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무등 메시' 김선빈은 이른바 '꼬마 이종범'으로 통한다. 포지션도 한창 때의 이종범과 같은 유격수인 데다 매우 공격적이고 다이내믹한 플레이를 즐긴다. 작은 체구 탓에 입단 당시부터 저평가 됐지만, 뛰어난 야구센스와 피나는 노력을 바탕으로 어느새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김선빈은 4년차에 접어들던 지난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기량이 만개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시즌 초반 타격-최다안타-타점-도루-출루율까지 무려 5개 부문에서 선두를 질주하기도 했다. 부상과 체력 문제로 최고의 페이스를 이어가진 못했지만, 미래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심기엔 충분했다.
다만, 프로야구 최단신(164cm)이라는 약점이 있다. 신체 조건이 좋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한 발 이상 뛰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은 체력 등 여러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기대치에서 ‘포스트 이종범’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는 역시 안치홍이다.
1990년생의 어린 나이인 그는 프로에 데뷔하기 무섭게 주전 2루수를 차지하며 일취월장하고 있다. 안치홍은 데뷔 첫해 두 자릿수 홈런(14개)을 때려낸 것을 비롯해 올스타전 최연소 홈런(19세 23일)을 터뜨리며 MVP에 선정되는 쾌거도 이뤘다. 한국시리즈에서도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큰 경기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스타성을 과시했다.
3년차였던 지난 시즌 안치홍은 또 한 차례 도약에 성공한다. 데뷔 첫 3할타율(0.315)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한 것. 불과 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올스타전 MVP-소속팀 추락-골든글러브 등을 고루 겪었다는 것은 안치홍 개인 입장에서는 굉장한 소득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종범 신인 시절에 한참 모자란다. 하지만 이종범은 프로입단 당시 대졸이었다. 안치홍이 대학에 입학했다면 이제 4학년이다. 올해 다시 도약에 성공한다면 다음 시즌부터는 이종범의 신인시절과 정말로 비교가 가능한 활약을 펼쳐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졸 특성상 부상 없이 꾸준히 뛰기만 한다면 누적기록에서 이종범보다 유리한 부분도 많다. 이용규-김선빈과 비교해 장타력에서 앞서고 있다는 것도 이종범 후계자로 적합한 이유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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