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났을 뿐인데…” 정권 교체기 반복되는 ‘인사 칼바람’ [기자수첩-정책경제]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5.12.22 07:00  수정 2025.12.22 07:00

대통령실 파견 고위 공직자들

일 잘해 뽑아놓고 정권 바뀌면 ‘숙청’

공무원에 ‘정치색’ 덧씌우지 말고

능력 있으면 ‘적재적소’ 중용해야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공무원 A 씨는 잘 나갔다. 부처 내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인사도 승승장구했다. 안팎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급 실장까지 오르더니 결국 대통령실로 호출됐다.


공직사회에서 대통령실 발령은 ‘실력자’임을 공증받는 것이다. 대신 업무 강도는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소속 부처로 복귀 때는 승진이 유력하다. 1급 비서관이라면 사실상 부처에서는 ‘차기 차관’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차관 승진이 아니더라도 기획조정실 등 요직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는 정권 초중반까지만 적용되는 내용이다. 대통령 임기 말에는 대통령실 소속인 게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 특히 여야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 대통령실 근무 이력은 ‘낙인’이 된다. 정치적으로 ‘전 정권 사람’이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진다.


A 씨도 그런 경우다. A 씨는 윤석열 정부 때 대통령실로 발탁됐다. 부처에서 1급으로 승진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해 6월 대통령실 비서관이 됐다.


비서관 발탁 6개월 만에 계엄 사태가 터졌다. 다시 6개월이 지나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고, A 씨는 대통령실을 떠났다.


지난 7월 대통령실을 나온 A 씨는 현재 대기발령 상태다. A 씨는 대기발령 6개월간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정년에 대한 미련도 있겠지만, 30년 공무원 생활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이 마지막까지 더 좋은 곳에 쓰이길 기대했다. 그게 자신을 위해, 국가를 위해서도 좋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A 씨를 잘 아는 다른 부처 B 차관은 A 씨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실로 불려 가지 않았으면 (선배인) 나보다 먼저 차관을 달았을 친구”라며 “능력을 더 쓰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A 씨는 최근 사직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한때 부처 내 정책통으로 불리면서 ‘에이스’로 평가받던 고위 공무원의 마지막은 이렇게 초라하게 끝나는 분위기다.


A 씨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권 교체기 대통령실 출신 고위 공직자 다수가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 부처에서 가장 뛰어나다 평가받던 공직자들이 졸지에 ‘전 정권 사람’이란 꼬리표를 달고 한직으로 밀리거나 옷을 벗어야 했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정권은 그들에게 강제 꼬리표를 달아 내쫓았다.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공무원은 법으로 정치적 중립을 강제한다.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 만큼 좌우 어떤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마지막은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정권의 성격을 덧씌워 강제 종료 시킨다.


정부는 5년마다 새로 탄생한다. 30년쯤 공직 생활을 하면 최소 6번은 새 정부를 맞는다는 의미다. 그런 과정에서 때론 진보가, 때론 보수가 집권한다. 공무원은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게 공직자의 마땅한 도리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과 ‘개혁’을 표방한다. 대통령 스스로 이념적 논쟁보다는 국민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을 강조한다. 이는 공직사회에도 적용돼야 할 개념이다.


정말 이재명 정부가 실용과 개혁, 탈이념 정부를 꿈꾼다면 열심히 일한 공무원 이마에 ‘전 정권 사람’이란 주홍 글씨를 새기는 구태는 끊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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