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절벽 공포가 부른 ‘기현상’
잦은 규제에 자금 조달 여건 악화 우려
수수료 면제 혜택에도 상환 의지 ‘뚝’
은행권의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등 혜택이 확대됐지만, 잦은 대출 규제 변동으로 자금 조달 여건 악화를 우려한 차주들은 상환 대신 빚을 안고 버티기를 택하는 모양새다. ⓒ뉴시스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중도상환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거나 인하하고 있지만, 만기 이전에 미리 갚는 차주들의 움직임은 둔화됐다.
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대출 규제 강화로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금 조달 여력이 축소될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짙어진 탓이다.
9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기준 가계대출 중도상환 건수는 1년 전(8만8534건) 대비 33.4% 줄어든 5만8570건으로 집계됐다.
중도상환액은 1조9432억원으로 같은 기준 8800억원 감소했다.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대출의 상환 움직임이 크게 둔화됐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 중도상환 건수는 2만650건으로 1년 전보다 49.6% 축소됐고, 중도상환액은 1608억원으로 55.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중도상환 건수는 2만4522건으로 1년 전 대비 17.8% 쪼그라들었다.
중도상환액은 29.7% 축소된 1조1970억원 규모다.
은행권의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등 혜택을 활용하면 수수료 부담 없이 대출 원금을 갚을 수 있지만, 빚을 갚는 차주들은 외려 감소했다.
차주들이 빚을 털어내기는커녕 기존 대출을 끝까지 끌어안고 버티는 셈이다.
지난해 1월부터 정부는 신규 대출부터 은행의 실제 비용만 수수료에 반영하도록 중도상환수수료 제도를 손질한 바 있다.
이 때문에 5대 은행의 주담대 평균 중도상환수수료율은 고정금리 기준 1.4%에서 0.65%로 낮아졌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은행들도 차주들의 중도상환 유인을 늘리고 있다.
신규 대출은 최대한 조이면서, 기존 차주들에게는 수수료 면제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조기 상환을 유도하고 가계부채 덩치를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월부터 가계 신용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고 있다.
NH농협은행도 2024년 실행된 주담대 중도상환해약금을 5월 20일~6월 30일까지 전액 면제했다.
하나은행은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한 중도상환해약금 면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는 차주들 사이에 ‘대출 절벽’ 우려가 확대된 영향이 크다. 들쑥날쑥 대출 규제로 차주들의 불안 심리를 키웠단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8월 11일까지 국내 13개 은행의 가계대출 제한 조치는 149회 발동했다.
한 달 평균 7~8회꼴로 대출 규제가 시행된 셈이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기조에 맞춰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모기지보험(MCI·MCG) 가입 중단 조치, 비대면 주담대 접수 중단, 신용대출 및 마이너스통장 한도 축소 등을 반복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규제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당장의 비용 절감 혜택을 포기하고 기존 대출금을 유지해 유동성을 우선 확보해 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관리는 단순히 대출을 줄이는 것보다 차주들의 상환능력을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대출 상환을 유도하면 소비와 투자 여력 모두 줄어들 수 있단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차주들이 수수료보다 금리와 원금 부담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라며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기존 대출을 상환하려면 상당한 현금이 필요하고, 대환을 하더라도 금리 차이가 크지 않으면 굳이 상환할 유인이 낮아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리와 가계의 소득·현금흐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실제 상환 규모를 크게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금융당국과 은행은 취약 차주의 상환능력을 보호하면서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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