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수 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패자’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09.10.24 21:28  수정

[한국시리즈 7차전]우승 문턱서 패퇴

박정권-박재상 등 스타로 발돋움

지난 2년간 한국야구를 제패한 SK 와이번스가 명승부 희생양이 되며 한국시리즈 3연패에 실패했다.

SK는 24일 잠실구장서 계속된 ‘2009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9회말 구원투수로 등판한 채병용이 나지완에게 극적인 끝내기 홈런포를 맞아 KIA에 5-6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시리즈 내내 명승부를 펼치며 운명의 7차전까지 끌고 간 두 팀은 마지막 외나무다리 승부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를 펼쳤다.

SK는 4회 박정권의 선제 투런홈런을 시작으로 6회까지 차곡차곡 점수를 쌓았지만, 믿었던 불펜이 다시 한 번 무너지며 쓰라린 패배를 맛봐야했다.

에이스 김광현과 전병두가 빠진 가운데 투수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SK 불펜진은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누적된 피로 탓에 매 경기 힘겨운 사투를 펼쳐야했다.

특히,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는 채병용은 4차전에서 5.2이닝(1실점 선발승)을 던지고도 3일 휴식 후 등판을 감행하는 투혼을 불살랐지만, 마지막 순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플레이오프 MVP였던 박정권 역시 한국시리즈에서도 타격감을 이어가며 ‘가을 사나이’ ‘박정권의 재발견’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아름다운 패자로 기억됐다.

김성근 감독은 악재 속에서도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까지 이끌며 ´야신´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SK, 지난 3년간 앞만 보고 달렸다

SK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8개 구단 감독들이 모두 모인 미디어데이에서 “다른 팀들의 전력이 향상돼 전체적으로 평준화를 이뤘다. 80승 정도 거둘 것이라 예상하며 목표는 우승”이라고 밝혔다.

‘야신’의 예언은 적중했다. SK는 시즌 막판 19연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80승 6무 47패(승률 0.602)를 기록하며 목표승수에 도달했다.

하지만 페넌트레이스 1위는 SK 몫이 아니었다. 김상현이라는 신데렐라의 등장과 구톰슨-로페즈의 막강 원투펀치를 앞세운 KIA가 6월부터 치고 나오더니 결국 1경기 차로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플레이오프서부터 시작해야할 김성근 감독은 고민에 휩싸였다.

전력의 절반이라고 평가받는 박경완은 일찌감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태였고, 원투펀치로 활약한 김광현과 송은범, 그리고 19연승 기간 마무리로 활약한 전병두가 부상으로 인해 포스트시즌을 함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차포 뗀 상황에서 플레이오프에 임한 SK는 복수의 칼을 갈아온 두산과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고, 2패 뒤 3연승이라는 기적을 연출하며 곰의 겨울잠을 앞당겼다.

그러나 매 경기 치열한 접전으로 이어지다 보니 불펜투수들의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고, 한국시리즈가 시작되자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 선수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펼쳤고, 우승 문턱까지 가는 등 지난 2년간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박정권과 박재상은 이제 ‘가장 저평가된 선수’가 아닌 야구팬 모두가 아는 스타로 거듭났고, 올 시즌 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고효준은 ‘야신’의 조련에 의해 10승 투수로 거듭났다.

올 시즌 포스트시즌을 통해 ´전국구 스타´로 거듭난 박정권은 이제 SK의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안방마님 박경완의 공백을 훌륭히 메운 포수 정상호 역시 어느 팀에 가더라도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성장세를 이뤘다. 올 시즌 정상호는 투수리드 부분에서 괄목한 성장세를 이뤘고, 타석에서도 101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8 12홈런 49타점으로 만만치 않은 방망이를 과시했다.

투수 전병두 역시 아쉽게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올 시즌 김성근 감독의 황태자로 거듭나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두산과 KIA를 거치며 만년 유망주에 머물렀던 전병두는 SK 이적 후 김성근 감독의 특훈에 의해 전혀 다른 투수로 성장했다.

최고구속 150km를 상회하는 빠른 직구를 가지고도 단조로운 패턴과 불안정한 제구력이 문제였지만 올 시즌 새롭게 체인지업을 장착해 피안타율(0.232), 9이닝당 탈삼진(9.18개) 1위, 평균자책점(3.10)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기존에 팀을 지탱하던 베테랑들도 제몫을 다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다.

지난 2년 전만 하더라도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좀처럼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재홍과 김재현은 다시 붙박이 주전 자리를 꿰차며 중심타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SK는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와 한국시리즈를 KIA에 내줬지만 공수 밸런스가 가장 안정된 팀으로 평가받았다. 팀 타율과 팀 평균자책점을 비롯한 공수 주요 부문 1위에 올랐고, 이 같은 짜임새는 19연승의 발판이 됐다.

아쉽게 한국시리즈 3연패를 놓치며 ‘왕조 창립’에는 실패했지만 SK는 여전히, 그리고 내년 시즌에도 리그 강자다운 면모를 과시할 전망이다.

김성근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여기까지 온 것이 우승보다 값지다. 인간드라마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선수들에 의해 7차전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인생이 뭔가를 가르쳐줬다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2009년 SK 야구다”라는 말로 선수들을 다독였다.

젊은 선수들은 이날의 패배로 쓰디 쓴 상처보다 값진 경험을 몸에 체득했고, 명승부 명장면을 연출하며 이제 ‘이름 없는 벌떼’에서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SK 선수들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은 내년 시즌, 더욱 무섭게 진화할 그들의 의지와 각오를 드러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데일리안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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