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가장 서늘해질 때”…김정훈 감독 13년만의 신작 ‘면도’ [31st BIFF]

데일리안(부산) =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0.09 09:44  수정 2026.10.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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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일상의 행위가 공포의 방아쇠가 됐다. 김정훈 감독이 13년 만의 신작 ‘면도’로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기자회견장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경쟁 부문 초청작 ‘면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정훈 감독과 배우 노정의, 카사마츠 쇼가 참석했다. ‘면도’는 올해 경쟁 부문 13편 가운데 한국 영화 세 편 중 하나로, 이번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면도’는 신작의 결말을 쓰지 못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공포 소설 작가 수연(노정의)이 연휴를 맞아 찾아온 연인 신지(카사마츠 쇼)와 외딴 시골 저택에 머물다, 낡은 면도기에 얼굴을 베인 신지가 돌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데뷔작 ‘들개’(2013)로 도쿄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영화의 출발은 실제 면도에서 비롯됐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 홍승윤·노도현 작가가 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회의하러 만난 자리에서 ‘면도 좀 하고 다니라’는 말에 실제로 면도를 하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라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면도는 남자들에게 매일 하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사실 위험하고 서늘할 수 있다”며 “영화도 평범한 연인의 일상에서 출발해 점점 위험해지는 분위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심리극과 공포, 미스터리, 크리처까지 오가는 복합 장르에 대해서는 “복합 장르의 틀은 시나리오에 이미 대부분 있었고, 크리처 등은 각색하며 바뀐 부분”이라며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가장 큰 매력이었다. 다채롭고 새롭게 선보이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을 잃지 않는 것, 수연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마지막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노정의는 이번 작품으로 장르물과 액션에 처음 도전했다. 그는 “도전하는 첫 시간은 뭐든 설레고 재미있다 보니 늘 즐겁게 촬영했다”며 “카사마츠 쇼와 서로 배려하며 다치지 않게, 각 캐릭터의 상황이 더 잘 보이도록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돌아봤다. 이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면서 행복이 의심과 악몽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라며 “누구에게나 트라우마가 있듯 수연도 마찬가지다. 그걸 깨뜨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만들어가는 데서 통쾌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카사마츠 쇼는 “감독님과 ‘지금 보고 있는 배우가 정말 그 사람인지 모른다’는 점을 중요하게 이야기했다”며 “무엇이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현장에서 답을 찾아갔다”고 했다.


캐스팅 배경도 공개됐다. 김 감독은 “노정의 배우를 관심 있게 본 건 ‘탐정 홍길동’ 아역 때부터다. 오디션을 보러 와 캐스팅되고 영화에 나오기까지를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매력 있는 배우라고 느꼈다”며 “평소에 보여줬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더해 ‘면도’를 통해 강인한 여성의 모습까지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카사마츠 쇼에 대해서는 “‘'도쿄 바이스’를 재미있게 보며 매력을 느꼈고, ‘굿뉴스’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또 놀랐다”며 “원래 ‘면도’ 속 두 인물이 장거리 커플 설정이라 아예 외국인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국어도 잘하시니 갑자기 돌변할 때의 이질감과 위험함을 다른 언어로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오가는 연기는 영화의 중요한 장치가 됐다. 노정의는 “카사마츠 쇼가 애드리브로 일본어를 할 때가 많았는데, 알아듣지 못해도 뉘앙스는 다 전해졌다”며 “그게 너무 무섭고 섬뜩했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말인지, 악몽이 다시 시작된 건지 연기하면서도 헷갈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끔 보면 저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시는 것 같다”고 웃으며 “배울 점이 많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작품을 더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카사마츠 쇼는 “어릴 때부터 한국 작품을 보고 배워서, 한국 작품에서 한국어로 연기하는 건 큰 가치가 있는 일”이라며 “특히 한국의 겨울이 굉장히 추웠는데 노정의 배우가 현장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고 화답했다.


한일 촬영 현장의 차이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은 배우를 더 엄격하게 지켜주는 부분이 있고, 일본은 아직 만들어가는 중이라 완벽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의상, 분장, 연출까지 다 갖춰 기적을 만들어가는 분위기라면, 일본은 현장에서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비교했다. 이어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분위기가 다를 뿐, 각 나라 현장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가장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면이 관객들이 가장 통쾌하다고 꼽은 장면”이라며 “그 장면이 잘 전달돼 어떤 종류든 상처나 트라우마를 가진 분들이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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