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도 경기의 일부?’ 시대착오적 발상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9.11.22 18:56  수정

프랑스 앙리, ‘신의 손’ 파울 논란

다시 불거진 비디오판독 도입 여부

스포츠에서 흔히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한다.

판정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심판이 기계가 아니다보니 급변하는 경기흐름 속에서 때로는 상황을 놓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직 승리 하나만을 보고 90분간 혼을 불사른 선수들에게 그것도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심판의 결정적 오심 하나로 승부의 명암이 엇갈린다고 했을 때도 과연 오심을 심판판정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승복하는 것만이 옳은 결정일까.

티에리 앙리(프랑스)의 ´신의 손´ 논란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19일(한국시간) 아일랜드와의 남아공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 동점골 상황에서 어시스트했던 앙리는 패스직전 문전에서 핸드볼 파울을 저질렀다.

리플레이 화면에서도 파울 장면은 카메라에 정확히 포착됐지만, 스웨덴 출신 마틴 한손 심판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1,2차전 득점합계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양 팀은 갈라스의 골로 프랑스 승리가 확정되며 극적인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본선행의 주인공은 가려졌지만, 경기 후에도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핸드볼 파울도 문제였지만 그 이전에 이미 앙리와 일부 프랑스 선수의 위치도 카메라 각도상 오프사이드에 있는 것으로 잡혔다. 아일랜드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 직후 당사자 앙리는 "이런 식으로 월드컵에 가고 싶지 않았다"며 핸드볼 사실을 인정했고, 프랑스 언론에서도 ‘개운치 못한 승리’라고 촌평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론이 악화되자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국제축구연맹은(FIFA)은 일각에서 재경기 여론이 제기자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 결과를 되돌릴 수 없으며 재경기도 없다. 규정에도 명시됐듯 경기에서는 주심의 결정에 따라야 하며 이것이 최종 결정"이라며 공식입장을 밝혔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 두 눈 뜨고 지켜본 핸드볼 파울에 대해 연맹만이 심판의 재량을 내세우며 눈과 귀를 닫아건 셈이다.

앙리의 ´신의 손´ 파울 논란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심, 더 이상 경기의 일부가 아니다

앙리의 핸드볼 논란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강타했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을 연상케 한다.

현재 아르헨티나 사령탑을 맡고 있는 마라도나 감독은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공중볼 경합 중 핸드볼 파울로 득점에 성공하며 논란을 일으켰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이후 ´신의 손´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녀야했다.

앙리의 ´신의 손´은 마라도나 사건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논란의 핵심은 앙리가 과연 고의적으로 공을 건드릴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와 핸드볼에 대한 판정권을 온전히 주심의 재량권만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사실 핸드볼 파울은 축구에서 심심찮게 벌어진다. 여기서 선수가 직접 ´손으로 공을 터치한 것´과 ´공이 손에 와서 맞은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상대 선수가 페널티킥을 유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공을 상대 선수 팔에 맞추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여기서 수비수의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핸드볼 파울은 인정되지 않는다.

앙리의 경우는 어떨까. 핸드볼 상황에서 공은 트래핑하던 앙리의 왼발을 맞고 튀어 올라 다시 왼팔에 닿고 오른발로 연결됐다. 앙리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실상 ´연속동작´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장면이다. 따라서 핸드볼 파울이 울렸어도 어디까지나 트래핑을 잘못한 본인의 책임일 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판은 앙리의 핸드볼을 인정하지 않았다. 앙리의 핸드볼을 보지 못했건, 아니면 보고서도 고의적인 핸드볼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논란은 그치지 않는다. 이 장면 하나로 사실상 양 팀의 운명이 엇갈리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골을 만들어낸 것은 앙리의 ´신의 손´이지만, 결국 본질은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경기의 운명이 뒤바뀐 셈이다.

심판에게 허용된 권한이나 단지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해서 이런 식의 상황이 묵과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축구팬들은 고개를 흔들고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2006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심판의 오프사이드 판정 하나로 희비가 엇갈린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도 아일랜드의 신세가 남의 일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서 축구 약소국들이 언제든 똑같은 상황을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나날이 미디어와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고 눈높이가 높이지는 현대스포츠의 수준을 감안할 때, 매년 늘어나는 오심과 편파판정 논란을 단지 경기의 일부라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심판의 임무는 경기진행을 원활하게 돕는데 있는 것이지, 특히 이번 논란처럼 심판의 판정 하나로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수준이 되면 그것은 이미 재량권을 훨씬 넘어버린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 오심이나 판정 논란에 따라 심판을 처벌하고 벌금을 매기는 것도 피해자들에게 위안이 될 수는 없다.

이번 핸드볼 논란처럼 경기흐름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 상황들, 예를 들어 핸드볼 파울이나 페널티킥을 유도하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 레드카드 판정 등 민감한 상황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고, 감독이 경기당 1~2회에 한해 심판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아일랜드냐 한국이냐를 떠나서 심판의 잘못된 판정이나 도를 넘어선 월권으로 정당한 권리를 박탈 당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매번 판정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던 한국축구나 K-리그도 이번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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